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얼웨허는
‘제왕삼부곡’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한 1985년부터 대단원의 막을 내린 1999년까지 20세기의 마지막 15년을 고스란히 강희, 옹정, 건륭
세 황제와 함께 보냈다. 그를 통해 얼웨허는 한자漢字로 무려 5백만 자에 달하는 ‘제왕삼부곡’ 시리즈를 완성함으로써 중국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독자들은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수백 년 전의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 작가의 기백과 글재주에 감탄할
따름이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얼웨허의 ‘제왕삼부곡’은 갈수록 성숙한 세련미를 자랑하는가 싶더니 《건륭황제》에 이르러 완연히 농익은 향기를 발산한다. 소설 속 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강희는 창세지조創世之祖이고, 옹정은 입국지조立國之祖이며, 건륭은 개업지주開業之主이다. 그렇듯이 《건륭황제》 역시 얼웨허의 ‘제왕삼부곡’
중에서도 편폭이 가장 크고 작가가 가장 심혈을 쏟은 역작이다. 작가 얼웨허가 역사를
해부함에 있어서 특히 가상한 점은 여러 제왕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소설 《건륭황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국 최전성기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결코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제왕을 의도적으로 미화하거나 매도하지 않았다. 제왕들을 무조건 칭송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예리한 칼날을 마구 휘둘러 기분 내키는 대로 잘라내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한 시각으로 역사를 직관하고 투시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천하의 군주라도 인간세상의 연화煙火를 먹고 사는 인간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때문에 작품 속에서 제왕들은 유아독존의 군주이기 전에 할머니를
보면 응석도 부리고 아들의 죽음 앞에선 눈물도 보일 줄 아는 인간으로 그려졌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특별한 시대를 산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무대 위로 끌어내 생생하게 살려냈다. 건륭황제는 자신의 부친인 옹정과도 닮지 않았고, 조부인 강희와도
다른 인물이다. 비록 선대의 두 황제를 우상과 표본으로 받들고 따라가는 노력을 보이긴 했지만 강희와 옹정에 비해 건륭은 자기 나름대로의
통치철학을 구현했다. 옹정이 비명에
죽고 그 보위를 승계할 때 건륭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런 면에서 어린 나이에 집정한 강희와는 달리 순조롭게 정권을 승계 받은
행운아였다. 그는 조부와 부친 세대를 두루 걸치며 어릴 적부터 권력의 암투를 보면서 어깨 너머로 통치 방법을 배웠다. 대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집안싸움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지혜로운 대응책을 익혔고, 안安과 위危, 득得과 실失, 승勝과 패敗를 앞두고 현명하게 대처했던 선제들의 권모술수를
터득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성장기는 그에게 큰 포부를 심어주었고, 꿈과 야망을 갖게 했다. 따라서 건륭은 청나라의 극성시대를 열어갈 큰
꿈을 안고 옹정 때의 폐정을 혁신할 정책을 실시하였다. 탐관오리들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용단을 내려 탐묵貪墨에 연루된 측근대신들을 주살함으로써
이치쇄신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성격적인 면에서도 건륭은 제왕의 자질이 넘쳤다. 문무를 겸비하고
지혜와 용맹을 구비했으며 성격도 건전하고 자유로운 편이었다. 옹정처럼 편집증을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매사에 침착하고 멋과 풍류를 알았다. 이런
성격은 ‘위정이관’爲政以寬이라는 그의 통치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그의 긍정적인 성격들은 불행하게도 부패한 봉건제왕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풍류를 절제하지 못하고 고굉대신인 외삼촌의 부인과 간통하여 사생아를 낳기도 했고, 변방에 출몰하는 비적이었던
여자를 후궁으로 들이기까지 했다. 여인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사건과 민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궁중의 비화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와 맞물려 드라마나 영화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결국 순조롭게 출발했던 건륭의 시대는 망망대해에서 암초와 풍랑을
만나게 된다. 날로 더해만 가는 토지겸병과 탐관오리들의 비리와 부패는 독버섯처럼 퍼져 갔다. 그로 인해 국가는 속으로 병들어 훗날의 비극을
잉태했다. 결국 말년의 건륭은 화신和?과 같은 간악한 자들의 허와 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현신賢臣들을 배척하면서 그의 제국은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렇듯 소설
《건륭황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한 나라가 흥망성쇠의 길을 걷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대제국의 역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얼웨허는 장장 2천년의 세월을 지속해온 중국 봉건사회가 본격적으로 피폐해가는 마지막 백년의 모습을 서산으로 넘어가기 직전
붉게 물든 낙하落霞의 현란함에 비유했다. 그런 면에서 《건륭황제》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밀려
역사의 피안으로 사라지고 만 중국 최전성기의 장엄한 대서사시이면서 눈물겨운 비가悲歌이기도 하다. 《건륭황제》는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은 각각
풍화초로風華初露, 석조공산夕照空山, 일락장하日落長河, 천보간난天步艱難, 운암풍궐雲暗風闕, 추성자원秋聲紫苑이다. 제목만 봐도 처량하고 비극적인
기운이 갈수록 짙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이 또한 작가의 역사적인 시각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첫댓글 사진이 올렸나요 영상이 올라온건가요 깨져 안보이내요. 수고하셨습니다.^^.
흥미있어 보입니다
感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