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침수 피해가 컸던 동두천을 방문했다. 대영이(8세)와 대호(7세)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수해 발생한 지 한 달, 집에는 아직 변변한 가전제품이 없고 방에서 독한 곰팡이 냄새가 나고 있었다.
저는 중국에서 왔어요
10년 전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민자(41세) 씨가 웃으면 맞는다. 생김과 정서, 어투까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대학에서 중국어 통역을 전공했다. “가구, 프라이팬, 수저, 책.. 사람하고 고무 빼고는 아무리 닦아도 좀 슬고 곰팡이가 나요.” 남편은 만물트럭을 끌고 전국을 다니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8년 전 친구에게 보증을 잘못 서면서 집과 차에 차압이 들어왔다. 민자 씨는 둘째를 낳고 몸조리도 못한 채 동사무소 중국어 강사 일을 나갔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두 강좌를 맡아 월급 58만원을 받고 있다. “수업 폐강한다는 소리만 안 나오면 맘이 편하겠어요.” 높은 지대에 위치한 동사무소 중국어 강좌는 신청자가 별로 없어서 생활비가 줄어들까 마음을 졸이게 된다. 남편(51세)은 현재 노동을 하지 못 한다. 과거 교통사고로 다쳤던 허리에 뒤늦게 이상이 온 것. 통증이 심하지만 명확한 의사소견 진단이 나오지 않아 수급을 받을 수 없다. 이집의 실질 가장은 민자 씨. 이번 수해로 다섯 가족 생계의 무게가 더하다.
비가 두려운 소년
대영이는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외출을 하지 않는다. 지난번 500mm 폭우에 집이 침수되는 걸 경험하고 어른스럽게 상황을 걱정한다. “할머니, 이번 100mm 비 정도는 집이 버텨내겠죠?” 세상의 통념보다 9살 소년은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생각한다. 동생과 골목 텃밭에 나가 네잎클로버를 찾는다. “우리 집은 돈이 없어서 다른 데로 이사 가자는 말을 못 해요. 엄마가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찾아보려고요."
웃음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가정
어려운 상황에서 고부관계는 물론 부부가 얼굴만 마주해도 찡그릴만한데 그렇지 않다. 가족 모두 웃으며 힘든 상황을 견뎌내고 있다. “짜증내면 안 되죠. 우리 가족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감사할 일이에요.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에 강사로 참여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어요.” 가난한 동네에서 민자 씨는 중국어 봉사를 한다. 도서관과 복지회관에도 강의를 나가지만 조부모와 한부모 가정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아이들 간식비로 10만원 남짓 강사비가 고스란히 빠져나간다. 힘든 자리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챙기는 민자 씨의 환한 에너지에 시름이 사라진다.
노약자에게 쾌적한 환경을
대영이네 가족은 월세로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다. 열흘 가까이 진흙에 잠겼던 집, 천장과 바닥에 신문지를 붙이고 보일러를 돌리지만 곰팡이가 계속 올라와 머리가 아프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다른 집을 알아볼 엄두도 못 낸다. 집이 잠겨있는 동안 복지관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는 가족은 후원 받은 옷과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협착증을 앓고 있는 노모(72세)와 어린 아이들에게 습한 곰팡이 균은 치명적일 수 있다. 민자 씨의 소원은 깨끗한 집으로 이사해 가전제품을 갖추는 일이다. 작은 집이라도 아이들을 깨끗한 환경에서 돌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올 겨울 대영이네 가족이 포근한 기운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이웃의 사랑과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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