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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vergence of the Twain
(LINES ON THE LOSS OF THE "TITANIC") - Thomas Hardy(1840-1928)
짝의 만남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붙이는 시) - 토마스 하디
1
In a solitude of the sea
Deep from human vanity,
And the Pride of Life that planned her, stilly couches she.
바다의 적막 속에
인간의 허영과, 배에 의도했던 삶의 우월감으로부터 깊이 떨어져,
그녀는 조용히 누워 있다.
2
Steel chambers, late the pyres
Of her salamandrine fires,
Cold currents thrid, and turn to rhythmic tidal lyres.
도롱뇽 혓바닥 같이 불꽃이 넘실대던,
결국, 화장터가 되어 버린 철제 아궁이는
차가운 흐름들을 꼬아서, 조류에 율동하는 리라를 만들어 내는구나.
3
Over the mirrors meant
To glass the opulent
The sea worm crawls--grotesque, slimed, dumb, indifferent.
부자들을 비추려고 만들어진
거울 위를
기괴하고, 끈적이는, 말 못하고, 무관심한 바다 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4
Jewels in joy designed
To ravish the sensuous mind
Lie lightless, all their sparkles bleared and black and blind.
관능적인 마음을 황홀하게 채우려고
환희 속에 디자인된 보석들은
온갖 광채가 침침해져, 검어지고 눈이 먼 채 빛을 잃고 누워 있다.
5
Dim moon-eyed fishes near
Gaze at the gilded gear
And query: "What does this vain gloriousness down here? . . .
근처 물고기, 깜짝 놀라 희멀건 눈 동그랗게,
금박 입힌 타륜을 응시하며 의아해 한다,
“이 화려한 껍데기는 여기 바닥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6
Well: while was fashioning
This creature of cleaving wing,
The Immanent Will that stirs and urges everything
그래, 물살을 날개처럼 가르는
이 물건의 됨됨이가 만들어 질 때,
만물을 휘젓고 닦달하는, 세상 가득한 어떤 섭리가
7
Prepared a sinister mate
For her - so gaily great -
A Shape of Ice, for the time far and dissociate.
그녀를 위해 불길한 짝을 준비한 것이지,
희희대는 거대한 얼음덩어리 신랑을,
아무런 상관없을 것 같은 먼 미래를 위해.
8
And as the smart ship grew
In stature, grace, and hue,
In shadowy silent distance grew the Iceberg too.
그렇게, 총명한 신부가 키가 커지고
우아하고 예쁘게 자라는 동안,
저 음침하고, 조용하고 먼 곳에서 빙하도 같이 자라났다.
9
Alien they seemed to be:
No mortal eye could see
The intimate welding of their later history,
아무런 인연도 보이지 않았으리
인간의 눈에는,
훗날 친밀하게 맺어질 그 둘 운명에 대해서,
10
Or sign that they were bent
By paths coincident
On being anon twin halves of one august event,
우연한 행로로 휘어져 만나
머지않아 커다란 참사의 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어떠한 낌새도,
11
Till the Spinner of the Years
Said "Now!" And each one hears,
And consummation comes, and jars two hemispheres.
“지금이야!” 라는
운명의 여신이 지르는 소리를 저마다 알아듣고,
마침내 합방이 이루어져, 두 쪽 세상이 소스라칠 때까지는.
1914
For Whom The Bell Tolls - John Donne(1572-1631)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ach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ner of thine own
Or of thine friend's were.
Each man's death diminishes me,
For I am involved in mankind.
Therefore, send not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누구든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될 수 없으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큰 바다의 일부.
흙덩이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 버리면 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지고,
모래톱이 씻겨가도 그러하고,
그대나 그대 친구의 땅이 쓸려가도 그러하리라.
어느 누가 죽어도 나는 감소되나니,
나는 인류 안에 있기 때문.
그러니, 누구를 위해 弔鐘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나니.
(상기 부분은, John Donne의 1624년 Meditation XVII(from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에 나오는 산문에서 발췌한 것인데, Hemingway가 1937년 같은 이름으로 소설을 써 널리 알려짐.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종을 울렸는데,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굳이 누가 죽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없다는 것.)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의 비극, 일제치하의 고통과 치욕과 죽음, 한국전쟁, 4.19, 독재시대, 광주학살,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후배들 익사사고, 체육관 붕괴......
가뜩이나 상처와 한으로 가득한 이 땅에, 빈 곳이 어디 있다고, 또, 황당한 사건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영혼들을 쏟아 내는지, 어느 개자식 배때기를 돈으로 채우는데, 그렇게 많은, 순진하고 착하고 말 잘 듣는 젊은 애들의 생명이 필요했던 것인지.
우리나라는, 두 가지 단층선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랍니다. 하나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의 침략이 맞서는 원한의 역사 단층선이고, 또 하나는 (중국, 러시아)와 (미국, 일본)이 대립하는 군사적 단층선이랍니다.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금물이고, 구한말보다 국내외 상황이 더 망국에 가깝다는 비관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 10강 대열에 턱걸이를 한 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박정희, 정주영)식 깡다구와 이병철 식 용의주도함, 김우중 식 장사꾼 기질에, 지고는 못사는 국민적 의지가 시멘트처럼 뒤섞여 쌍인 황금 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배고픔에 대한 한을 푼 밥상에는 먹다 남은 뼈다귀, 흩어진 젓가락 숟가락, 범벅이 된 음식 찌꺼기, 깨지거나 금 간 그릇과 술잔들.... 물리는 찬칫상....
배부름 다음에는 좀 더 고상한 놀음이 있게 마련,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듣고, 대화도 하며, 산책도 하고, 꽃도 가꾸고, 주변도 돌아보고, 사람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담긴 행위가 필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설거지는 누군가 해야 하는 법, 그래야 마음 가볍게 인간다운 생각과 행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우리나라는 이런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직도 배가 고픈 사람이 많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격론이나,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화두는 배부른 다음의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5년 동안 원칙을 고수하는 풍토만 정착시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국민들 마음에는 모두 원칙대로 품위 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모르게, 2%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수업이 끝나면 신발장으로 우르르 몰려가 먼저 자기 신발을 찾으려는, 일종의 불안감, 불신감 같은 것이 아직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심리가,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하면 바보”, 더 나아가 “남들 보다 내가 먼저 차지하는 것이 최고”라는, 과도 경쟁, 과도 불신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신발장까지 차분히 줄 서서 퇴실하는 교육을 두어 번만이라도 했었다면, 그런 불신과 조급함은 씻은 듯이 없어졌을 것인데, 왜 그렇게 간단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한국 사람은 기가 세다고 합니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너그러운 품성을 지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잘난 체 했다가는 밉보이기 100%고, 정치가는 잘난 체 하는 말 한마디에 생명줄이 끊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대국 사람들 뒤에는 예사롭게 “놈”자를 붙입니다. 뙈국놈(대국놈도 부족해), 왜놈, 소련놈, 미국놈 등 “놈”자를 붙이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도사람, 베트남사람, 태국사람이라고 하지 약소국 사람에게 “놈”자는 잘 붙이지 않습니다.
가끔 김연아나 박태환, 유현진, 이창호, 이세돌 같은 걸출한 스타들이 불쑥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질이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제대로 된 교육만 잘 되면, 그런 풍토만 조성되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으로는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이해와 포용과 솔선수범의 리더쉽, 밖으로는 연개소문과 같은 담대함과 명민함, 나폴레옹과 같은 야망과 꿈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 볼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미국 대통령을 하고도 남을 테지만, 우리나라 대통령하기가 미국 대통령하기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인재 양성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학교 교육부터 바로 잡고, 서로 신뢰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여, 조급함과 불신 풍토를 걷어내어, 차분히 움직여도 손해보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당당하고 담대하고 아름답게 키워야 합니다. 국가가 할 일도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추구해야 할 일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솔선수범 잘 안합니다. 마음이 나쁘거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먼저 남을 앞서는 것이 오만이 아닐까 하는 예의바름 때문입니다. 누군가 올바르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멍석을 깔거나 방아쇠를 당기면, 주저 없이 손을 내미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지금 일본은 깐죽대며 우리나라를 엄청 약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안달하게 하여 중국과 소련하고 맞장뛰는데 유리한 고지를 만들려는 심산일 것입니다. 우리나라하고 맞장붙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일본은 스스로 동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니다. 서양의 일부라 자처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막내 문화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광개토대왕비 조작 등 온갖 역사왜곡을 통해 자존심의 근거를 확보하려는 치사한 속내를 숨기지 않습니다. 멀쩡히 우리 땅인 독도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것을 보면, 북한보다 더 한 생트집 국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후를 처참하게 죽이고, 궁궐을 동물들로 모욕하고, 창씨개명, 학도병, 생체실험 등 일본이 저지른 헤아릴 수 없는 죄악은, 과거가 아닙니다. 앞으로 다른 형태로 닥쳐올 잠재적 비극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역사는 표변하는 법, 권력의 눈에는 생명의 고귀함이 보이지 않는 법, 유비무환이 최선입니다.
인재를 양성하여 좋은 리더를 길러내고, 나라가 부강해지면 우리나라가 두 개 단층선의 이맛돌(keystone)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둥근 아치의 왼 편과 오른 편의 가운데에 이맛돌을 끼워 양 쪽을 지탱하듯, 우리나라가 복잡한 단층선들의 이음새를 메꿀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이에 낀 것이라면 대부분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만, 경우에 따라서 이맛돌은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갈등의 구심점은 폭풍의 눈처럼 품위 있는 고요를 누릴 수도 있으니,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의미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일본보다 부강하면 대부분의 걱정 해소됩니다.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 국력이 일본의 5분지 1까지 따라왔으니 추월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이맛돌은 세계 평화의 화룡점정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가운데에 자리 잡아, 끼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압력을 견디면서 평형을 유지해 주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게 어디 한 사람만의 바람이겠습니까. 모두의 바람이지요. 우리 자식들, 손자들, 증손자들....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평안히 살 수 있는 한반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같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사람이 점차 감상적이 되는 느낌인데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슬퍼할 일을 슬퍼하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쳐 온 업보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세상의 슬픔을 다 느낄 수는 없지만, 눈에 띄는 슬픔으로부터 도망하지는 말아야 되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자꾸 내 자식, 내 식구 생각으로 기울게 되는 자신의 마음은 숨길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가지려 해도 현실의 단단함은 움쩍도 않으니, 한 발 떨어져 있을 수 밖에는. 사랑하는 부모, 자식, 형제, 자매, 친구, 친척 모두 그렇게, 침범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인 것을 - 결국 자신도 어쩌지 못할 한계가 보이는 존재인 것이니....
두 가지 상처가 있다 합니다. 하나는 피 흘리는 상처요, 하나는 아물어 가는 상처입니다. 치유된 상처는 없는 것이랍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결국, 모두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살아온 날들과 살아오면서 내가 느끼고 배운 것이 전부가 아님은. 그렇게 잘 모르고 불확실한 것을 위로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인간일지라도, 결코 가엾고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아직 가지 못한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첫댓글 좋은글 잘읽었네 언제 술한잔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