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감나무와 어느 봄날의 시
니힐
큰일이다
시가 내게로 시집을 왔다
시집살이가 고추처럼 매운 것은 아니나
시를 짠 베틀에 잘못 북이라도 울리면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는 일들
읽고 몇 번을 발음해 보지만
설익은 풋감을 씹을 때의 떨떠름한
그 미소를 잊을 수 없다
말하자면 무엇에 미치기까지
꽃을 피우다
꽃이 지려면
생각이 익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기승전결의 내막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이야기 속 화자와
글을 쓰는 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에 대한 작은 배려
또한 무시 못할 자화상이다
시가 일방통행이어서는 곤란하다
감나무가 붉은 홍시로 익어가기를 기다린다
노란 감꽃이 필 때의 저무는 별꽃이 환하듯
달아 노피곰 돋으샤
흐르고 흐르는 게 진실로 강물뿐이랴
큰일이다
시가 내게로 시집을 왔다
비 내리는 어느 가을
혹은 때 이른 어느 여름
대롱대롱 시어에 매달린 저 붉은 홍시
낙수물 젖은 비바람에 이는 은은한 살내음
시를 쓰기 시작하며
타인의 삶에 곪은 허기가 보인다
모나지 않게 사는 인생
세월은 갔어도 버지니아 울프의 시처럼
아프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우는 램프가 어디 있으랴
큰일 났다
내 안량 한 심보에 시집을 들겠다니
나는 감감한 어느 시인의 시를 읽다가
어느 화창한 봄날에
나는 기꺼이 시를 쓰는 닥나무가 된다
슬픔도 기쁨도 뿌리는 같다
북은 언제나 둥둥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