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경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특별한 손님이 오시곤 했다. 그녀의 옷차림은 머리 위부터 구두까지 검정색이었고, 두건(頭巾)의 테두리만 빳빳한 흰색이었다. 큰 고모의 친구인 수녀님이었는데 가끔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시곤 했다. 그분은 늘 미소로 나를 대했지만 저녁 무렵이면 온통 검은 빛깔의 옷이 나는 무서웠다.
예전에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다. 검은 색 고양이를 주제로 한 ‘검은 고양이, 네로’란 노래인데 어린 아이가 불러 꽤나 인기를 얻었다. 검정색 고양이는 섬뜩한 인상을 주는데 귀여운 소녀가 이 노래를 부른 뒤로는 검은 고양이의 부정적인 느낌이 조금은 상쇄되었다.
검정은 마법의 색깔이다. 아주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검정색은 암흑, 죽음, 악마를 상징한다. 상(喪)을 당하여 입는 옷은 검정색이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흰색 상복(喪服)을 입었지만, 현대에는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대부분 남자들은 검정 양복에 검은 타이를 맨다. 근조(謹弔) 리본의 바탕색도 검은색이다. 장지로 이동할 때 영구차보다 앞서 가는 선두 차량에는 검정색 띠가 있는 리본을 장식한다. 악마가 입은 옷도, 악마가 영혼을 유혹할 때의 배경도 검은색이다.
다른 면으로는 우아함, 신비, 권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고위 계층이 사용하는 리무진이나 고급 승용차의 색깔은 검정색이다. 조직 폭력배들은 약속이나 한 듯 검정색 양복을 입는다. 거구의 몸집에 짧은 머리를 하고 검정색 옷을 입은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반면에 다른 여러 색보다도 검정색을 잘 입으면 무척 돋보인다. 나도 지적이며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 검정색 옷을 찾아 입는다. 거기에다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면 놀랄 만큼 우아한 맵시가 난다. 그래서 디자이너와 젊은 층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검정은 색의 삼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을 혼합하면 만들어 진다. ‘까망’으로도 불리며 영어로 ‘블랙(Black)’이다. 최근에는 ‘블랙 마켓팅(Black Marketing)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제품이나 상품에 검정색을 접목시킨 것으로 품위와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화장품의 포장과 담배 케이스, LED TV와 오디오 등 전자 제품에도 블랙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의 가전제품도 거의 검정색이다. 검정은 첨단의 이미지를 주기도 하여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넣지 않고 블랙으로 마시면 세련된 현대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가끔 멋있는 척하고 싶을 때 연하게 뽑은 블랙커피를 마시곤 한다.
검정색과 가장 대비되는 색은 흰색이다. 검정은 종종 흰색과 비교되어 나쁜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조선 시대 시조 중에 ‘까마귀 노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옳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뜻으로 검정색 까마귀를 불의(不義)에 비유했다. 프랑스에서는 범죄와 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를 '필름 누아르'라고 한다. 누아르(Noir)는 불어로 검다는 뜻이다. 블랙리스트(Blacklist)도 있다. 위험인물을 파악하여 작성한 비밀 명단이다. 바둑알도 흰색과 검은색으로 구별한다. 나에게는 조직적인 두뇌가 부족한지 바둑이 어려워 배우질 못했다. 서양의 체스도 검정과 하얀색으로 된 말을 사용한다. 흰색은 연장자(年長者)가, 검은색은 나이가 적은 상대가 갖는다. 머리칼도 젊어서는 검던 것이 나이가 들면 희어진다.
블랙은 부와 권력을 의미해서인지 독일 사람의 이름 중에는 검정을 뜻하는 슈바르츠(Schwarz)란 성(姓)이 많다. 중세 봉건 시대의 사람들이 남성의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검은색을 좋아하는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근래에 미국에서는 검은색으로 디자인 한 ‘블랙 카드’가 등장하였다. 이 카드는 최상류층 1퍼센트만을 겨냥한 것으로 회원이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사가 회원을 심사하여 발급을 권유하는 사업 전략이라고 한다. 이 카드의 사용자는 연간 우리나라 돈으로 2억 원의 사용 실적이 있어야 하며 연회비도 3백만 원이나 된다고 하니 웬만한 사람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까지 보급되어 특별 계층에서만 이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검정이 마법을 시작했다. 예전의 부정적인 의미나 섬뜩함, 죽음을 상징하던 이 색깔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최상류의 블랙카드 회원 자격은 못되지만, 나도 특별해지려면 매일 검정색 옷이라도 입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첫댓글 안녕하신지요.
검정옷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 돌아 왔네요.
12월 5일에 뵐 수 있길 바랍니다.
저도 요즘 검정을 좋아해요~~ ㅋㅋ 일욜날에 뵐께요 ^^
항상 수고가 많으신 쿠사님,
늘 멋있지만 검정옷을 입으시면 더욱 멋이 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옷입을줄 모르는사람한테는 검정옷이최고예요 고로 내게도 검정옷이젤로 많다는사실은?
옷을 잘 입을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검정이랍니다.
그러니 미소님도 옷을 잘 입으신다는 증거겠죠.
감사해요.
지는예 뚱뚱한편이라서..검정색옷을 좋아하는디요...조금이라도 커버하고 싶어서.ㅎㅎㅎㅎ
저도 띵띵해서 검은 색 자주 입어요~ 동지 만났습니다요~ ㅎㅎㅎ
검정은 마법의 색깔입니다.
날씬한 사람은 세련되게, 살찐 사람은 날씬하게 보이게 해준답니다.
잘 이용해 보세요.
감사 !
검은색으로 모두 모두 멋쟁이가 되어보세요.
그러게요... 언제부턴가 흰상복이 검정색을 바뀌었더군요.
얼마전 김수환추기경님 장례미사때 신부님들께서 흰색 미사복을 입고 미사를 집전하시는 모습을 보고
외국에선 의아해 했다고 하지요. 외국에선 검정색을 입는데 말입니다.
이건 아마 우리 선조들의 또 하나의 해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활이나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을 입음으로써 죽음이 단순히 종말이나 끝남이 아님을 말하고 싶은 그런...
물론 염색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흰무명천을 입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글도 잘 쓰시더니 관찰력도 뛰어나시군요.
그와 더불어 해박하시구요.
황토빛에 이런 분들이 계셔 빛이 납니다.
답글 감사해요.
저의 그림은 온통 검정과 흰색 뿐인데...ㅎㅎ!!
가장 품위잇는 색이라 개인적으로 인정해 많이 사용하네요.
저의 작품에 칼라가 들어가면 화려하긴 한데. 가벼워 보여서 늘 넣엇다 빼곤 하네요.
상복이 검정으로 바뀐것은 서양문화에서 온것이며.
본래의 우리민족은 밝은 색이엿네요.
실용성과 글로벌시대에 맞추다 보니 검은 양복이나 옷을 입게 되엇나 보네요.
댓닢님의 그림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철학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었네요.
이번 일요일에 그림처럼 멋진 모습 뵙고 싶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