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나님이 보내주신 동역자들 (행3-30)
2026년 8월 31일 (월요일)
찬양 : 오늘 우리 눈물로
본문 : 사도행전 27:1-44절
☞ https://youtu.be/2V6s8fJEOn4?si=W_lwdmDlQOeliq9F
2주간의 중보기도 세미나를 마쳤다. 한 해의 중보기도 사역을 지원한 사람들에게 진행된 2주간의 세미나는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어 2개의 강의만 할 수 있었지만 영적 전쟁으로서의 중보기도를 분명하게 가르치며 기도 사역자들을 세우는 디딤돌이 될 수 있어 감사했다. 나머지는 성령님께 각 사람을 기름부어 세우시며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특히 하나님의 샬롬을 가지고 당당히 전할 수 있는 자로 나를 부르셔서 감사했고, 그 믿음으로 서서 순종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제 무더웠던 8월도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날이다. 한 달을 마감해야 하는 어김없이 찾아온 날이기도 하다. 지난 16년 부족한 나를 택하시고 놀라운 이끄심으로 라마나욧선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모두 올려드린다.
아울러 이 일에 나보다 더한 사랑으로 기도와 후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동역자와 후원자 모두에게 감사와 박수를 뜨겁게 올려드린다.
오늘은 육체에 쉼을 주면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새롭게 제작한 중보기도 교재로 강의하느라 나의 온 진액을 다 쏟아내고 나니 내 몸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27장은 이제 로마를 향해 출발한 바울 일행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며 어려움을 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는 일에 율리오라는 백부장이 책임자가 되어 친절함으로 많은 배려를 해 준다. 아울러 이 항해에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하여 가고 있다. 2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소아시아의 연안을 오가는 화물과 승객을 실어 나르던 상업용 무역선을 타고 바울과 누가 그리고 아리스다고가 함께 로마로 가고 있었다. 물론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는 압송되는 과정에 제한적으로 개인비서나 종을 동반하는 것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이렇게 할 수 있었다.
당시 바울의 나이가 대략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추정되므로 당시 기준으로 완전한 노인이었다. 그것도 수십 년의 선교 여정에 수없이 매를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뻔하고, 여러 번 파선하고, 주리고 헐벗으므로 육신이 극도로 망가진 데다 무거운 쇠사슬까지 차고 있었으니, 그 노사도의 처참한 몰골이 충분히 상상이 간다.
이런 바울을 위해 의사출신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자원하여 이 길에 동행한 것이다. 이들의 동행이 아니었다면 지중해의 겨울을 홀로 견디며 항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누가가 지명하여 그 이름을 밝히고 있는 아리스다고를 오늘 아침 묵상하게 된다. 그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바울의 전도를 받고 회심한 이방인이다. 늙고 쇠약한 바울의 로마를 향한 사선의 발걸음에, 이 이방인 두 사람이 스스로 죄수의 종을 자처하며 동행한 것이다.
특히 아리스다고는 에베소에서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거대한 폭동이 일어났을 때, 피신한 바울을 대신하여 무리에게 붙잡혀 원형 극장으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인물이다(행 19:29). 또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전달할 때도 이방 교회의 대표 중 한 명으로 바울과 끝까지 동행했던 인물이다.(행 20:4)
훗날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옥중 서신을 집필할 때, 바울은 아리스다고를 향해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골 4:10)이자 "나의 동역자"(몬 1:24)라고 부른다. 그는 단순히 바울의 짐을 들어주는 수행원을 넘어, 사도의 모든 결박과 고난을 자기 몸에 똑같이 짊어진 십자가의 동역자였다.
가장 외롭고 두려운 죄수의 길, 그리고 유라굴로 광풍이 덮치는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서도 바울이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자유와 생명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울의 수족이 되어준 아리스다고와 누가 같은 헌신적인 동역자들을 곁에 두신 하나님의 세밀한 위로 덕분이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한 가운데서 그의 수족이 되어야 하기에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이방인들을 그의 동역자로 붙여주신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동역으로 인해 바울은 유라굴로 광풍의 험난한 시간도 견디며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통찰력과 지혜로 모든 과정에 지도자로 설 수 있었다. 23-25절
‘내가 속한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이 험악한 광풍 앞에서도 당당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라고 말할 수 있는 이 통찰력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붙여주신 동역자의 섬김 덕분임을 기억하게 된다.
돌아보면, 오늘까지 내가 여기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너무도 소중한 동역자들이 부족한 나를 섬겨주셨기 때문이다. 이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섬겨주시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섬김으로 동행해 주셨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사도행전 27장을 묵상하다 보면, '로마를 향한 하나님의 발걸음에 왜 유라굴로라는 광풍까지 허락하셔서 노사도의 길을 이토록 어렵게 하시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이 광풍은 바울의 영적 경고보다 선주와 선장의 세상적 계산을 더 믿었던 인간의 탐욕적 선택이 자초한 위기였으며, 동시에 복음의 행진을 막으려는 사탄의 강력하고도 완전한 방해전략이었다.
만약 노사도에게 하나님이 붙여주신 의사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없었다면 이 순간 노사도는 유라굴로에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 누가의 돌봄과 아리스다고의 헌신적 섬김으로 바울은 이 상황에도 주님과 교제하며 통찰력을 가지고 사단의 모든 방해를 완전히 이기고 모두를 살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모두에게 증명하며 당당히 로마에 이를 수 있었다.
동역자의 소중함을 주님은 오늘 내게 큰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내게 보내주신 소중한 동역자들을 생각해 본다. 한 분 한 분 잊을 수 없으신 분들이다. 이 하루 이분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축복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소중한 동역자들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감사하는 것뿐이다. 특히 이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그들이 내게 베풀어준 헌신과 수고를 절대 잊지 않으며, 나 또한 남은 후반전도 '작은 교회'들을 향해 그 섬김의 마음으로 달려가리라 굳게 다짐해 본다. 작은 교회를 향한 누가가 되고, 아리스다고가 되어 섬기는 자로 쓰임 받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주님, 이 종이 부르시는 날까지 동역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충성하는 종이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위대한 사역의 이면에는 늘 사명자의 연약함을 묵묵히 부축하며 스스로 종을 자처한, 눈물겨운 '동역의 은혜'가 숨어 있습니다.>
적용 질문 :
1. 내 인생의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나의 손발이 되어주고 곁을 지켜준 '아리스다고'와 '누가' 같은 동역자는 누구입니까?
2. 하나님은 내가 누구의 '아리스다고'가 되기를 원하실까요? 교회나 주변에 늙고 병들거나, 외로운 사명의 길을 걷고 있어 나의 부축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3. 내가 동역자들에게 받은 사랑과 섬김을 어떻게 세상에 다시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