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연말로 접어들면서 ‘사상 최대’, ‘사상 최고’ 기록들이 쏟아지고있다. 달러화 약세로 유로화 환율은 도입 이후 사상 최고치로 올라섰다. 국제금값은 아직 사상 최고 기록을 깨지 못하지만 8년 내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내 경제만 보면 가계 빚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신용불량자 수도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가면서 내수 경기를 옥죄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연간수출액은 올해 사상 최대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또 외국인 주식투자 비중은40%를 넘기면서 주식 시장 개방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외환보유액도 150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 기록을 계속 경신 중이다.
사상 최대·최고는 특히 새로운 소식을 추구하는 뉴스의 특성상 항상 관심을끌게 마련이다. 최근 언론 지상을 장식하는 사상 최대, 사상 최고치 경제 관련기록들은 어떤 게 있을까. 또 최대·최고 행진을 이어가는 기록들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유로화, 국제 금값■
유로화 도입 시기는 2002년 1월 1일. EU 가입국 15개 나라 가운데 영국, 덴마크, 스웨덴을 제외한 12개국에서 단일화폐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유로화 출범 당시 유로화와 미국 달러화 환율은 유로당 0.885달러에 불과했다.그러나 12월 10일 현재 유로화 환율은 1.226달러로 출범 이후 사상 최고치다.2003년 들어서만 벌써 17% 이상 절상됐다.
국제 금값 역시 12월 9일 현재 런던 국제시장에서 온스당 409.55달러에 거래되면서 8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백금 가격은 온스당 801.90달러까지 치솟아 1980년 이후 최고 가격이다. 국제 금값은 연초에 비해 20% 가까이 오른셈이다.
유로화 환율 상승과 국제 금값 상승은 나타난 현상만 다를 뿐 근본적인 원인은달러화 약세에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미 연방금리의 저금리 기조 유지로 미국 달러화에 대한 가치가 유로화나 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에 도달한 유로화 가치와 금값은 이게 ‘꼭지’일까 아니면 강세가더 지속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유로화와 금값의 최고치 행진은 당분간 지속될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 약세에 따른 상대적인 유로화 강세는 추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원유거래 화폐로 유로를추진하겠다”는 알라보 실바 OPEC 사무총장 발언으로 유로화에 대한 수요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달러화 약세 지속으로 당분간 금값 하락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또 내년에는 금값이 온스 당 45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덕청 LG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 약세의 기조적인 흐름에 대비해 유로화 결제대금 비중을 높이는 게 우선 중요하다”며 국내 기업의 대응방안을 조언했다. 그는 또 “유로화의 상대적인 강세가 국내 기업들의 유럽시장공략 메리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럽시장 공략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로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계 빚, 신용불량자 수■
유로화 상승과 국제 금값 상승이 아직 ‘남의 나라’ 일이라면 가계 빚 사상최고와 신용불량자 수 사상 최대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2003년 3분기 현재 전체 가계 빚은 439조9481억원으로 사상 최고다. 전체 가계빚을 가구 수로 나눈 가구당 빚도 2921만원으로 종전 최고치였던 1·4분기 2916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2분기 잠시 주춤했던 가계 빚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이유는 가계 대출 증가폭이 큰 폭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카드 연체자에 대한규제가 심해지면서 카드 결제와 같은 외상 구매는 크게 줄었지만 부동산 담보대출은 크게 증가한 결과다. 한국은행의 조사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신용카드 상각채권을 고려하면 가구당 부채가 3000만원을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용불량자 수는 10월 말 현재 359만6168명을 기록해 9월에 이어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갔다. 경제 활동인구 2320만명을 기준으로 100명 가운데 15.5명은 신용불량자로 등록돼있는 셈이다. 신용불량자 수는 불과 2년 전인 2001년말 104만명에서 2003년 4월말 처음으로 300만명(308만6018명)을 돌파한 이후 불과 6개월만에 50만명, 16%포인트가 증가했다.
가계 빚과 신용불량자 사상 최고 수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가계 빚은 부동산 담보대출 한도 축소와 신용카드 사용 축소에 따른 감소 가능성이 보이지만 신용불량자수 증가는 카드사 현금서비스 한도 축소로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내년 1분기 중에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2분기 신용 구매의 대폭 축소와 부동산 담보대출의 소폭 증가로 가계 빚이 줄었던 것처럼 4분기나 2004년 1분기에는 줄어들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용불량자 수는 악성 채무자들이많을 뿐 아니라 대환 대출자들의 신용불량자 유입이 예견돼 증가 추세를 모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외환보유액, 외국인 주식투자비중■
2003년 11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1503억900만달러. IMF 외환위기직전인 97년 11월 72억6000만달러에 비해 20배 이상 증가했다. 외환보유액이급격히 증가하면서 외환보유액 가운데 200억을 떼어내 싱가포르 투자청과 같은‘한국투자청’을 설립한다는 방침도 정해졌다.
이처럼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증가한 배경은 외환위기 이후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투자의 확대에 있다. 실제 98년 1월 이후 우리나라에는 경상수지 흑자에서 988억달러, 외국인 직접 주식투자에서 380억달러의 자금이 새로들어왔다.
외환보유액 증가의 한 원인이기도 한 외국인 주식투자 비중은 올 10월 말 처음으로 40%를 돌파(40.1%)한 이후 11월 말 현재까지 40.1%를 유지하고 있다. 또코스닥 시장에서의 외국인 투자 비중도 계속 증가해 11월 말 현재 코스닥 전체시가총액의 13.6%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거래소 외국인 비중이 동일한 상태에서 코스닥 외국인 비중이 늘어난 만큼 전체 상장, 등록 종목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11월 말 현재 사상 최고 수준인 셈이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상무는 “외환보유액과 외국인 주식투자 비중은 상승속도가 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외국인 주식 비중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언제든 사상 최고치 수준에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올 한해 가계 빚 사상 최대, 카드 연체율 고공 행진에 따른 내수 시장 부진을만회해 준 일등공신은 수출이다. 올 한해 우리나라 수출액은 사상 최대 규모인1924억∼195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올 11월까지 수출액 잠정치는 1746억달러. 특히 11월에는 무역흑자 폭이 28억7000만달러로 확대돼 59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엄성필 KOTRA 해외조사팀장은 “12월에도 수출 증가세가 계속 돼 사상 최대 수출 규모인 1930억달러를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올 한해 수출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수출액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일 시장으로는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가로 떠올랐다. 전통적인 수출시장이었던 미국 시장에서도 선전한데다 유럽시장에서도 20% 가까운 수출 증가를 올렸다.
2004년에도 수출 최대 기록을 이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경제 규모가 커진데다세계 IT경기 회복으로 수출액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내년에는 수출 2000억달러 돌파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