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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아버지는
6.25때 남침한 북한군 장교였다"
당시 학도병들
"경북 영천에서
인민군 상위 문용형 생포•••"
‘흥남철수 때 부모가 피난 내려왔다’는
문재인 발언은 거짓말
문재인은 2017년 5월 발간된
자서전 '운명'에서
부모와 큰 누나가
흥남철수 당시
미군 LST함을 타고
월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7년 6월
미국 해병대 박물관 연설에서
그는 "부모가 메러디스 빅토리호
{SS(Steam Ship) Meredith Victory,
1945년~1993년}를 타고
남한으로 피난했다"며
다른 말을 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명백한 거짓말이었음이
이번 취재로 드러났다.
故 윤월 스님
“1957년, 부산에서
문용형을 다시 만났을 때
어떤 여자가 그에게
‘재인이 아빠!’라고 불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하 문재인)의
아버지가
6.25 전쟁 당시
남침한 북한군 장교였다는 증언이
2021년부터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해 2월부터 나온
이 같은 증언은
지금도 인터넷과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웬일인지 당시 문재인 정권이나
한국언론은 애써 침묵하고 있다.
평소 그들의 언행으로 봤을 때
'가짜뉴스'라고 주장 할만 하지만
'문재인 사람들'은
이 같은 증언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문재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아버지 문형용(1920∼1978)과
어머니 강한옥(1928∼2019)이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상선(商船) 메러디스 빅토리
(Meredith Victory)호를 타고
월남(越南)해
거제도를 거쳐
부산에 장착해 살았다고 말해왔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2017년 5월 발간된
그의 자서전 '운명'에도 등장한다.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누나 문재월은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미군의 LST를 타고 월남했다.
LST(Landing Ship Tank)는
전차상륙함으로 군함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취임 후
첫 방미 기간인
2017년 6월 28일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 해병대박물관에 위치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참배하면서는
"부모가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월남했다"고 연설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화물선이다.
한국에서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전차상륙함이라고 공표해놓고,
방미 중 연설에서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라고
다른 배를 언급해 논란을 낳았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문재인 자신만이 알 것이다.
또한 문재인은
지난 2018년
빅토리호 선원들의
방한을 앞두고 보내온
편지의 답장에서
“흥남철수 때
훌륭한 미국선원들이 없었다면
나의 부모님이
거제도에 오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답장한 바 있다.
〈편집자 주:
흥남철수 작전은
중공군이 6.25 전쟁에 개입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간
동부전선의 미군 10군단과
국군 1군단을
흥남항에서
피난민과 함께
구출시킬 목적으로 실행된
대규모 철수작전을 말한다.
이 작전을 통해
10만명의 연합군과
9만명의 민간인이
무사히 적진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유엔군의 작전 암호명은
비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 카고
(Christmas Cargo)’로
알려져 있으며,
철수 작전이 큰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크리스마스의 기적
(Miracle of Christmas)’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6.25 당시
문용형의 행적을 폭로한
학도병들과 방첩대원의 증언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문재인의 발언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사람은
학도병 출신의 윤월 스님
(2021년 9월 14일
88세로 작고, 속명 서승남).
故 윤월 스님은
2021년 2월 16일
유튜브 ‹뉴스타운TV›
(대표 손상윤, 주필 조우석)에 출연해
“나와 2명의 학도병이
1950년 8월 29일,
경북 영천 보현산에서
북한군 상위
(한국군의 중위와 대위 중간 계급)
문용형을 생포했다”고 증언했다.
자신을 백선엽 장군 휘하 부대원으로
상주, 다부동 전투 등에
참전한 학도병이라고 소개한
윤월 스님은
“다부동 전투 이후
북한군 장교 13명이 투항하는 등
전세가 국군에게 유리해지자
상부에서는 우리에게
6사단, 8사단 작전지역인
영천 보현산에 주둔 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윤월 스님은
“8월 29일,
보현산 풀숲에 숨어있던
인민군 상위 문용형을
우리가 체포했다”면서
“당시 문용형이
‘투항 한다’고 해놓고는
우리 지시를 따르지 않아
내가 폭력을 행사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월 스님은
“우리가 문용형에게
‘투항 할 생각이면
흰색 러닝셔츠를 벗어 흔들라’고
말했지만
그는 진짜 투항 할 의사가 없는 듯
숨어서 우리말을 따르지 않았다”며
“이에 화가 난 내가
생포 후 문용형을 구타하자
그는 ‘제네바 협정’ 운운하며
내게 거칠게 대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문용형은
30세의 북한군 장교였고,
윤월 스님은 17세의
소년병이었으니
문용형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윤월 스님은
“당시 문용형이가
자신의 이름을 문용준이라고
밝혔던 기억이 난다”면서
“아마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이름을 개명(改名)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윤월 스님 등 학도병들은
생포한 문용형을
상급부대에 넘겼으며
부대에서는 조사 후
문용형을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 4월 14일,
영천시 화북면에서 만난
80대 남성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며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영천(당시는 영천군)에서
오래 산 노인들은
6.25 때 학도병들이
보현산 전투에서
북한군 장교를 생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 사람 이름이
문용형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 된 후
‘6.25 때 잡힌 인민군 장교가
문재인 아버지’란 소문이 돌았다.
나도 그때 들었다.
지금도 영천에는
‘문재인 아버지가 여기서
포로로 잡혔다’라고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남성이 기자에게 소개시켜준
70대 여성도
“나도 몇 년 전에 소문을 들었다”면서
“영천에는 문재인 아버지 생포를
사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문용형이 학도병들에게 생포된
경북 영천 소재 보현산의 정상석
한국전 당시 영천 지역에서
북한군과 전투 중인 국군의 모습
한편 학도병 서승남(윤월 스님)은
문용형 생포 며칠 후인 9월 1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귀휴(歸休) 명령을 받았다.
불과 3개월간의 짧은
학도병 생활은 이렇게 끝났다.
그는 부상으로 인해
전시 현역입대는 못하고,
학교를 다니며
미군 151 공병대대
통역관으로 일했다.
윤월 스님은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30일,
해병대 31기로 자원입대해
백령도, 해병사령부 정훈감실,
진해 보급창 등지에서 근무했다.
윤월 스님이
해병대 입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북한군에 의한 형의 납치와
누나의 죽음 때문이었다.
해병대는 입대 3년만인
1956년 9월 전역했다.
윤월 스님이
문용형을 다시 만난 것은
전쟁이 끝난 후 4년만인
1957년 8월 18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였다.
다음은 윤월 스님의 증언내용이다.
“시장을 걷다가 우연히 만났다.
세월이 7년 가까이 흘렀지만
문용형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도 나를 금방 알아봤다.
문용형이는 뒤끝이 있었다.
과거 1950년 8월 생포과정에서
내가 폭행한 사실을
마구 따지고 들었다.
나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이때 어떤 여자가
그에게 ‘재인이 아빠!’라고 불렀다.
당시 문용형 곁에는
7∼8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문재인)가 서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난 큰 의문을 갖고 있다.
문재인이가 53년생이라면
당시 만 4세의 나이일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그 아이는
만 4세의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4세와 7∼8세아이를
구분 못하겠는가?
난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문재인 1949년생 설’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후 윤월 스님은
문용형을 세 번째 만났다.
“나는 1964년
불가(佛家)에 귀의(歸依)했다.
이후 1966년 또는 67년,
부산 영도다리 옆
약재상 거리를 걷다가
문용형이를 또 만났다.
이때는 세월이 흘러
옛 감정이 많이 사그라든 탓인지
그냥 서로가 쳐다만 보다가
‘피식’ 웃고 헤어졌다.
노무현 정권 때
문재인이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 하는 것을 보고
옛 기억을 되살려 보니
그의 아버지가 문용형이란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됐다.
내가 나이가 먹었어도
기억력 하나만큼은 뛰어나다.
내가 이제 와서
이런 증언을 한 것은
갈수록 문재인이가
아버지와 같은 공산주의자란
사실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 공산당에 의해
집안이 멸문(滅門) 당한 사람이기에
‘빨갱이’라고 하면 이가 갈린다.”
6.25 당시 거제도 포로 수용소의 모습
이 곳에 수용됐던 문용형은
1953년 6월 반공포로 석방으로
수용소를 빠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학도병 전우였던 김철수 씨,
문용형 생포사실 인정하면서도
윤월 스님 폭로 강력만류...
알고 보니 아들이 민주당 시의원
윤월 스님의 증언이
‹뉴스타운 TV›를 통해 방송되자,
많은 국민들과 우파진영은 들끓었다.
윤월 스님의 증언내용은
문용형을 함께 생포한
학도병 출신 김철수 씨에게도
전해졌다.
김 씨는 방송 후 6일 만인
2월 22일,
윤월 스님이 머무는
충청도 모 사찰로 스님을 찾아왔다.
그는 사찰까지
광주광역시 민주당 시의원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왔다.
김철수 씨는
윤월 스님과의 만남에서
“얼마를 받아먹고
이런 짓을 하느냐?”고
면박을 준 후
“문재인 대통령 아버지와
관련한 폭로를 즉각 멈추라”고
요구했다.
이에 윤월 스님은
김 씨를 진정시키며
“나와 함께 증언 하자”고
설득을 했다.
그러나 김 씨는
“그럴 수 없다”며
스님의 제안을 거부했다.
아마 그는 민주당 시의원인
아들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김 씨는
문용형의 생포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윤월 스님은
“김 씨가 내게 공개증언을
더 이상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는 했지만
“문용형 생포사실과
1950년 8월 29일이라는
생포일자(日字) 만큼은
분명히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또 윤월 스님은
“김 씨와는 2020년 4월에도 만나
함께 기억을 더듬으며
문용형 생포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며
“그러나 내가 유튜브 방송에 나가
공개증언을 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윤월 스님은 이날
김 씨와의 만남에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다음은 윤월 스님의
계속되는 증언이다.
“김철수 씨는 학도병으로
전투를 치르다 현역입대를 했다.
현역생활을 하던 김 씨는
우리가 생포한
문용형의 근황이 궁금해서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그를 찾아갔다고 하더라.
당시 김 씨는 문용형이를 만나서
안부를 묻는 등의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결과
문용형이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으로
1953년 6월 18일부터 21일까지
단행된 반공포로 석방으로
거제도 수용소를 빠져나왔다.
이후 문용형은
거제도에 잠시 거주하며
사찰(寺刹) 청소부 등의
잡일을 하다가
부산으로 이주해 살았다.
기자가 거제도에서 만난
박모(78)씨는 이렇게 말했다.
“난 평생을 거제도에서 살았다.
우리 거제도 토박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이
거제도란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과거 문재인이 서울에서 열린
거제도향우회 모임에 참석하려다
쫓겨난 사실을 알고 있는가?
거제도 사람들은
웬만한 사람들끼리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연결돼 있다.
문재인 아버지란 사람은
(당시에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반공포로 석방 후
잠시 거제도에 머물다
타지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하게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동네 형들은
그의 인상착의를 분명히 기억한다.
확실한 것은
그가 섬에 머물 때
결혼 한 적도
애를 낳은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한편 윤월 스님의 증언 직후
〈뉴스타운 TV〉 측은
청와대에 윤월 스님 증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운 TV〉의 조우석 주필
(전 중앙일보 기자, 전 KBS 이사)은
“우리의 답변요청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측은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서
“아마 이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면
청와대가 난리법석을 떨며
증언자를 ‘고소하겠다’고
발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주필은
“윤월 스님과 김철수 씨의 증언으로 인해
문재인 부모의 흥남철수 및
자신의 출생 사실 등이
모두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거짓 인생을 살고 있는 문재인은
스스로 대통령 직을 내려와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무반응으로 일관하자
마침내 우파진영이 들고 일어났다.
지난 2021년 4월 2일,
국민혁명본부장 전광훈 목사와
윤월 스님은
청와대 앞 광장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에게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이날 윤월 스님은
“문재인 아버지 문용형을
영천 전투에서 생포한 사람은
나 서승남을 비롯
김철수, 소흥렬(작고) 3명의
학도병이었다”면서
“북한군 소속으로
자유대한을 침공한 아버지가
흥남철수 때 월남한 민간인이었다고
거짓말하는 문재인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윤월 스님은
“내 주장이 거짓이라면
문재인은 나를 고소하고
감옥에 보내라”고
강조한 후
“문재인은 거짓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속죄하고
대통령 직을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전광훈 목사는
“같은 종교인으로서
윤월 스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면서
“문재인이 침묵하는 것은
윤월 스님 등
당시 학도병들의 주장에
반박 할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 목사는
“문재인의 민낯은
세월이 흐를수록
속속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당시 방첩대원
“문용형은 1천5백명 부대원 지휘해
낙동강 전투도 참가했다”
윤월 스님의 증언이 도화선이 되어
문용형의 실체를 폭로하는
또 다른 주장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증언자는
6.25 당시 방첩대(CIC,
Criminal Investigation Command,
국방부 조사본부,
國防部 調査本部) 대원이었던
김인호(2021년 당시 96세)씨.
평북 영변이 고향인
그는 해방이후 북한 지역에서
반공활동을 하다
북한군에 잡혀
흥남 교화소(교도소)에 투옥됐다.
1950년 가을,
흥남을 수복한 국군 덕분에
교화소에서 풀려 날 수 있었다.
김 씨는 교화소를 나오자마자
국군에 입대,
방첩대원이 됐다.
이후 방첩대장 공병식 중령이
김 씨 등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흥남지역 공산당 핵심간부
문용형을 체포하라”
하지만 당시 김 씨는
문용형이 상위 계급장을 달고
남침했다가 그해 8월,
영천에서 포로로 잡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 씨는 2021년 3월 24일
‹뉴스타운 TV› 인터뷰에서
“문재인은 틈만 나면
자기 아버지가 갖가지 회유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가입을 하지 않은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문재인 아버지 문용형은
흥남지역 공산당 핵심분자”라면서
“6.25 때 흥남교화소 죄수와
소년병 등을 주축으로 한
1천5백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낙동강 전선까지 남침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문용형은 일제 강점기 시절,
함흥농고를 졸업하고
함경남도 함흥시 서쪽에 위치한
함주군 흥남읍 사무소
농업계장으로 일한 사실이 있다.
이 정도 직책이면
문용형은 문재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친일파(親日派)일 수밖에 없다.
또한 문용형은
해방 이후
김일성 정권 아래서는
함주군청 농무과장이자
조선노동당 핵심간부로 변신했다.
문용형이 1920년생이니까
그는 북한에서 20대 때
‘출세가도’를 달린 셈이다.
1950년,
김일성은 6.25직전에
전시동원령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중간관리급 이상
공무원에게는
장교 계급장이 자동적으로 주어졌다.
이 과정에서
함주군청 농무과장 문용형에게는
상위 계급장이 지급됐다.
〈편집자 주:
한국의 위관급 계급은
소위, 중위, 대위 3단계지만
북한은 소위, 중위, 상위, 대위
4단계이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문용형은 해방 직후 결혼을 해
1949년 북한에서
문재인을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친어머니는
지난 2004년 7월
금강산에 열린 이산가족상봉 때 만난
이모 강병옥(본명 안순옥)이 유력하다.
남한의 어머니 강한옥(2019년 사망)은
계모(繼母)가 확실하다는 것이
강한옥 주변사람들의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강한옥의 지인
A 씨(부산 거주)는
기자에게
“문재인의 주장대로라면
강한옥 씨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주”라면서
“내가 강한옥 씨와
한 동네에서 20년 이상 살았지만
강 씨가 함경도 사투리 쓰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A 씨는 “강한옥 씨가
남한으로 온 것이
23세임에도 불구하고
함경도 사투리를 안 쓰고
죽을 때까지
억센 부산 사투리를 쓴 점을
문재인은 어떻게 해명 할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이어 A 씨는
“문재인의 계모가
강한옥이란 사실은
부산 바닥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문재인 아버지가
남한에서 새장가를 가서
1남 2녀(문재인과 누나 문재월 포함
2남 3녀)를 낳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의 생가로 알려진
거제면 명진리의 한 농가.
그러나 거제도 토박이 노인들은
"문재인은 거제도에서
태어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이
절친인 송철호 울산시장에게
사석에서
‘나와 1949년생 동갑’이라고
말한 정보가 있다”
전직 고위 정보기관원 B 씨는
“2004년 이산가족 상봉당시
강한옥은 억센 부산 사투리로
‘병옥이가?’(병옥이냐?)라고 했고,
북한의 동생은
함경도 사투리로
‘언니 맞소?’라고 물었다.
23세에 월남한 강한옥이
함경도 사투리를
잊었다고 보느냐?”고 반문했다.
B 씨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50대의 문재인은
70대 이상만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이용한
가족 상봉을 해
정권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또한 당시 정보기관원들도
북한 여동생과
남한 언니의 닮은 모습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B 씨는
“지난 2019년 10월 29일
강한옥은
대통령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경호원도 없는 6인 병실에서
쓸쓸하게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며느리 김정숙이
병문안 한 번 가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지는 B 씨의 증언이다.
“강한옥이 입원했던
부산가톨릭 의료원
메리놀병원은
낡고 오래된
부산의 중형급 병원에
불과할 뿐이다.
강한옥은 자신의 아들이
대통령이란 사실을
병원 측에 알리지 않았고,
메리놀병원 의사들조차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강한옥이 문재인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0월 16일 문재인이
병원을 찾고 나서이다.
강한옥이 정녕 친모라면
문재인과 김정숙이
이처럼 홀대 했겠나?
아마 서울로 이송시켜
삼성의료원이나
세브란스병원 또는
서울대병원 같은
고급 대형병원 특실에
입원 시키고
청와대 경호원들로 하여금
병실을 지키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주 병문안도 다녔을 것이다.
강한옥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에 살았으며,
병원 6인실에서 지내다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난 이 상황을 보며
문재인 부부가 결코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B 씨는
“문형용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것이 1953년 6월인데,
1953년 1월생
아들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느냐”며
“나는 문재인이
1949년
북한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문재인이
절친인 송철호(1949년생)
울산시장에게 사석(私席)에서
‘사실은 나도 49년생’이라고
말한 정보가 있다”며
“현재 문재인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1952년
또는 1953년 출생년도는
모두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북한 태생인
49년생 문재인이
어떻게 남한에 와서
1953년 1월 24일생으로
둔갑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B 씨는 이렇게 말했다.
“6.25 전쟁 직후는
혼란이 극도로 심한 시절이었다.
정부 문서 관리도 엉망이었고
피난민이 하도 많아
생년월일, 이름 등을
제대로 파악 할 수조차 없었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그냥 불러주는 대로
가족관계가 만들어 질 때였다.
혼란을 틈타
문재인과 누나 문재월의
생년월일이 결정됐을 것이다.
당시에는 휴전선이
지금처럼 철통 같을 때가 아니라
남북을 오가며
이산가족을 연결 시켜주는
브로커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는 문용형이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거제를 떠나 부산에 정착했을 때
북한에 있는 지인과 연락이 됐거나
브로커들을 만났을 것으로 본다'
그들이 ‘어린 문재인’과
누나 문재월(현재 호적상 1949년생)을
부산까지 데려왔을 것으로 본다.
언론인 이도형(1933~2020,
전 한국논단 편집장)씨 등
일부에서는
문용형이 50년대 중반
입북해서 문재인과 문재월을
데리고 왔을 것이란 주장도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이 부분은 추정만 할 뿐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이다.
분명한 것은 문재인과 문재월은
흥남철수로 남한에 오지 않았으며
나이도 가짜란 사실이다.
문재인이 49년생이고,
호적상 49년생인 문재월은
그보다 한두 살 많을 것으로
추정 된다”
문재인의 어머니(계모) 강한옥
(왼쪽, 2019년 사망)씨와
이모로 알려진 강병옥
(가운데, 본명 안순옥으로 추정).
하지만 외모 등 여러 가지 정황상
강병옥이 문재인의 친모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문재인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던
2004년 7월
금강산 온정각 휴게소에서 열린
제10차 남북이산가족
첫 단체상봉에서
강한옥과 함께
북한의 강병옥을 만나고 있는 모습.
“문재인은 지금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부르는 대한민국의 신조어이다.
미국의 소설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지은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
(The Talented Mr. Ripley, 1955)에서
따온 말로 '리플리병'이나
'리플리 효과'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의학계에서
병명으로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문재인의 미스테리는
이밖에도 몇 가지 더 있다.
문재인은 지난 2012년 대선 무렵
자신의 유일한 거제도 친구라며
신해진이란 사람을
언론에 등장시켰다.
두 사람은 문재인이 7세 때
거제도를 떠나기 전
절친이었으며
50년만인 지난 2009년
다시 만났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은
홍보자료로 많이 사용됐다.
또한 거제도에서
문재인이 태어날 때
탯줄을 잘랐다는 ‘탯줄 할머니’
추경순(2012년 당시 82세)도
등장시켰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기자가 만난 거제도 노인들은
코웃음을 쳤다.
기자가 “문재인의 부모가
한국전쟁 때 월남해
거제면 명진리 남정마을에 살았고,
문재인이 어릴 때
부산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사실인가?”라고 질문하자
몇몇 노인은 비아냥거리듯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지”라고 말했다.
거제면에서 만난 83세 김모 씨는
“신해진이고 추경순이고
모두 소설을 쓰고 있다”며
“문재인이 여기서 태어난 적이 없는데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재인의 절친으로 알려진
송철호 울산시장(왼쪽, 1949년생)과
유일한 거제도 친구라는
신해진(가운데)씨.
그러나 기자가 만난 거제도 사람들은
"신해진은 급조된 절친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2년 12월 14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당시
고향마을로 알려진
경남 거제시 거제면에서 열린
거리 유세에서
자신이 태어날 때
탯줄을 끊어줬다고 주장하는
추경순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거제주민들은
"당시 22세 처녀가
어떻게 탯줄을 끊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씨는 “22세 처녀(추경순)가
산파 노릇을 했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대통령 출마하려고
자기들이 만든
얘기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 씨는
“50년 동안
연락 한번 안 하던 친구를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며
“거제도에서
문재인이 태어났다고 믿는
노인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거제면의 이웃 동네인
상문동에 거주하는
이모(78, 여)씨는
자신을 거제도 토박이라고
소개한 후
“거제도에 진짜
문재인 생가(生家)가 있다면
내가 벌써 가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문재인이 거제도에서
태어나고
부산으로 7세 때 이사 갔다는 말은
내가 2010년 이전에는
들어 본 적이 없다”며
“정식 산파도 아닌
22세 처녀가
신생아의 탯줄을 잘랐다는 얘기는
해도 너무한 거짓말”이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기자가 거제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문재인의 고향은 거제도”란 말에
대부분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들은 기사 서두에 언급한
“과거 문재인이
거제향우회 모임에 참석하려다
쫓겨난 적이 있다”란 얘기를
기자에게 많이 들려주며
“언론보도를 믿지 말라”고 전했다.
이번 '문재인 출생의 비밀'
취재를 위해
본지는 2개월이 넘는 시간을
확인작업에 쏟아 부었다.
이번 취재에 대한 결론은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은
생년월일, 고향, 가족관계 등
모든 주변환경이 불확실한
미스테리한 인물이란 점이다.
그는 신분세탁 과정을 통해
피난민 아버지를 만들고,
가짜 생년월일과
고향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 문재인은
6.25 때 생포된
북한군 장교 문용형에 대한 발언은
단 한마디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흥남에서 철수하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나
미군 LST함를 타고
남한에 왔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향도
만나는 상대방에 따라
흥남과 함흥에서 오락가락 한다.
아마 문재인은 지금
‘리플리 증후군
(Ripley Syndrome)’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듯하다.
부산에서 만난 강한옥의
또 다른 지인 C 씨(여)는
자신을 “강 여사의
오랜 이웃주민”이라고 소개한 후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문재인은 아버지 문용형이
1978년 세상을 뜬 이후
처자식을 제외하고
남한에 아무런 친인척이 없는
셈이 됐다.
그나마 계모 강 여사가
가장 가까운 인척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재인이 퇴임 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남 양산으로 간 이유도
강 여사의 고향이
양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강 여사가 살아생전
내게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고향이 진정 거제도라면
생가를 정성껏 멋지게 복원해서 살지
왜 양산으로 가겠는가?
함남 함주군은
북한에 있는
문재인 생모의 고향이다.
문재인 말씨가
정통 부산, 경남 사투리라고
생각하나?
그의 말씨에는
어린 시절 살던 지역의 억양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문재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실체를 숨길 것이다.
차라리 ‘장인이 공산주의자였다고
마누라를 버릴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
노무현이 더 솔직했는지 모른다.
때가 되면 평소 강 여사가
내게 해준 말을 다 털어놓고 싶다.
아무튼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문재인에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부분을
속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서울·영천·거제·부산
= 최영수 기자
옮겨 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