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어느 순간, 문득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때가 있다.
유년 시절에서 청춘의 시절로, 그 청춘의 시절이 가고 다시 쇠락衰落의 시절로
전이轉移해 가는 속에서, 내 감성의 깊이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간, 내가 무無이었다가 유有이었다가 다시 무가 되는 그런 시간에
문득 펼쳐서 읽고 싶은 글 한 편이 있다.
디덜러스씨가 말했다.
“우리가 이토록 오래 살면서도 별 해로운 일은 하지도 않았다는 일은 하지도 않았다는 것 말이야.”
“하지만 좋은 일을 했잖아, 사이먼,” 몸집이 작은 노인이 신중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토록 오래 살아서 착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니, 하나님 덕분이야.”
스티이븐은 아버지와 그의 두 술 친구들이 지난날의 추억을 위해 축배를 들 때 카운터로 부터 세 개의 술잔이 들려 올라가는 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운명, 아니 기질의 심연深淵이 그들로부터 그를 갈라놓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그들의 마음보다도 한층 더 늙은 듯싶었다. 그것은 마치 달이 보다 젊은 지구를 비추듯 그들의 갈등과 행복, 그리고 후회를 싸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들에게 약동했던 삶과 젊음은 이제 그에게 약동하지 않았다. 다른 애들과의 우정의 즐거움도, 거센 사나이의 건강한 생기도, 부모에 대한 효심도 그는 알지 못했다. 단지 차갑고 잔인하며 사랑 없는 육욕 이외에 그의 영혼 속에 약동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유년 시절은 죽었거나 아니면 잃어버렸고, 그와 함께 소박한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영혼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달의 불모의 폐각貝殼처럼 생의 한가운데를 부동하고 있었다.
그대가 그토록 창백함은
하늘을 오르고 땅을 굽어보며
친구도 없이 헤매임에 지쳤기 때문인가.....“(셀리의 시 달에게)
그는 셀리의 단편 몇 줄을 혼자 되풀이했다. 슬픈 인간의 헛됨과 활동의 광대한 비인간적 순환의 교차가 그의 마음을 차갑게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인간적이고 헛된 비애를 잊었다.”
망명지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일부분이다.
아직 삶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 같은 젊은 시절에,
인생을 이미 다 살아버린 것 같은 생각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안개가 피어올라
온 대지를 서서히 소리도 없이 뒤덮어 가는 것 같을 때의
무기력과 허망감, 그리고 쓸쓸함,
그것을 헛됨이라고 정의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에 문득 새로운 희망이 움터오기를 기다리는 것,
그러면서도 가슴 한 귀퉁이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실감하는
그게 나이 들어감의 큰 슬픔이 아닐까?
2026년 5월 1일
도반 전성수형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