윤동주 언덕에서
서울 하늘에 종횡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
윤동주 언덕에도 바람이 미친듯 불고 있다.
서시를 쓰던 1941년 11월20일에도
이처럼 바람이 불고 있었을까.
서시의 시비 넘어 저기 남산타워가 솟아 있고,
왼쪽에 북악산이, 오른 쪽에 인왕산이
좌청룡 우백호처럼 앉아있다.
윤동주는 바로 이 자리 쯤에 앉아서
시구를 떠올리고 있었을까.
나는 어디쯤에 앉아 바람을 맞을까.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묵묵히 서 있는 풀과 나무가 바람에 스치운다!
ㅡ산경 김향기 참좋은이들21 발행인 8.15 광복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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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 나무처럼
산경 김향기
깜깜한 어둠조차 안온하다고
인고의 세월을 노래하는 믿음직한 뿌리의 입
비바람 찬서리도 기꺼워라
둥굴게 둥글게 연륜을 지어가는 충직한 줄기의 코
허공에 가득한 빛과 기운
핏줄같은 섬세한 감각으로 모아 피어나는 다정다감한 잎새의 귀
찰라의 절정을 향해
모든 사연 다 바쳐 만개하는 장엄한 꽃의 눈
순리의 흐름 따라 겸허하게
온 감각을 열어놓고 마침내 열리는 거룩한 열매의 몸
그러려니, 그렇게 익히 보아온 즉
우리도 저마다 한 생의 한 그루 생명나무려니!
-산경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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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는 시가 있다
ㅡ오현정 시인 제6시집에서
나무 이름마냥 새로운 햇살
살랑이는 바람, 꿈 구름
비에 젖은 나이테 너머 기다리는 사람이 있나 보다
그 사람 생각하며 자작나무 잎에 편지를 쓴다
긴 밤 뒤척이는 책갈피소리
내 마음 흔들어 놓고 떠난 빗소리
저 나무베틀에 알맞게 직조해놓고
누구를 만나려나
거미줄로 지은 옷을 입은 숲
숲은 아마 전생에 시인의 마을이었을 거다
그곳에서 자작나무는 시인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