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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은 왜 21세기 옹정을 꿈꾸는가!
청나라 최전성기 ‘강건성세’ 130년 이야기 - ‘제왕삼부곡’ 제2작 ‘역사소설의 황제’ 얼웨허 원작, 20년째 베이징특파원 홍순도 완역
오늘날 중국은 ‘중국몽(中國夢)’을 외친다. 이는 곧 청나라의 최전성기였던 ‘강건성세’의 부활을 의미한다. ‘역사소설의 황제’ 얼웨허의 ‘제왕삼부곡’ 시리즈는 바로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3대에 걸친 130여 년의 치세를 다룬 대하역사소설이다. 그중 제2작인 『옹정황제』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부패척결과 개혁의 모델로 삼아 더욱 유명해졌다.
강건성세(康乾盛世)의 기틀을 다진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황제 옹정황제는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의 치세 한가운데에서 왕조의 기틀을 탄탄히 다지고 이어준 황제이다. 8세에 제위에 올라 61년 동안 집권한 강희대제에 비해 45세에 황제가 된 옹정황제는 역대 중국 황제들 중에서 가장 부지런한 황제였다. 재위 기간 13년으로, 상대적으로 선대인 강희제의 61년 치세에 비해 업적을 남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치열하게 일했고 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13년 동안의 재위 기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정무에 몰두한 그의 일생을 알고 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써 일한다는 뜻인 ‘조건석척(朝乾夕惕)’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등극 당시 거의 거덜이 난 국고를 튼튼하게 채워 넣었다. 그 액수가 강희대제 말기 때의 10배 이상이었다고 한다. 지방관들이 세금을 거두면서 얼마간의 부가세를 조세에 포함시켜 징수하는 양렴은제도를 실시해 청렴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부정부패를 근절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황제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집권 초기 23만의 대군을 파병해 서장(티베트)과 위구르 지역을 평정하여 영토를 확충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반독립상태에 있던 운남과 귀주, 청해 지역의 묘족을 귀부시켰다. 특히 소수 민족들의 토지를 내지화 하는 개토귀류를 단행함으로써 그들을 완전히 청나라의 백성으로 편입했다. 지방의 천민들을 해방시켜 양인과 차별 없는 대우를 받게 하였고, 하층민의 생활을 보장하고 치안을 유지하였다. 황제라면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속된 말로 타락하려면 한없이 타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옹정황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술은 거의 하지 않았고, 평소 진수성찬보다는 소박한 음식을 즐겼다. 주위에 여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지는 않았다. 옹정 자신이 반드시 명철하고, 총명하고, 덕이 있었다고 확신은 할 수 없으나 최소한 역대 어느 황제보다 백성을 위해 노력한 황제라고 할 수는 있다. 옹정황제는 집무실에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희생시키지는 않으리라’는 좌우명을 걸어놓고 평생 그 원칙을 지켰다. 형제와 가족에게도 비정할 정도로 냉정하게 대했지만 자신에게는 더욱 엄해 수도승처럼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뒤를 이은 건륭황제는 할아버지 강희대제처럼 관대한 정치로 돌아섰기에 만약 옹정황제의 개혁정치가 없었다면 청나라는 훨씬 더 빨리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품격 있는 정치인과 시대를 앞서가는 CEO의 필독서! 옹정황제의 통치방식은 강력한 황권을 바탕으로 한 황제의 직접통치체제인 동시에 전형적인 인치(人治)였다. 청나라 관료시스템은 과거제가 핵심이지만 옹정황제는 과거를 통해 등용된 관료를 신뢰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중용한 신하들 중에 과거시험 합격자는 드물었다. 반면 전국 각 성의 문무 행정책임자들로부터 직접 상주문을 받고 답을 내렸다. 보고에 틀린 사항이 있으면 호된 불호령을 내렸고, 잘못된 보고가 거듭되면 가차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무엇보다 옹정황제의 단연 빛나는 업적은 붕당 정치를 분쇄하고 부정부패를 뿌리 뽑은 것이다. 등극 시 이미 궁중정치의 음모와 갈등의 속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집권하자마자 황위를 놓고 경쟁했던 형제들과 부패한 관료들의 척결에 돌입한다. 때문에 옹정황제란 이름은 13년의 재위기간 중 신하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그를 '냉면황제(冷面皇帝)’ 또는 ‘선의에 가득 찬 악의의 독재자’라고 규정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옹정황제 이야기가 중국판 ‘용의 눈물’로 불리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14억 중국인들은 옹정황제를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황제로 칭송하고 있다. 중국 최고지도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진핑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공공연히 개혁의 롤모델이자 치세의 지침서라고 밝힐 정도다. 뿐만 아니다. 지난 2015년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협)에서 왕치산 전국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소설 『옹정황제』에 등장하는 이른바 ‘철모자왕(鐵帽子王.아무리 죄를 저질러도 강등되지 않는 무상권력의 왕을 일컬음)’을 거론하면서 중국의 부패에 성역이 없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한국 최고의 중국전문가 홍순도 기자의 새 번역 소설 『옹정황제』는 전체 3부, 12권 분량이다. ‘제왕삼부곡’ 시리즈 제1작인 『강희대제』에 이어 20년째 베이징특파원으로 활동하는 홍순도 기자의 번역이 재미를 더해준다. 제1부 ‘구왕탈적(九王奪嫡)’은 강희제의 여러 황자들 중 특히 자질이 뛰어났던 9명의 황자들 간의 황위 계승을 위한 음모와 투쟁과정을 소설화하였다. 옹정황제가 되는 넷째 황자 윤진은 이 시기에 황위에 집착하기보다 정무를 배우고, 백성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보고 겪으며 준비된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 대권을 향해 달리는 정치지도자들이 참고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다. 2부 ‘조궁천랑(雕弓天狼)’에서는 황위를 계승한 옹정황제가 불리한 국면을 타개해 가면서 황권을 강화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조궁(雕弓)은 원래 온갖 문양을 넣어서 멋있게 만든 훌륭한 활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독수리를 잡는 활’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천랑(天狼)은 별(행성)의 이름으로, 고대부터 ‘잔혹한 침략자’에 비유되었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2부에서는 옹정황제가 등극한 후 황권을 강화(조궁)해 나가면서 반대세력이나 부패한 관료(천랑)들을 척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3부 ‘한수동서(恨水東逝)’는 ‘한의 눈물은 동으로 흐른다’는 뜻으로, 옹정황제의 말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특권이란 천자 한 사람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도 형제도 군주 앞에서는 신하에 불과하다는 중국식 독재군주로 군림하고자 했다. 그를 위해 황권을 강화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집권 내내 철두철미하게 개혁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건륭황제는 잘 정리된 국가기반 위에서 중국 역사상 최전성기의 제왕이 될 수 있었다.
-‘제왕삼부곡(帝王三部曲)’에 대하여 중국에서는 한때 청나라의 최전성기였던 17, 18세기의 황제들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창작 열기가 거세게 일었다. 한두 명의 황제를 주인공으로 삼아 역사소설을 집필해보지 않은 작가라면 작가도 아니라는 얘기까지 나올 만큼 그야말로 붐이었다. 그중에서도 중국 역사상 최전성기를 연 청나라의 강희, 옹정, 건륭 세 황제를 다룬 소설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는 중국이 당면한 문제 때문이다. 즉 빈부 격차와 관리의 부패를 비롯한 각종 사회악을 일소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들에 대한 극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문단일걸(文壇一傑) 또는 ‘역사소설의 황제’로 불리는 얼웨허(二月河)의 ‘제왕삼부곡(帝王三部曲)’ 시리즈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강희대제』, 『옹정황제』, 『건륭황제』 집필기간만 15년이 걸렸으며, 한자 분량은 520만자이다. 중국에서는 1억부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진다. 당연히 중국 최고 권위의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뉴욕타임스에서 ‘올해의 아시아 작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제왕삼부곡’ 시리즈는 중국 중앙방송인 CCTV에서 원작을 바탕으로 하여 세 편 모두 드라마로 제작되어 더욱 화제가 되었다. 특히 '옹정황제'는 북경에서는 80%가 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해 중국판 ‘모래시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총 44부작이 종영될 때까지 드라마가 방영된 저녁시간에는 거리에 인파가 줄고 모임 약속도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흥미를 더한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요즘 중국 정치인들의 면면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 원서로 각각 500P 안팎의 분량에 전체 13권으로 이루어진 ‘제왕삼부곡’ 시리즈는 한글로 번역하면 원고지 5만여 매에 이르는 한국 추판 역사상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20년째 베이징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순도 기자가 3년 넘게 완역에 매진하고 있다. 출판사 더봄은 지난 7월 『강희대제』 (4부, 전12권)를 출간한 데 이어 금번에 『옹정황제』(3부, 전12권)까지 완간했다. 제3작인 『건륭황제』(6부, 전18권 예정)는 내년 봄까지 완역, 출간될 예정이다.
-에디터가 말하는 『옹정황제』의 강점 요즘 들어 14억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옹정황제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독재군주로 알려졌던 옹정황제가 개혁군주로 거듭나고 있다. 그의 개혁정책과 부패척결이 없었다면 건륭황제의 성세도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겸 총서기는 옹정황제를 부패척결과 개혁의 모델로 삼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힌다. 2013년 4월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외국 기자들로부터 “옹정황제가 반부패개혁의 롤모델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대답할 정도로 얼웨허의 ‘제왕삼부곡’ 시리즈를 탐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는 우리 입장에서도 치세와 경영의 지침서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 다소 호흡이 길기는 하지만 일독을 하고 나면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옹정황제는 역대 중국 황제들 중에서 가장 부지런한 황제였다. 13년 동안의 재위 기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정무에 몰두한 그의 일생을 알고 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써 일한다는 뜻인 ‘조건석척’朝乾夕惕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그 결과 등극 당시 거의 거덜이 난 국고를 가득 채웠다. 소수민족을 귀부시키는 외에 티베트와 위구르 족을 평정하여 영토를 확충했다. 붕당 정치를 분쇄해 황권을 강화한 것도 그가 남긴 업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단연 빛나는 업적은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은 것이다. 그래서 ‘냉면황제’冷面皇帝로 별칭은 결코 비난이 아니다. 소설 『옹정황제』는 이런 그의 일대기다. 작가 얼웨허는 사서史書와 풍부한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역사를 제대로 기록했다. 치세와 경영의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 시진핑習近平 현 중국 국가주석이 옹정황제를 롤 모델로 삼고 부패와의 전쟁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리라.
-저자 얼웨허 인터뷰 중에서 "스승으로는 강희제가 최고이지만 지도자로는 옹정제가 으뜸!" ―강희・옹정・건륭 셋 가운데 누구를 가장 좋아합니까? 만일 친구로 사귄다면 누구를 택하고 싶습니까? “나는 강희를 스승이나 웃어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강희는 봉건사회의 정치가로서 걸출한 인물입니다. 8세에 등극하여 15세 때 개국공신의 후예로 권세가 하늘을 찔렀던 대신 오배를 제거했고, 실권을 장악한 23세에 대만을 수복했으며, 서북쪽 변방을 개척하여 광대한 통일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야말로 61년을 장기 집권한 가히 ‘대제’大帝라고 할 수 있죠. 그는 또한 훌륭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시사에 능하고 서예, 음악, 천문,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7개 국어에 능통했습니다.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너그러웠던 능력있고 덕망높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로는 건륭을 택할 겁니다. 그는 시詩와 사詞에 능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압니다. 그와 반대되는 위상의 인물이 바로 옹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옹정은 너무 엄숙하고 무미건조하기 때문에 친구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가의 지도자로는 최고입니다. 특히 업무에 대한 그의 열의는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집권 13년 동안 천만 자가 넘는 상소문을 친히 어람했죠. 진시황에서 부의황제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한 면에서는 그를 따를 제왕이 없습니다. 신하들을 접견하거나 국무처리 때문에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여색을 탐할 겨를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강희황제가 그에게 7백만 냥의 국고금을 남긴 반면 그는 건륭에게 5천만 냥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만큼 내실을 다진 것이죠.” -옹정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데, 정치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가는 덕德보다 공功이 우선적인 평가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전반에 걸쳐서 얼마나 공헌했느냐가 문제죠. 옹정이 걸출한 것은 가장 청렴하고 공적이 많았던 황제였기 때문입니다. 측천무후나 주원장은 강압적인 정책을 펼쳐 살생을 일삼았지만, 옹정은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에 그 업적이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저자소개 / 얼웨허(二月河) ‘문단일걸(文壇一傑)’ 또는 ‘역사소설의 황제’로 불리는 중국 최고의 인기작가. 한마디로 ‘중국의 조정래’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중국 작가 인세수입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1998년 마오둔矛盾문학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올해의 아시아 작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현재 정주대학(鄭州大學) 문학원 원장이다. 1945년 출생으로, 본명은 능해방(凌解放). ‘二月河’는 필명으로, 황하의 강물이 석양에 빛나는 모습을 보고 창작열의가 솟구쳐 개명을 했다고 한다. 청나라의 황금기인 강건성세(康建盛世)를 다룬 『강희대제』, 『옹정황제』, 『건륭황제』, 즉 ‘제왕삼부곡’ 시리즈는 1억 부 이상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삼국지》의 판매량을 넘어설 유일한 작품으로 꼽힌다. 세 작품 모두 CCTV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중국판 ‘모래시계’ 열풍을 몰고 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옹정황제를 반부패 개혁의 모델로 삼고 있으며, 왕치산(王岐山) 전국기율검사위 서기 역시 2015년 3월에 ‘제왕삼부곡’을 거론하며 경제발전과 부패척결에는 성역이 없다고 할 정도로 중국 최고지도부의 필독서로 각광받고 있다.
-옮긴이 소개 / 홍순도(洪淳道) 195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보쿰대학교 중국정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매일경제신문과 문화일보 국제부 기자로 근무했고, 1997년부터 9년간 문화일보 베이징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중국 인민일보 한국대표처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아시아투데이 베이징 지국장인 당대 최고의 중국 전문가이자 번역가이다. 한국기자협회 ‘올해의 기자상’과 ‘한국언론대상’을 받았으며, 관훈클럽 선정 ‘국제보도 부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시진핑』, 『시진핑과 중난하이 사람들』, 『베이징 특파원 중국 경제를 말하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화폐전쟁』, 『누르하치』, 『삼국지 강의』, 『진시황 강의』, 『왼손에는 사기, 오른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 『중미전쟁』, 『월스트리트』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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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을 올린것 같은데... 깨져 안보이내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