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마을 철엽
집에서 아침체조와 요가 비슷한 것을 20여 가지 팔굽혀펴기 상체 들기 골프 헛스윙 등 모두 마치고, 샤워 면도 후 모처럼 긴 운전이라 냉각수를 확인하니 이상 없다.
오늘이 광복절 서둘러 태극기를 계양하고 출발 한다.
천호대교 건너니 천호역 5호선이다 강동역도 5호선이었다. 나는 2호선 강나루역과 헷갈린 것이다. 약간 여유 공간이 있어 세운 뒤 4출구를 쳐다보니 같이 갈 초등생 친구가 모인다.
중부선 상일IC로 올라간다. 차는 약간 밀린다. 음성 휴게소에서음료수와 간식을 먹고,
증평으로 나와 초정 구녀 산성을 오르며 창을 열고 에어컨의 열기를 식힌다. 산의 푸릇한 냄새가 코에 상쾌하다 정상의 이티 봉은 구녀 산성의 신축으로 열지 않는다. 산 너머 방죽을 내려서니 미원이다. 미원삼거리서 금관 입구를 지나와서 유턴하여 곧바로 찾아간다. 문명의 이기인 네기베이션 믿고 오다가 낭패를 보고 몇 번 전화를 하는 다른 팀도 있다. 내 차는 네비가 미 장착으로 나의 직감인 배꼽 네비를 사용한다, 서울서 3팀 중 우리가 가장 빠르다.
산속에 지은 황토벽의 큰방에서 음식상에 잔치가 벌어지고 두 마리 염소를 알맞게 삶은 것을 과방을 맡은 lee씨가 정갈하게 골고루 썰고 찢어서 고기 껍데기 기름기 있는 곳을 석어 준다, 잔치의 성패는 늘 과방을 보는 사람의 마음과 봉사정신에 달린다. 우리는 친구의 노고와 자진 봉사에 고마움을 느낀다. 봉사자는 말이 없고 늘 겸손하다. 자연산 깻잎에 양념을 한 것에 고기를 싸서 입에 넣어주는 우리 동네k씨의 마음씨에 더 정겨워 깻잎을 한 접시 더 달래서 오이 양배추 무침과 토장에 찍은 마늘 고추로 입맛을 한층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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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울서 2진이 도착한다. 그러자 p씨가 평소 산에 등산을 다니다 캤다는 산삼으로 담은 1년 묵은 산삼 주를 꺼내와 기념 촬영을 하고 병을 열어 냄새를 맞보니 산삼의 향이 짙다. 친구를 위하여 귀한 산삼을 턱 내 놓는 친구의 덕망도 대단한 것이다. 그깟 30년산 양주 한 병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한잔 권하여 마시려니 마누라의 지시를 받은 두 명의 여인이 내게 눈을 흘기며 술을 못 마시게 눈치를 준다. 그리고 잔을 빼앗아 간다. 마누라의 영향력이 이리 크니 완전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인 셈이다.
3진이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 마중을 나간다. 담배 밭에 경운기로 스프링클러 만들어 물주는 것이 보이냐 그곳을 지나 고개를 넘어라 조우하여 내려 보내고 산 집 주위 촬영을 한다! 개울의 물에서 남학생들이 발을 담그고 수박과 소주와 맥주를 다시 마시고 있다.초등은 우리 동네 종친회 장소다. 류가가 6명이나 모였다.
집안 누가 빌라를 지었고 누구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아들이 출세를 했고
딸은 부자에 시집을 가 잘 사느니 …….
이에서 노래자랑과 색소폰 공연의 뒤풀이가 시작된다.
오늘 행사는 청주 한 벌 회장은 p씨 총무는 s씨가 주최한 행사인데 총무는 근무라 못 나오고 대신 초평에서 지서장으로 공직을 마친 o씨가 촬영을 하고 햇다.
우리는 이곳에서 늘 사회를 보던 고 정윤석공을 위한 묵념을 박 회장이 제청하여 고인을 위해 묵념을 한 뒤, 여흥을 시작했다.
어린이들 학예 회하듯 한사람씩 나와서 노래를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한바탕 즐기며 가식 없는 웃음소리가 화기애애하다. 우리 한벌초등학교는 시내 변두리 학교라서 도농이 반씩 섞인 곳이라. 과상미 와 소생이 와 증사관이와 모충동이 주축이다. 사직동과 시내 각 지역에서 전학치 않고 다닌 학생들은 개떡의 콩이나 동부처럼 끼어있는 편이다.
인근에 b씨의 집이 있어 구경을 갔다
한옥에 마당은 잔디 조롱박과 안락의자 그리고 실개천의 구름다리를 놓아서 건너편에 호랑이만한 큰 개가 있고 옥수숫대 끝에는 닭장이 있으며 집 뒤편은 박화 향과 소채가 잡풀 없이 크고 이름도 모를 화초가 많다. 정원에는 소나무로 멋들어지게 조경을 했고 바닥에서 공사 중 나온 큰 바위로 상처럼 만들어서 멋을 한층 더 한다. 개천에서 다슬기를 여러 마리 잡아 손바닥에 놓고 본다.
수박과 쑥 개떡과 농사지은 참외를 맛보고 미원장터에서 올갱이집으로 이동 저녁을 한다.
자기 집을 방문한 친구에 대접을 못해서 자기가 산다며 저녁을 b씨가 낸다.
그 친구는 두 딸을 출가시키고 자연에 살고파 이곳에 들어와서 몸과 마음이 많이 치양 되여 건강을 찾았고, 출가한 딸은 250억을 매출하는 큰 회사의 CEO가 되었단다.
어릴 적 우리는 내외를 하느라고, 아래동네라 그의 오빠와는 놀았지만 한마디 말도 섞지 않은 사이였다. 그냥 껑충해 키가 크며 잘도 뛰어 다니는 얼굴이 껌은 계집아이로 기억된다. 그의 아버지는 초계 변 씨 반가 후손이라, 노동을 않아 소득이 없자, 어머니가 소채장사를 해 집안 살림을 한 억척스런 우리세대의 어머니 상이었는데 6남매의 맏딸인 그녀는 어머니를 도와서 자기는 희생하고 동생들을 학교를 마치게 한 우리세대의 맏언니다.
이제는 쌓은 덕이 꽃을 피우는지 아주 가세가 확 피었다.
20130815 광복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