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 빗발
장석주
빗발, 빗발들이 걸어온다
자욱하게 공중을 점령하고
도무지 부르튼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얼마나 먼 데서
예까지 걸어오는 걸까
천 길 허공에 제 키를 재어가며
성대제거 수술 받은 개들처럼 일제히 운다
자폐증 누이의 꿈길을 적시며
비가 걸어온다
봐라, 발도 없는 게 발뒤꿈치를 들고
벼랑 아래로 뛰어내려
과수원 인부의 남루를 적시고
마당 한 귀퉁이의 모과나무를 적신다
묵은 김치로 전을 붙이고 있는
물병자리 남자의 응고된 마음마저 무장해제 시키며
마침내는 울리고 간다
저 공중으로 몰려가는 빗발,
저 쬐그만 빗발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장석주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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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 빗발 / 장석주
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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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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