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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서 36년 동안 근무했던 군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인은 교관으로 훈련병을 가르쳤습니다. 훈련병을 가르치면서 얻은 교훈을 대학의 졸업식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훈련병들은 여섯 명씩 조를 이루어 보트를 저어야 했습니다. 가장 빨리 도착하는 보트는 키가 크고 체력이 강한 조원이 아니었습니다. 작지만 모두가 함께 열심히 노를 젓는 조원이었습니다. 노를 젓는 데는 학력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피부색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문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열심히 노를 젓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함께 노를 움직일 동료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행정부는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받는 유학생들의 비자를 연장하지 않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과 자치정부는 유학생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결국 행정부는 결정을 취소하였습니다. 유학생들은 비자연장을 받고,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울 때 이웃을 내치기보다는 어려울 때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길입니다. 오늘 제1독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훈련이 고되기 때문에 중도에 탈락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운동장에는 종이 하나 있었습니다. 힘들면 종을 칠 수 있다고 합니다. 종을 치면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종을 치면 진흙 바닥에 구르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종을 치면 힘들게 노를 젓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종을 치면 단체 기합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종을 치면 편하게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을 치면 귀신도 잡는 용감한 해병은 결코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종을 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교회의 역사에도 많은 시련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배교의 종을 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참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빛나는 신앙의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평등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실패를 거듭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모욕과 수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종을 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결코 종을 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새로운 권위를 지니셨고, 기존의 질서와 틀을 허물었던 예수님은 늘 당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믿으셨고, 예수님께 포도주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아니었지만 자신을 믿고 부탁한 성모님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행한 첫 번째 표징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백인대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하인을 고쳐주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데 백인대장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저도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면 부하들이 저의 말을 듣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곧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말을 듣고 감동하였습니다. 어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도 그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오늘 우리가 만나는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청합니다. ‘강아지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또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믿음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시작이고 출발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조재형신부)
2020년 가해 연중 제20주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복음: 마태오 15,21-28
성경에서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는 것 같습니다. 땅에 붙어 기어 다니는 사람, 직립 보행을 하는 사람, 하늘로 오르는 사람입니다. 이 구분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없는 가리옷 유다는 뱀과 같이 되었고, 아직 승천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은 믿음이 있었다가 없었다가를 반복하며, 완전한 믿음에 도달한 사람은 성모님처럼 하늘에서 삽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 안에 이 세 부류의 사람의 모습이 다 들어있습니다. 마귀 들린 딸과 함께 살 때가 땅에 붙어 기어 다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생겨 그리스도께 치유를 청하기 위해 나섰을 때는 믿음이 조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견뎌 기적을 얻어내었을 때는 하늘의 사람임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 믿음은 비단 기적을 청하는 것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소명을 발견하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다가 영혼을 구원하는 어부가 되어보겠다고 나선 것이 소명을 발견한 것입니다. 물론 그냥 편하게 살면 되지 뭣 때문에 고생하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물고기만 들고 나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소명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찾아 소명을 완수하고 그 열매를 주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분명 그 소명을 위해 져야 하는 십자가를 버리고 주님 앞에 다다랐을 때 그 십자가가 없으면 건널 수 없는 낭떠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편한가요? 가나안 여인이 마귀 들린 딸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편할까요? 어차피 우리 모두 이러나저러나 고생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소명을 찾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고생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믿음으로 사람을 나눈다면, 사람은 일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 시작만 하는 사람, 시작했다면 끝까지 가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내가 시작한 일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좌절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좌절을 선물하십니다. 일단 소리 지르며 따라오는 데도 들은 체도 안 하십니다. 그다음은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며 사람을 차별하십니다. 그다음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하시며 거의 멸시까지 하시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하며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이유는 그 과정이 좋게만 끝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희 속담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란 말이 있습니다. 밥을 지으려다 실패하면 죽이 됩니다. 그러나 죽이 되는 것이 실패하는 것일까요? 누구는 죽을 일부러 끓이기도 합니다. 죽만 파는 죽집도 있습니다. 죽도 잘 끓이면 멋진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란 말 안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미국의 어느 원예연구소에서 ‘희귀한 흰색 금잔화의 씨를 보내시는 분께는 큰 사례 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너무 커서 순식간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잔화는 주황색이나 갈색뿐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흰색 금잔화를 찾으려고 애썼으나 누구도 찾지 못했고, 그렇게 이 이야기는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 한 봉투에 흰색 금잔화 씨가 보내졌습니다. 70대 할머니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50대에 이 광고를 보고 흰색 금잔화 만들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금잔화 씨를 뿌려 주황색과 갈색의 금잔화 중에 색이 가장 옅은 것들의 씨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뿌려 또 색이 옅은 것들의 씨만 모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20년 거치다 보니 흰색 금잔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전문 지식을 갖춘 어떤 누구도 해내지 못한 보통 시골 할머니가 금잔화의 새로운 종을 만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웨이슈잉’의 『한 번이라도 끝까지 버텨본 적 있는가』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이 책의 앞표지에는 ‘승부는 폭발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에서 갈린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진짜 믿음은 끝까지 버티는 것에서 증명됩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말합니다.
“성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달라도 실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포기하기 때문이다.”
저는 요리를 못합니다. 하다못해 김치찌개도 끓이지 못합니다. 김치찌개를 생각하면 실패한 김치찌개의 모습부터 떠올리게 되니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김치찌개도 못 끓이지만 시도하고 끝까지 가면 김치찜이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은 난독증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억력도 좋지 않습니다. 햄버거 가게에 알바로 취직하려고 해도 햄버거 종류를 다 외울 수 없어서 취직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카페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메뉴를 외우는 것도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몇 번을 그만두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끝까지 버텨서 지금은 원두 이름과 팥빙수 만드는 것만 배우면 커피숍을 단독으로 운영할 수 있는 모든 기술 배우기가 끝난다고 합니다.
수 없는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란 정신으로 가야 합니다. 물론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미리 실패할 것을 생각하고, 미리 좌절할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끝까지 가면 실패는 없습니다. 밥 아니면, 어쩌면 밥보다 더 맛있는 죽이 됩니다. 끝까지 가면 밥 아니면 죽이지만, 시작하지 않거나 중도에 포기하면 먹을 수 없는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믿음이 겸손과 비례하는 이유는 겸손한 사람에게 그 믿음을 꺾을 두려움을 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행을 멈추었을 때는 생각하고, 생각했다면 실행하십시오. 그리고 실행했다면 반드시 끝까지 가 보십시오. 그러면 다음 것을 시작할 때 큰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적어도 죽을 끓일 수 있는 기술은 남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일 것입니다.(전삼용신부)
2020년 08월 16일 일요일
[녹] 연중 제20주일
대영광송신경교중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입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자비를 청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본받읍시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자의 낮추심으로 구원의 보편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겸손한 마음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증언하도록 합시다.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주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니,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았지만 자비를 입게 될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는 가나안 부인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낫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이방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6,1.6-7
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6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계약을 준수하는 모든 이들.
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나의 제단 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7(66),2-3.5.6과 8(◎ 4 참조)
◎ 하느님,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
○ 당신이 민족들을 올바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
○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
제2독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13-15.29-32
형제 여러분, 13 나는 다른 민족 출신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민족들의 사도이기도 한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4 그것은 내가 내 살붙이들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 가운데에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15 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4,23 참조
◎ 알렐루야.
○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좋으신 주님, 주님을 따르고자 모인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주님 사랑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충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통치자이신 주님, 정치인들에게 주님의 정의를 심어 주시어, 인간의 존엄과 상식 안에서 누구나 공감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 굶주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사회와 이웃의 관심 밖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보살피시어, 저희가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나눔의 손길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려는 저희 가정을 보살피시어, 그 충만한 사랑으로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도록 이끌어 주소서.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6 :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주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오니
이 세상에서 날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할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고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니
성령의 첫 열매를 지닌 저희에게도
파스카 신비가 영원히 이어지리라 희망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의 애원이 눈물겹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예수님의 탄성이 우리 귀에도 들리도록, 굳건한 믿음으로 간절히 청합시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 활동 무대인 갈릴래아를 떠나시어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민족의 땅으로 가신 이유는 오늘 복음의 앞선 내용들을 짚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와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그 나라의 풍요로움을(마태 13,1-53; 14,13-21 참조) 드러내신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과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기적을 통하여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보여 주십니다(마태 14,22-36 참조). 그리고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토론을 벌이셨습니다(마태 15,1-20 참조).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갈릴래아에서 이민족의 땅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말을 해도 소용없고 기적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하는 위선자들 앞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이민족 가나안 여인이 도움을 청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기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외쳤던 ‘다윗의 자손’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일컫는 호칭이었습니다. 나탄 예언자가 하느님의 집을 지으려던 다윗 임금에게, 희망의 구원자가 바로 그 가문에서 나올 것이라는 하느님의 축복을 전하면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작에 이스라엘에게서 나왔어야 할 신앙 고백이 이민족 사람에게서 나왔으니 예수님의 칭찬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입술로만 공경하는 위선이 아닌, 강아지에 비유하며 무시하시려는 예수님께 ‘강아지처럼 주인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라도 먹겠다.’ 하는 여인의 간절한 믿음은 그분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도 구원에 대한 희망과 참된 믿음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강아지가 주워 먹을 부스러기만큼의 믿음이라도, 예수님께서 지니고 계신 희망의 틈을 파고든다는 것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