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화 이야기다. 나는 대작 영화보다 작은 영화를 좋아한다. 이런 영화를 독립영화, 또는 다양성 영화라고도 한다. 극장에 걸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슬쩍 내리는 경우가 많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죽고 죽이는 현란한 액션은 없지만 잔잔한 울림을 주는 영화들이다. 얼마전에 신촌에 예술전용 영화관이 생겨서 다양성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어서 좋다.
프랑스 영화가 주로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들이 많은데 오늘 언급할 영화도 그런 영화에 속한다. 어느 날 80대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수발을 받아야 한다.
그에겐 두 딸과 오래전에 이혼한 아내가 있다. 아내 또한 치매 초기 증상에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어 병상에 누운 남편을 보고도 그저 말 없이 먼 곳을 응시할 뿐이다.
이 영화는 소설가인 딸 엠마누엘(소피 마르소)과 아버지(앙드레 뒤솔리에)가 대부분의 분량을 이끌어 간다. 아버지는 직감한다. 자신이 예전의 자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젠 내가 아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살 수 없다. 아버지는 딸에게 죽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지만 딸은 단호히 거부한다. 어렸을 때부터 딸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했다.
아빠가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오죽 깊었으면 권총으로 쏴 죽이는 꿈까지 꿨을까. 그런 아버지가 이제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의 희망을 거부하던 딸이 어느 날 요양병원을 방문하니 아버지가 침대에서 울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불을 들추자 아랫도리가 온통 똥범벅이다. 아버지는 어눌한 발음으로 절규한다.
이렇게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샌드위치를 자기 손으로 베어 먹을 수 있는 사람, 삶은 계란을 직접 까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면 죽는 게 낫다.
오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알몸을 씻기는 낯선 요양보호사의 손이 살갗을 스칠 때마다 아버지는 수치스러움에 그저 허공만을 바라볼 뿐이다. 그나마 정신이 멀쩡해서 다행일까 불행일까.
아버지는 안다. 프랑스에서는 자신이 죽을 수 없다는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아버지의 부탁을 거부하지 못해 딸은 스위스 안락사 재단에 상담을 한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가 스위스다.
비용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스위스 재단 직원이 프랑스로 온다. 스위스는 프랑스와 옆 나라여서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처럼 기차 타면 한나절이다. 재단 직원은 친절히 진행 과정을 설명한다.
우리는 그의 자살을 도울 뿐이다. 직접 환자가 약물이 든 잔을 마신다. 선정한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죽고 싶다고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무려 15개의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조력사도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면 진행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것도 조만간 자기도 이렇게 되면 죽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각종 서류심사에서 통과를 하더라도 일단 스위스까지 가서 그쪽 담당 의사에게 최종적으로 다시 통과를 해야만 한다.
스스로 잔을 들어 술을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재단 직원의 말에 아버지는 옆에 있는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킨다. 이래도 내가 죽을 자격이 없는 건가요? 하는 표정이다.
스위스까지 가서 약물 주입 직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남편의 마지막을 위해 아내가 빨간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런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죽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아버지 상태가 약간 호전된다. 종일 누워만 지내던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을 수도 있다. 딸들은 기뻐한다. 희망이 보이는데 그래도 스위스로 가야만 하냐고 묻는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단호하다. 이런 삶을 끝냈으면 한다는 동영상까지 제출하지만 변호사는 불허한다. 아버지는 더욱 강한 어조로 다시 동영상을 촬영한다.
나는 이런 삶을 원치 않는다. 나는 죽고 싶다. 드디어 스위스로 떠나기 전날 가족들과 마지막 만찬을 한다. 평화로운 밤에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가족들 중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사람 죽기가 그리 쉽기만 할 것인가. 과연 아버지 앙드레는 무사히 스위스에 가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때부터 영화는 스릴러 영화처럼 조마조마하게 흘러가지만 결말은 말하지 않겠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Everything went fine이다. 다소 어두울 수 있는 영화임에도 브람스, 슈베르트 등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시종 흐르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지난 봄에 세기의 미남 배우 아랑 드롱이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안락사를 찬성한다. 안락사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안락사든 존엄사든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사느니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나도 그렇게 죽고 싶다. 아버지가 무사히 삶을 마감했으면 한다.
첫댓글 남의 일이 아니라
머쟎은 우리의 일이지요
웰다잉...
이것이 우리들 황혼의 남은 삶의 목표가 아닐런지요
누구나 웰다잉을 꿈꾸고 인명은 재천이라 했지만
하늘에서 데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본인도 주변 사람도 함께 고통을 받아야 하니까요.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추천도 합니다.
저도 얼마전에 이 영화를 보고 후유증이 대단했답니다.
여운이 너무 길어서 결국 영화평을 안 쓰고는 못 배기게 했네요.
우리들의 미래
두렵지요~
세상을 초월하지 않음에야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서도
오늘을 열심히 살면 닥칠 미래가 꼭 어둡지만은 않을 겁니다.
미래는 두려움의 씨앗이면서 희망이기도 하니까요.
정신차리고
살아야죠
운동으로 댄스도 열심히
하고~~^^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면 호랑이굴도 두렵지 않다는데
죽음도 오다가 춤추는 것 보면 되돌아가지 않겠는지요.ㅎㅎ
스위스를 여행했을때
그린델바트 호텔에서
안락사 를 도운다 는 사람 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앗! 나오미 님 올만에 보네요.^^
이 영화에서 느낀 것도 있지만 제가 훗날 요양보호사가 되려는 것도
말기 환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해서랍니다.
모쪼록 나오미 님의 건강한 날들을 기원합니다.
상영관에서 잘 보셨어요..
그것도 소피 마르소의 매력도요.
저는 감정이 심해 옆사람에게 피해갈까봐 못봤어요.
그 누구도 감정 동요 없는"플립"도 저는 저를 꾹 누르고 보느라 힘들었거든요..ㅎ
당사자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봐요.
내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마감하고 싶어요.아버지 의견처럼요..
한때는 책받침에 등장해서 수업 시간에도
남학생들의 혼을 빼놓기도 했던 소피 마르소도 많이 늙었더군요.
나이 먹어도 매력이 있는 배우가 소피 마르소이지 싶습니다.
태어날 때 내 맘대로 못했으니 죽을 때는 내 방식으로 죽었으면 하네요.
글 쓴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댓글이었습니다.ㅎㅎ
한국도 존엄사를 인정해주면. 좋겠는데 ,
요양원, 의료계의 반발도 많을것같은데요 ㆍ
한국의 유교문화 때문에 존엄사 승인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안락사를 허용하면 요양원 돈벌이가 조금 줄어 들긴 하겠네요.
요양원은 거동 불가 환자가 돈이니까요.^^
자살과 안락사는 무슨 차이일까요? 그냥 죽어버리면 끝인데.... ㅠ
섭이님, 자살과 안락사는 많은 차이가 있답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사람도 있지 않겠는지요.
저는 안락사는 찬성해도 자살은 결사 반대입니다.
그냥 죽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방법이 다르지요.
그래서 안락사를 존엄사라고도 하는 겁니다.
프랑스 영화나 음악을 대할때 마다 느끼는 건데..
유럽 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정서가 비슷하다고 생각 될때가 있어요~
특히 샹송은 코드 진행이 정말 우리와 비슷하거든요~
안락사는 저도 찬성 입니다..
슬픈 이야기긴 하지만 본인의 존엄도 지키면서 주변을 힘들게 하지 않으니까요~
우리 애 한테도 그리 말해 둡니다...
김포인 님은 저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듯합니다.
저도 프랑스를 많이 사랑하여
아주 오래전 경복궁 옆 사간동에 있었던 프랑스 문화원을 가끔 갔더랬지요.
공짜로 틀어주는 프랑스 영화를 자주 봤답니다.
대사도 못 알아들으면서,,ㅎㅎ
저도 딸에게 연명치료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줬네요.
저번에 진짜로 안락사 진행하는 영상을 봤는데
인사 다 하고 평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는
그러게 현재까진 실감이 안나지만
나 또한 저 입장이 되면 강력하게 원할 거 같은데
삶의 질을 우선시 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 할 것 아닌가
저건 우리의 일 우리가 죽을 권리를
알게 하는 영화네 아 스위스까지 안가도 죽을 권리를
가까운데서 해결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인간답게 죽을 수 있게 해줬으면 싶네 저 영화를 보고 나니
고마우이 현덕씨 좋은 영화 소개 해줘서
이 영화에도 존엄사 영상이 조금 나옵니다.
아득바득 열심히 살았으니 죽을 때라도 추하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죽음에 미추가 있겠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곡절 끝에 평화롭게 죽음을 맞는 것이 감동이었습니다.
운선님 칭찬에 글발이 서서 다음에도 존엄사에 관한 글을 써봐야겠습니다.ㅎㅎ
존엄사 관심사중 하나 입니다
안타까운 현실 ~
우리나라는 언제쯤 인정 될런지요 ^^
네, 존엄사에 대한 관심이 저와 같군요.
저는 오래전부터 노인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도 가끔
노인복지센터 같은 곳을 순찰하러(?) 가지요.
꾸띠님은 울 나라 존엄사가 인정될 때까지 오래 사시면 됩니다.^^
@유현덕 에구머니나 !!
울 나라는 보수적인 나라인데
언제 존엄사 될찌도 ~ ㅠ
후세에는 되겠찌요 ㅎ
영화 보고 싶은데 어디가면
볼 수 있나요 ?
@꾸띠 지금 극장에서는 벌써 간판 내렸을 겁니다.
천상 OTT에서 봐야할 듯요.
찾아 보면 있을 겁니다.
홧팅!!^^
신촌에 예술영화관이 있다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ㅎ
저도 흥행과 상관없는 아트상영관 프로를 찾아서 혼영을 즐기는 편이랍니다.
브람스와 슈베르트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니 영화가 보고싶어 지네요..
저는 아직 죽음이 너무 무섭습니다..
오래오래 살고싶어요..ㅎ
죽음이 무섭다는 것은 샤론님이 아직 젊다는 것입니다.
신촌으로 인디스페이스가 옮겨와서 자주 간답니다.
집에서 경의선 숲길 따라 걸어서 20분 거리네요.
물 만난 고기가 이런 기분일까요.
샤론님은 죽음이 무서우니 오래오래 사실 겁니다.ㅎ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인정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종교계의 반대가 극심합니다.
성폭행으로 임신한 10대 소녀의 낙태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안락사가 쉽게 인정되겠는지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존엄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할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죠.
맞습니다.
지금도 치료가 무의미한데도 온갖 의료기기에 연명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으니까요.
본인도 가족도 서로가 못할 일이지요.
저는 오래전부터 존엄사를 찬성하고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깜장콩 님은 안락사를 찬성하시는군요.
말기암 환자가 겪는 통증는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더군요.
빨리 삶을 마감하고 싶은데도 죽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통증도 힘들지만 죽지 못한는 게 더 힘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풍 끝나는 날까지 모쪼록 깜장콩 님은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