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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이끄시는 사명자의 길 (행3-26)
2026년 8월 27일 (목요일)
찬양 : 사명
본문 : 사도행전 23:1-35절
☞ https://youtu.be/1RtzppeQnTQ?si=_ULcODd1PQ_Mf_2u
어제는 웨이브리즈 이사회가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멀리서 달려오신 이사님과 함께, 현재 웨이브리즈가 처한 상황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갈지 깊이 논의했다.
우선 송수민 이사님의 현재 추진하는 방향성을 플랫폼에 연결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을 일단 시험적으로 운영해 보기로 했다. 이어 10월까지 서류상으로도 대표 교체를 완료하기로 하였다.
5년이란 시간을 많은 소중한 분의 후원과 기도로 다음 세대를 위해 몸부림치며 달려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하지만 긴 시간을 달려왔지만,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물러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죄송하고 부끄럽다.
그러나 이제 송수민 대표가 이어받아 우리의 꿈인 다음 세대들에게 성경적 가치로 사는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을 보여주고, 지지하며 확산시켜 주님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뒤에서 조용히 기도할 것이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은 억울하게 붙잡힌 바울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소집된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당당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이로 인해 대제사장의 방해를 받지만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는 단호한 말로 율법에 어긋난 태도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임을 알고는 즉시 사과하며 율법의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5절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이런 바울의 말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상황적으로 보면 이 산헤드린 의회는 로마 천부장에 의해 긴급하게 소집된 비공식 회의였고, 바울은 선교를 다녀와 수시로 로마에 의해 교체된 대제사장을 알아보지 못해 그럴 수 있다.
반대로는 율법을 수호해야 할 대제사장이 율법을 어기고 재판도 없이 피고의 입을 치라고 하는 불법에 저런 사람이 대제사장일 리가 없다는 바울의 뼈있는 일침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곳에 모인 이들 중 일부는 바리새인이고 일부는 사두개인임을 알고는 이렇게 말한다. 6절
‘바울이 그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바울은 어떻게 이를 분별할 수 있었을까?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한 열심을 시각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크고 넓은 경문, 즉 말씀을 넣은 상자와 긴 옷술을 달고 다녔다. 반면, 귀족 계층이자 제사장 그룹이었던 사두개인들은 상대적으로 세속적인 헬라풍의 옷이나 제사장 특유의 화려한 복장을 입어 한눈에 구별되어 바울이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당시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는 파벌에 따라 무리를 지어 앉는 경향이 있고, 바리새파 출신인 바울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 바울은 이를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모세오경만 인정하며 부활과 영적 세계를 철저히 부인했던 사두개파는 현실 정치의 실세였다. 반면, 부활과 천사를 믿으며 율법을 엄격히 해석했던 바리새파는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로마는 이 둘을 아우르며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평소 서로를 끔찍이 혐오했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 처단이라는 목적 아래 위태로운 연합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부활'이라는 뇌관을 건드리자, 정치적 연합이 깨지고 본래의 맹렬한 증오심이 폭발한 것이다.
바울의 이런 행동은 위기를 모면하려는 거짓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씌운 억지 프레임인 성전 모독과 율법 파괴라는 말도 안되는 죄명을 벗고, 재판의 본질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가운데 부활하셨음을 분명히 드러내며 단숨에 핵심을 바꾼 탁월한 성령의 지혜였다. 원수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논쟁에 휘둘렸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 그들은 성령의 지혜에 철저히 압도당한 것이다.
그렇게 그곳에서도 바울은 논쟁의 중심에 서서 천부장에 의해 다시 갇힌다. 그밤에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다. 11절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성령을 통해 이 길에 결박과 환난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러나 이 결박과 환난이 구체적으로 로마로 가는 길임을 여기서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지름길을 준비하신다. 12-13절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산헤드린 공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바울을 죽이고자 했던 유대인들의 생각이 깨지자 이들 중 40여명이 이렇게 공모를 한 것이다. 이들에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할례를 베풀지 않는 바울은 율법을 파괴하는 자이며, 민족의 배신자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아울러 이 배후에는 복음의 길을 가로막으려는 사단의 교묘한 영적 전쟁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바울의 생질(조카)이 이 은밀한 음모를 우연히 엿듣게 하시는 '기막힌 섭리'를 통해, 이 암살 계획을 오히려 바울이 로마로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호송되는 지름길로 바꾸어 버리신다. 23절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보고를 받은 천부장은 바울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보병 200명, 마병 70명, 창병 200명 등 총 470명의 중무장한 군대를 동원한다. 그리고는 밤에 바울을 호위하여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에게로 안전하게 압송한다.
40명의 결사대보다 10배나 더 많은 군대로 호위하여 바울을 안전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보호는 오직 바울이 가진 로마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임을 기억하며 바울이 외친 사명을 붙든 믿음을 다시 묵상하게 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사명을 붙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탁월한 지혜와 하나님의 압도적인 보호를 묵상하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거대한 위기에 몰리면 당황하고 분별력을 잃기 쉽다. 그러나 사명을 붙들고 성령에 이끌린 사도 바울은 가장 위험한 그 순간에, 가장 탁월한 지혜로 문제의 본질을 복음으로 바꾸어 버렸다.
아울러 사명을 가슴에 품은 바울에게, 주님은 그 사명의 길을 재차 확인시켜 주셨다. 세상의 암살단보다 하나님의 보호가 얼마나 더 강력한지를 똑똑히 보여주시며, 그가 가야 할 로마를 향해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해 주신 그 은혜에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나에게는 내려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사명이 있고, 후반전 성령이 이끄시는 길을 걷는 자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제 100여일도 남지 않은 나의 내려가는 길이 진정 주님의 뜻을 이루고, 나의 후반전을 준비하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걷는 소중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아직 주님께로부터 후반전 삶에 대한 분명한 명령을 받지 못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사역을 명하셨기에 후반전도 큰 방향성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라마나욧선교회를 내려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향성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준비하신 주님의 길이 있음을 믿고 그저 이끄시는 대로 나아갈 것이다.
성령이 이끄시는 지혜와 보호를 믿으며 말이다. 주님, 바울을 통해 보여주신 사명을 붙든 자를 향하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지혜와 보호를 저는 믿습니다. 아니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최선의 길임을 믿습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한줄 묵상 :
<세상의 위협과 불확실성은 사명자를 결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사명을 붙든 자에게는 성령의 압도적인 지혜와 보호하심이 길을 내기 때문입니다.>
적용 질문 :
1. 최근 내 삶이나 관계 속에서 위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문제의 본질을 붙들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2. 지금 나를 두렵게 하고 짓누르는 '40명의 암살단' 같은 위협은 무엇이며, 오늘 나를 호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3. 인생의 전환점 앞에서 나의 뜻과 계획을 십자가에 내려놓고, 그저 주님이 이끄시는 방향을 온전히 신뢰하기 위해 오늘 내가 기도해야 할 제목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