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에서 한때
1.미당 서정주 시 세계와 작품소개 --통신대 '현대시론' 리포트작성 제출된 일부
가) 서정주 시인의 시집에서 나타나는 작품세계와 시인의 소개
미당 서정주(徐廷柱)는 1915년 전라복도 고창군 부안면 신운리에서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의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가난한 농가에서 가난한 생활을하며 태어났으며,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1941년 ’화사집(花蛇集)‘을 첫 출간 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귀촉도’등도 발간하여 2000년 사망하기까지 15권의 시집을 발간 하였으며, 그는“시란 근본적으로 언어의 예술이다”라는 명제를 평생의 모토로 삼고 시적탐구와 모순과 갈등,해소를 위하여 통합하는 심미적으로 수렴되는‘영원성 과 불교적인 상상과 은유설화’로 1961년제4시집 ‘신라초‘를 출간 하였으며 1968년 제5시집 ’동천‘를 출간 하였다.
’신라초’에서는 신라를 주제로 한 실험적인 시작을 모았으며‘동천’은 신라초의 연장 작업으로 블교에 공부한 은유법울 실현한 시편들을 수집 하였으며 시작에 절정을 이루는 시집들이다.1975년에는‘질마재 신화’를 연작으로 제6집‘질마재의 신화’를 간행하여 서정주의 고향 질마재의 성과 욕,인간과 자연의 이승과 저승등이 서로 넘나드는 원초성의 세계이자 신라의 풍류도가 여전히 관류하는 웃슴과 화합의 세계로 심미화 되었다.1942년 부터는 일제에 협력을 하여 창씨를 개명하고‘국민시가‘1945년 해방의 공간에서는‘한국청년회‘조선청년문학가협회에 참여하여 친일의 협력으로 그의 시인으로 평가는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80세 이상으로 오랫 동안 생존하여 일제강점기의 일제치하의 저항과 독립 그리고 감옥으로 옥고를 치룬 30세 이하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시인들보다 수 많은 시집과 우리문학의 세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 시문학에 우뚝 솟는 시인으로 남아 있다.
이 시집‘미당서정주신선집“ 김화영엮음 2001년 시와 에서 발행한 시집에서는’자화상‘화사‘견우의노래‘귀촉도’‘학‘국화옆에서‘동천‘등의 대표적인 시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작품의 세계는‘영원성추구‘와’‘ 불교적 상상과 은유설화’등 인간의 세계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사상으로 작품을 형상화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선덕여왕‘박혁거세의 어머니 ’헌화가‘춘향’누님 .질마재의 신화에서는‘석녀 한물댁의 한숨’등 여성들을 등장시키고 있으며‘도화 도화’목화‘국화옆에서의 국화‘’꽃피는 것 기특하여라‘꽃밭의 독백’꽃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수록 되어 있다. 여타 다른 주제로 우리 인간의 삶을 노래 하였으며,
우리 문학사의 대표로써‘시인부락의 족장’‘언어의정부로’써 한국적인 원형으로 전통의 세계를 언어미학으로 형상화하는 탁월한 역사성과 세련된 시적언어를 달성한 시인으로 각인되며 우리 문학사에 거족의 족적을 남긴 훌륭한 시인이다.
2. 본 론
가) 서정주 시를 소개하고 싶은 작품과 그 이유
그 동안 코로나로의 여파로 우리들의 삶은 팍팍 하여지고 흉흉한 인심속에 경제적으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이렇게 노후에 우리의시문학을 즐기며 인생을 산다는것도 삶의 행복이요 즐거움이라 생각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미당서정주시인의 시선집에서 아래의 시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새겨 보고져 한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솥짜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의 굮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와아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닢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았았나보다.
미당서정주 시선집 김화영 엮음 55페이지
가을은 역시 국화의 계절이라 할 정도로 우리들의 주변에서 국화꽃을 찾고 위의 시 국화옆에서‘의 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한 껏 가을의 서정을 느끼게 한다.
동양문화권에서’국화‘는 오랫 동안 절개의 상징으로 표상되고 있으며 선비의 기상이라고도 하여 ’梅.菊.竹.松‘를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즉 겨울이 오기 전의 서리의 차가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절개를 의미하는 자연적이고 관습적인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정주시는 국화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였다. 그것은 인고(忍苦)의 몸부림과 원망(怨望)‘의 정서와 관련 되어 있다.
또한 젊은 날의 방황과 고통을 겪고 안 다음에 이르는 여인의 완숙미를 상징 한다. 위에서 서정주시인은’절개와‘와 인고의 세월속에 전통적인 상징위에 ’누님‘이라는 이미지를 덧 입혀’인고와‘와 완숙미라는 개인적인 상징을 창조 하였다. 우리들에게 ’소쩍새‘먹구름 같은 천둥’내누님‘의 비유는 이시의 절정에 달한다.
‘자 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셋해동안 나를키운 것 팔활(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어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별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자화상) 미당시전집 .민읍사 25페이지
미당 서정주시인은 1930년대의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일제의 지배를 받고, 조선의 사회에의 불평등한 신분사회에 저항하고 가난하고 처참한 현실을 이렇게 노래 하였다. ”애비는 종이었고“ 나의 가난한 삶은 팔할(八割)이 바람이었다. 이러한 역경의 인생의 삶을 긍정적으로 당당히 제시하는 가난.불행. 수치.등을 뻔뻔하 만큼 당당히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서정주 시인은 이마우에 얹힌 ‘시의 이슬’로 상징되는 시인의 장화상을 인상 깊게 천명을 하였다. 기존의 권력과 제도이고‘애비’는 종이었다에서 기존의 제도에 대한 반발과 부정을 시인은 자기정체성으로 연결된다.애비를 부정하고‘외할아버지를 인정함으로써 ’바다로 상징되는 넓은 세상, 미지의 세계를 나가게 되는 긍정의 힘을 주고 있다.
힘겨운 일제강점기의 삶의 고난의 시기에 방랑과 고난의 역경을‘바람 ’으로 정신적 고통 그리고 육체적인 방황을 어디에도 자유로운 상징성과 시의 형상화를 이루고 있다.
3.결 론
위에서 같이 미당 서정주시인은 1930년대에 ‘시인의 족장’‘언어의 정부’등의 많은 문학활동을 하였으며 위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2편을 제시하였으나 그 외에도 ‘화사(花蛇)’‘귀촉도’‘목화’‘학(鶴’‘동천’등의 15권의 시집을 발행하여 시인의 족장으로써 모습을 보여 주었다.주로 한국의 전통과 불교의 설화등으로 시의 형상화가 이루어졌으며,핵심주제는 인간의‘ 영원성’과 인간의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삶을 노래 하였다 주로 여성과 꽃 자연을 내면으로하는 시상을 그렸다. 끝
첫댓글 ‘국화 옆에서’는 친일시.
노오란 국화(황국, 黃菊)와 거울, 누님과 같은 시어가 일왕의 숭배와 관련이 있다.
‘황국’은 일본에서 지난 14세기 이후로 일왕과 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
‘고사기(古事記)’를 보면 ‘거울’은 일왕이 현인신(現人神)의 위상을 획득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상징물이다.
심지어 프랑스 출판사인 로베르 라퐁이 발간한 ‘상징사전’의 국화꽃에 대한 설명을 보면
‘16개의 꽃잎을 지닌 국화꽃으로 된 일본 문장엔 태양과 나침반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는데,
그 중심에서 일왕이 세상을 통치하고, 우주의 모든 방향을 집약한다’고 기술돼 있을 정도다.
서정주는 친일인명사전에 인명사전에 올랐다.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죽을 것을 강권하고, 일본 군대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종군기사를 썼다.
서정주 아버지는 2대 부통령을 역임한 친일파 김성수 집안의 마름.
전북 고창부자인 김성수도 친일파 : 고려대학, 동아일보 등...
‘오장 마쓰이 송가(松井伍長 頌歌)’(매일신보 1944년 12월 9일),
‘항공일에’(국민문학 1943년 10월호, 日文),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매일신보 1943년 11월 16일),
‘무제-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국민문학 1944년 8월) 등 친일시 4편과
친일 수필 ‘스무살 된 벗에게’(조광 1943년 10월), 친일 소설 ‘최체부(崔遞夫)의 군속지망(軍屬志望)’(조광 1943년 11월),
해방 후 자신의 친일을 해명한 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자전적 시집 ‘팔할이 바람’, 1988),
전두환의 56회 생일을 맞아 헌사한 축시 ‘처음처럼-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훗 날,
해방 뒤 미당 서정주는 친일하게 된 연유에 대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 는 미당의 고백신일에 드리는 송시’(1987년 1월 18일) 등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자료가 줄줄이 이어진다.
이하 생략....
친일 서정주와 괴이쩍은 짓으로 미투 당한 고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난 둘다 여엉~ 어쨌든 시는 더 없이 좋은 시지요 서정주 시인의 시는
사람을 보지 않고 시 만 사랑합니다
저도 사람은 보지 않고 시만
사랑합니다
그의 주옥같은 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