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 엠마 스톤의 라라랜드 입성기
공황 발작을 앓던 소녀는 자라서 엠마 스톤이 됩니다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1931)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에리조나 출신 소녀가 수많은 오디션에 도전한 끝에 ‘라라랜드’ LA에서 스타로 성공하는 이야기. 영화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아니 엠마 스톤의 진짜 이야기다. 맥스무비 편집부
열다섯 살에 TV 오디션을 보며 활동을 시작한 엠마 스톤은 2007년 '슈퍼배드'로 영화 데뷔했다. '라라랜드'는 엠마 스톤의 21번째 영화 출연작이다. 사진 splash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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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수달을 연기하다
그는 수달이었다. 두더지와 오소리와 두꺼비와 물쥐가 함께 떠난 여정에서 잠시 마주치는 녀석이었다. 두더지도 오소리도 두꺼비도 물쥐도 아닌 이상 그가 주인공일 리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연기해본 적 없는 열한 살 소녀에겐, 처음으로 무대에 서 본다는 사실만이 그저 중요할 따름이었다.
케네스 그레이엄의 아름다운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수다스럽고 배짱 두둑한 수달로 출연하기 전까지, 그의 하루하루는 위태롭기만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공황 발작이 문제였다. “친구 집에서 잘 놀다가도 별안간 집이 다 불타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식이다. 치료 방법을 수소문했다. 연극이 처방되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이 발작 증세를 완화할지 모른다고들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치료 목적으로 출연한 첫 연극에서 수달이 되어본 뒤, 그의 가슴 속엔 오로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한번은 연극 <신데렐라>에 의붓자매 중 한 명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치아교정기를 낀 그가 입꼬리 당겨 웃을 때마다 입술에 바른 빨간 립스틱이 자꾸 앞니에 묻었다. 참 좋았다고 그는 말한다. “(립스틱이 이에 묻는) 그 느낌이 참 매력적이었다”고 회상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확신한 게 그때다. 빨간 립스틱이 지저분하게 묻은 앞니를 드러내며 객석을 향해 웃던 바로 그때 말이다.
열네 살, 학교를 그만두다
'라라랜드'(사진)의 미아처럼, 열다섯 살 소녀 엠마 스톤은 LA에 도착해 디즈니 어린이 채널의 모든 오디션에 응모했고, 모든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사진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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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겠다며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둔 건 유명한 일화. 파워포인트로 직접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부모를 설득한 건 더 유명한 일화. 마돈나가 부른 ‘Hollywood’가 BGM으로 흐르는 방에서, 당신의 딸이 치밀하게 짜놓은 플랜을 브리핑 받는 부모님 손에는 그가 미리 쥐여준 팝콘까지 들려있었다던가. 섣부른 결정이라고 말리는 대신 서둘러 홈스쿨링을 준비하고 내친김에 LA로 이사 갈 계획까지 세운 부모님은, 어쩌면 열한 살 딸이 처음 연기한 그 연극 속 수달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서 그가 연기한 수달은 집 나간 새끼를 줄곧 찾아다닌다. 아직 수영이 서툰 자식을 걱정하는 수달을 보며 두더지가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게 왜 걱정이지? 그 꼬마 애는 매번 길을 잃었다가 이내 곧 다시 나타나곤 했잖아. 모험심이 무척 강한 아이야. 왜, 집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져도 꽤 침착하고 쾌활하게 지내는 그 애를 우리도 발견한 적 있잖아. 그래서 이 부근에 사는 모든 이들이 그 애를 좋아한다니까.”
2004년 1월, 애리조나의 모험심 강한 수달, 아니 열다섯 살 소녀가 마침내 라 라 랜드(LA LA LAND), 아니 LA에 도착한다. 딸 역할을 찾는 디즈니 채널 시트콤의 모든 오디션에 도전한다. 그리고 이내 모든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모든 이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꽤 침착하고 쾌활하게’ 도전을 이어갔다.
스물일곱 살, 배우지망생 미아를 연기하다
'라라랜드'에서 미아가 어느 오디션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 남과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했던 배우 엠마 스톤의 내밀한 고백이자 다짐이 느껴진다. 사진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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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2년 뒤. LA, 아니 라라랜드(LA LA LAND)에 사는 배우지망생 미아의 마음을 헤아리고 연기해 낼 준비가 이미 그때 끝나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떨어질 걸 알면서도 씩씩하게 또 다음 오디션장으로 향하던 열다섯 살 소녀는 그때 이미, 충분히, 오롯이 미아였을 터였다.
그가 매 순간 별처럼 반짝이는 <라라랜드>에서 특히 한 장면. 어느 오디션장에서 노래 ‘Audition’을 부르던 그 장면.
“조금은 미쳐도 좋아 / 지금까지 없던 색깔들을 보려면 / 그게 우릴 어디로 이끌진 아무도 몰라 /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렇게 반항아와 이단자와 화가와 시인과 광대를 예찬하는 그에게서, ‘빨간 립스틱이 지저분하게 묻은 앞니를 드러내며 객석을 향해 웃던’ 어린 날의 그를 본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 받고 우쭐했던 신데렐라의 경험 때문에 배우가 된 사람들 틈에서, 앞니에 묻은 립스틱의 질감이 혼자 짜릿했던 의붓자매를 연기한 경험으로 배우가 된 그가 갈 길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라랜드' 촬영장에서 카메라를 보고 있는 엠마 스톤과 다미엔 차젤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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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울음이 터지면 몇 시간씩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영아 산통(baby colic)을 겪으며 이미 갓난아기 때 성대결절이 생겨버린 그였다. 결국 쇳소리에 가까운 허스키한 목소리를 핸디캡으로 떠안고도 마침내 배우가, 그것도 무려 뮤지컬에서 노래하는 배우가 된 그의 각오 또한 남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꿈을 꾸는 그대를 위하여 / 비록 미치광이 같다 하여도 / 상처 입은 가슴을 위하여 / 우리의 시행착오를 위하여”
그러므로 그것은 단지 노래만이 아니다. 남과 같을 수 없는 출발선으로부터 남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결승점을 향해 뛰는, 어느 단단한 배우의 내밀한 고백이자 결연한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그가 묻는다. 미아가 묻는다. 잠시 미아의 입을 빌린 배우 엠마 스톤이 묻는다. “Where are we?” 세바스찬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다. 우리도 그 질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그러나 어쩌면 열한 살의 그가, 엠마 스톤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의 그가, 그러니까 아직은 에밀리 진 스톤(Emily Jean Stone)으로 살던 시절의 그가 출연한 생애 첫 작품에 이미 답은 담겨 있을지도. “그게 왜 걱정이지? 그 꼬마 애는 매번 길을 잃었다가 이내 곧 다시 나타나곤 했잖아. 모험심이 무척 강한 아이야. 그래서 모든 이들이 그 애를 좋아한다니까.”
글 김세윤(영화 칼럼니스트) ⓒ ZUM 허브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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