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51) 춘천지검 원주지청 지청장이 지난 17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과 징계 과정에서 ‘막후 활약’을 한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공개 저격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심 국장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심 국장은 17일 오전에만 근무를 한 뒤 오후에는 반가를 내고 퇴근했다고 한다.
이 글에 정유미 인천지검 부천지청 인권감독관은 “동료를 비판하기까지 고뇌가 얼마나 많았냐”며 “그러나 같은 검사라고 인정하기 민망할 정도의 무도하고 파렴치한 행태는 분명 엄중한 단죄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심 국장을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 매국노 이완용으로 비유하는 검사들도 있었다. 한 검사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아픈데, 실망과 분노가 그 아픔을 덮어버리고 있다. 제가 할 일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글”이라고 했다.
2019년 12월 9일 오전,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심재철 당시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대변인.
다음은 김 지청장의 글 전문.
여러분에게 ‘동료’는 어떤 의미인가요?
닮고 싶은 선배가 있습니다. 넉넉한 인품과 지혜, 타고난 성실함으로 따르는 후배도 많았는데 얼마 전 고검에서 공직을 마쳤습니다. 아직도 친정이 걱정되는지 불쑥 전화해서는 “너희 정신 차려라” 호통 치더니 다음날엔 “좋은 책이 나왔다”고 알려줍니다. 언젠가 공직을 내려놓으면 편하게 만나 흉금을 터놓을 든든한 형입니다.
‘직장에서 가장 큰 복이 좋은 분들과 맺은 인연’이고,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동료들의 평판’임에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료와 후배들이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며, 제 나름의 행동준칙이 그들의 시각에서 보편성을 갖는지 돌아봅니다.
우리에게 ‘직위’는 무엇입니까?
재직하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떠난 동료를 기억할 때 그들의 마지막 직위를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행동을, 이루어낸 일들을, 남긴 자취를 생각합니다.
‘검사장’ 또는 그 이상을 인생 목표로 삼은 분들, 충분히 이해됩니다. 열과 성을 다해 일하고 정당하게 평가받아 더 큰 기회를 얻는 건 모든 직장인의 소망입니다. 그렇지만 악행에 앞장서고 진위를 뒤바꾸며, 동료들을 저버리거나 심지어 속여가면서 자리를 얻고 지키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고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야 하는’ 검사입니다.
더럽게 일해 자리를 얻지 않겠다는 것은 칭찬받을 생각도 못됩니다. 도둑질로 부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것만큼 당연한 소리입니다.
인생은 길고, 이름은 오래 남습니다. 때로는 ‘직위’도 남겠지만 대부분 자기만족에 그치거나 묘비명에나 적힐 뿐이고 추한 이름에 가려질 때도 많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아니라 그냥 ‘원균’입니다.
어디서, 무엇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시계를 많이 돌리지 말고, 그 이전 잘못들, 예컨대 수차례의 인사권, 지휘권 남용은 여기서 묻지 말고, 2020. 11. 초에서 시작해봅시다.
‘재판부 분석 문건’이 그의 손을 거쳐 법무부 감찰담당관실로 전해집니다. 지난 2월 그 문건을 보자마자 격노했다고요? 글쎄, 저는 ‘서사를 이끌어내느라 동원된 허구’라고 봅니다. 아마 ‘짜증’은 났겠지요. 그 문건의 작성 취지가 ‘중요사건 공소유지에 보탬이 되자’는 건데, 그중 몇몇 사건에서 그는 기소를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불기소 검토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가 중인환시리에 민망한 말까지 들었습니다.
‘판사님이 기분 나쁠 정보 취합’에 그토록 치를 떠는 정의감의 화신이 ‘화장품회사 사주의 해외원정 도박’을 기소하면서 ‘원정도박 수사의 ABC’라는 회사공금횡령과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외면한 건 무슨 이유입니까. 저처럼 기업수사 문외한도 그 무렵 모 회사 사주가 그 3종 세트로 처벌받은 걸 알고 있습니다.
진실로 문제점을 인식했다면, 그 문건의 작성자로서 수사지휘과장에게 전달한 2담당관에게 경위를 확인하고 경고했어야 합니다. 그와 2담당관은 몇 년 전까지 저녁 시간에도 가끔씩 보는 사이였습니다.
‘특수통 검사들이 언론플레이를 하려고 만든 문건’이라고요? 11월 이전에 그 문건 내용이 어느 언론에 나왔습니까? 누가 먼저 이 문서를 꺼내들었습니까? 일선 지휘에 참고하라고 작성했고 일선에 배포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언론플레이에 씁니까?
‘개인정보보호법위반’이라고요? 판사와 검사가 인척간이다, 이런 말을 동료로부터 듣고 전하면 처벌받는 세상입니까? 남에 관한 어떠한 얘기, ‘누가 이혼했다’ 같은 말을 함부로 했다가 큰일 나는 1984의 세계입니다.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는 가깝고 먼, 크고 작은 원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주동세력의 오판을 제외하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이 문건을 꺼내들어 ‘결정적 한 방’이라고 확신을 심어준 그 지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이라면 오판일 수 있지만, 적어도 검사라면 조작이고 왜곡입니다. 브레이크가 최소한 두 번은 작동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감찰담당관실에서는 문건을 검토한 검사가, 11. 24. 이른바 ‘6인 회의’에서는 검찰과장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지만, 보고서에서 삭제되거나 오히려 질책을 당했습니다.
사실과 법리가 아니라, ‘주문’을 외워 ‘사찰’로 둔갑시키려던 마술은 문건이 공개되면서 멈춰집니다. 소통도, 맥락도, 상식도 없는 부조리극 속에서 기다리던 ‘고도’는 오지 않았습니다.
문건을 변호인에게 전달했다는 이유로 상관을 찾아가 항의한 누군가의 마음도 쉽게 짐작됩니다. 그것이 공개되지 않았어야 마술이 계속될 수 있었으니까요. ‘무서운 이야기가 가득한 사찰 문건’이라며 여론을 몰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결정적 한 방’에 속았던 분들, 뒤늦게 ‘아차’ 싶었겠지만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내려오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조선의 첫 번째 사화는 이극돈의 참소로 시작됩니다. 사관 김일손이 사초에 적어넣은 조의제문을 일찍이 보고도 문제 삼지 않다가, 자신의 비위사실을 삭제해달라는 요구가 거절되자 뒤늦게 ‘격노’했고, 때마침 신진사림을 손봐주려 빌미를 찾고 있던 연산에게 ‘제보’되어 참화로 완성됩니다. 신진사림은 ‘권력의 잘못을 눈 부릅뜨고 가려내는 역할’을 미련할 만큼 충실히 했습니다.
비루한 인생에 서글픔이 앞섭니다.
어떤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방송인이 세상에 이름을 알린 책에서 ‘보수 세력의 작동 기제는 욕망과 공포’라고 진단했습니다만, 욕망과 공포는 특정 이념과 무관하게 나약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민망한 말’이 있던 날 그 장소에서, 저는 더 민망한 말을 들었습니다. 상가에 모인 ‘특수통’ 후배들에게, 그는 전임 반부패부장의 이름을 언급하며 “내가 00보다 잘 할 수 있어, 나랑 잘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웬만한 초등학생도 그렇게까지 대놓고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원하던 자리를 얻고 ‘욕망’을 충족해서인지 후배로부터 민망한 말을 듣기 전까지는 꽤 즐거워보였습니다.
징계위에 그가 제출한 진술서에 ‘총장이 대통령 되면 검찰독재가 될 것’이라고 썼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총장이 대통령 되겠다고 했던가요? 정작 정치적 시각을 가진 이는 누구인가요? 얼마나 어렵게 얻은 자리인데 그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뛰어난 상상력이 빚어낸 ‘공포’가 그의 질주를 추동하는 강력한 엔진인가 봅니다.
2027.12.15. 까지
그의 질주가 얼마나 계속될지, 무슨 궤변과 거짓으로 덮으려 할지 모르겠으나,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전국의 검사들로부터 ‘위법 부당하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직권의 행사, 불순한 목적, 위법한 절차와 근거의 부재 등 구성요건 어느 하나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단순한 방조가 아니라, ‘계획단계부터 사태의 전반을 장악하고 핵심 역할을 통해 기능적으로 행위를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2027. 12. 15.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징계위에 출석하여 모해위증을 통해 2030. 12. 14.로 기간을 더 늘리지 않은 것이 이번 사태에서 가장 잘한 일이고, 그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번 일을 도운 분들께
“공직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했을 뿐' 따위의 말은 하지 맙시다.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도 그렇게 변명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검사만큼 무섭고 치명적인 사회악은 없습니다.
그때 당신들은 검사였습니다.
이민석 기자, by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