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더스의 개를 읽었어요
1991년에 발행된 책을 읽었습니다. 뭐라고 할 수 없는 동화를 향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정회원이 되는 데 필요한 일이라서 느낌을 적어봅니다. 오래된 책이라서 최근에 나온 책들과는 그림면에서는 비교한다는 것이 공평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아무 준비는 없어도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동화세계로의 긴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넬로, 아마도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우유배달을 하는 듯합니다. 힘든 환경에도 고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 넬로가 풀숲에서 죽어가는 개를 보고 마음이 아파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빈사상태의 개를 데려와 사랑으로 보살펴 건강하게 살려냅니다. 죽어가는 개가 자신들의 처지와 어딘가 비슷하다는 일체감과 연대의식이 있었을 것도 같네요. 할아버지 대신 파트라셰라는 이름을 얻은 새 생명을 얻은 개가 그들과 가족이 되고 우유수레를 끕니다. 그림에 흥미가 있는 넬로는 교회 벽의 루벤스그림을 보고 싶지만 관람료가 없어 볼 수 없습니다. 친구인 아로아를 그리다 그녀의 아버지 코제츠씨의 편견에 서글픈 일을 겪습니다. 코제츠는 아로아에게 넬로와 어울리지 못하게 합니다. 못된 어른의 횡포입니다. 친구도 없는 넬로는 겨울의 아이들 미술대회에서 일등을 하면 할아버지와 파트라셰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려 출품을 합니다. 출품을 마치고 돌아오다 귀여운 인형을 줍는데 어두울 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해 아로아를 찾아가 줍니다. 그날 밤 아로아네 집에 불이 나고 코제츠는 넬로를 의심하고 근거 없는 말을 퍼뜨려 넬로의 일거리를 끊어 놓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넬로의 말보다 코제츠의 말을 믿고 일거리를 주지 않아 할아버지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곧이어 넬로와 파트리셰도 세를 내지 못해 오두막에서 쫓겨나고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미술대회도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이 납니다. 추위 속에 헤매던 넬로와 파트라셰는 눈 속에서 코제츠씨의 지갑을 발견해 갖다 주면서 파트라셰를 아로아의 어머니에게 부탁합니다. 코제츠씨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음날 사과하러 갈 결심을 하지만 넬로는 교회당에 가서 성탄에 공개되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파트라셰는 전 주인 넬로를 찾아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함께 생을 마감합니다. 유명한 화가가 넬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찾아오지만 마을 사람들의 후회와 아픔만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이야기, 다 아는 이야기지만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할아버지와 넬로 그리고 파트라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코제츠로 대표되는 어른들, 부유함과 그에 휩쓸리는 동네 사람들, 그들과 달리 착한 넬로와 아로아 그리고 파트라셰가 선명하게 대비가 된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스승이요, 개가 오히려 감동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과 동물이라는 거대한 장벽마저 뛰어넘는 넬로와 파트라셰의 우정과 사랑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사랑을 베푸는 곳으로 알려진 교회에서 그것도 성탄절에 죽어간 그들에게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넬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았다는 것이, 파트라셰에게는 넬로와 함께 있다는 것이 서로를 향한 위로였으리라. 부로 평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의 곤고함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더구나 아무 이유도 없이 부모가 가난하기에 겪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달픔과 상대적 박탈감은 풀기 어려운 모두의 문제다. 또한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애완동물을 유기하는 일들이 다반사인가 하면 한편에서는 굶주림과 추위 같은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아 고통 받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애완동물 산업에 천문학적 비용이 사용되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보게 된다. 적절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우리의 심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늘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음악이거나 미술로 대표되는 예술일 수도 있고 문학일 수도 있다. 그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연령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 있고 또 동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가치관이 형성되기 시작하거나 감성의 발달이 진행 중인 어린이들에게 동화와 동요를 통한 아름다운 세상이 간접경험 된다는 것은 다른 것으로 결코 대체 될 수 없는 귀한 일이다. 그 일에 이 동화 “플랜더스의 개”는 여러 번 거듭 읽혀져도 좋은 글이다. 원작가인 위더에게 고마울 뿐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플란더즈의 개를 읽고 싶어 지네요.
애니메이션으로 내용은 다 알고 있지만 읽는 감동을 따를 수 없
겠죠^^ 변두리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