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화 <최보식의 언론> 논설위원
허경영 사이비들이 도처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재명은 1천만 원, 이낙연은 3천만 원, 정세균은 1억 원 준다고 한다.
나는 작년 10월 21일자 조선일보 A31쪽 전면에 “대한의 청년들이여!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라며, 대우 김우중 회장 어록을 인용해 청년 모집 광고를 게재했다. 극동러시아 1개월 탐방에 1인당 1천만 원을 공짜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자격은 35세 미만의 미혼자로써 무도 유단자, 운전면허 포함 자격증 기능장 등 3개 이상 소유자, 병역 필한 자( 공익 근무자는 제외), 7kg 배낭 메고 500리 행군 가능한 자, 애국가 4절까지와 국민교육헌장 줄줄이 외울 수 있는 자>
응모 기간은 1개월로 했다. 이때 조선일보 광고부장께서는 최소한 100명 이상 올 것이라고 했고, 담당 여직원은 10명도 안 올 것이라는 극단 발언을 했다. 그녀는 ‘이런 남자 있으면 내가 왜 아직 결혼 안 했을까?’라고 했다
광고를 보고서 30여 통의 전화가 왔을 뿐이다. 직접 뽑은 합격자는 겨우 5명이었다. 여기에 군 특수임무부대에서 추천한 10명, 국기원 추천 5명을 포함해 합계 20명을 뽑았다. 경비 문제는 이미 후원을 약속받아놓은 데가 있다. 코로나 완화 즉시 출발 예정이다. 1차 실시 후에 2차 모집을 강행할 것이다.
청년 해외 1개월 공짜 탐방 계획은 삼성 이건희 회장 아이디어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중반 삼성 이회장은 ‘청년 10만 명 뽑아서 5대양 6대주에 한 달 동안 가보고 싶은 곳 다녀오게 하자. 1인당 1천만 원 공짜로 준다. 아무 조건 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이 계획을 나에게 가져온 사람은 삼성 기획실의 고향 후배 허영호 상무(작고)였고 내가 법정 대표로 있는 국제농업개발원에서는 극동러시아 지역을 맡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불발됐다. 이유는 MB 정권 말기에 해외 광물 투자 부실과 연일 이상득씨 비리가 터져 나오고 아프리카 카메룬, 남미 볼리비아 등 해외 자원 문제가 언론을 도배할 때였기 때문이다. 청년 10만 명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 MB 정부의 해외 사업 추태가 노출될 것이라는 설이 떠돌았다. 모처의 중지 요청으로 취소되었다. 당시 삼성의 준비 자금은 무려 1조원이었다.
외국에서 한국 쳐다보면 모두가 애국자 된다.
이건희 회장은 외국에서 한국을 쳐다보면 모두 애국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외국에서 현대·기아·대우자동차를 보고, 삼성 컴퓨터와 핸드폰을 보고, 호텔방에서 삼성·엘지 TV를 보고, 한국산 냉장고·세탁기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느낄 때 애국자 아닌 사람 어디 있겠는가 말을 했다고 한다.
모 재벌그룹의 민노총 소속 노조 간부들을 내가 주선하여 동구권 관광을 시켰다. 이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한국산 믹스커피와 팔도도시락 라면에 감격했다. 곳곳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는 장면과 한국인을 귀빈 대우하는 자세에서 한국의 위대함을 발견한 뒤로 민노총에서 탈퇴해 한노총으로 옮겨갔다. 이런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민노총에서는 해외 휴가는 한국의 발전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발리, 세부, 사이판, 괌 등 오로지 휴양지 한 곳에서만 있다가 온다고 했다.
진보좌파 쪽에서만 조선일보 광고 보고 연락해와
조선일보 광고가 난 뒤 희한하게도 보수 진영에서는 한 사람도 전화가 없었지만, 이낙연·정세균·이재명 등 여당 대선후보 쪽 사람들이 우리 집에 여럿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가 거주하는 집이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에 등장한 ‘새마을 1호 주택’임을 알고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랬다.
그때 나온 발언들 중에는 ‘어쩌면 대학 4년 다니는 것보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와 동남아 지역에서 한 달간 밑바닥 생활 경험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말들도 있었다. 얼마 전 이재명 지사가 ‘대학 안 가는 청년에게 세계 여행비 1000만원 주겠다’고 했을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재명이가 이 박사 아이디어 훔쳤다”고 욕하는 것에는 나는 찬성하질 않는다. 나도 이건희 회장께 배운 것이니까!
나의 광고 내용처럼 이 땅의 청년들에게 “월급 받는 사람보다, 월급 주는 사람 되자”가 씨알이 먹힌다면 청년 관련 정책 하나가 해결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