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마귀 많은 마을에서 선비가 나는 마을로, 동해 묵호동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은 물도 바다도 물새도 검어 묵호동(墨湖洞)이라 했다. 옛날 묵호에는 까마귀가 많아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까마귀가 많은 마을의 나루라는 뜻으로 오리진(烏里津)이라 불렀다. 강릉부사 이응유가 와 보니 바다도 검고 까마귀도 많아 검을 묵(墨)자를 써서 묵호라 했다. 또 이 지방 선비들이 학문과 선비를 뜻하는 한묵(翰墨)의 의미로 옆 마을 발한(發翰)에 상대해서 묵호라 지었다는 설도 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은 물도 바다도 물새도 검어 묵호동(墨湖洞)이라 했다는 지명유래가 전한다. 또 학문과 선비가 있는 고장이라 하여 한묵(翰墨)의 뜻으로 묵호라 했다고 한다. 묵호에는 묵호항이라는 항구가 있는데 동해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이 묵호동은 1980년 명주군 묵호읍과 삼척군 북평읍이 합해 동해시로 승격될 때 묵호읍과 묵호진리가 합해 묵호동이 되었다. 묵호는 옛 문헌에 의하면 묵진(墨津)이라 했다. 이것이 18세기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지명 개편이 되면서 진(津)자가 호(湖)자로 바뀌었다. 1914년에는 게구석, 산짓골, 논골의 3개 마을이 합해 묵호진리(墨湖津里)라 했으니, 이때는 진과 호가 다 들어가 있었다.
까마귀가 많은 마을
묵호항에는 예부터 고기잡이가 잘되었다. 어부들은 고기를 잡아 바닷가에 와서 선별할 때 작은 물고기는 던져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할 정도로 물고기가 흔했다.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를 얻어먹으려 온갖 새들이 몰려들었는데, 그중 덩치도 크고 싸움을 잘하는 까마귀가 항상 제패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까마귀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까마귀 오(烏)자와 마을 리(里)자를 써서 오리라 했고, 여기에 나루 진(津)자가 붙어 오리진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사람들은 까마귀가 검은 색인데다 시체를 보면 울어대는 새여서 흉조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리진(烏里津)을 오이진(梧耳津)으로 바꿨다. 오동나무 오(梧)자와 귀 이(耳)자다. 때문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동나무 오자를 써서 오진(梧津)으로 표기되어 있다.
글 잘 쓰는 선비가 나는 마을
세월이 지나면서 이 지명은 묵호(墨湖)로 굳어지게 되는데, 그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선조 순조 때 이곳에 굶주림이 극심해서 강릉부사 이응유가 파견되어 민심을 달래려고 왔다. 이응유가 와보니 바다가 깊어 물이 검고 먼바다도 검게 보였다. 게다가 까마귀 떼가 하늘을 덮으니 새도 까맣게 보였다. 그래 이응유는 “이곳은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은 항구이니 묵호(墨湖)라 하는 게 좋겠구나.”라고 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이곳을 부를 때 묵호라 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묵호의 옆 마을 발한(發翰)은 글을 잘 짓는 선비(文翰)가 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은 지명이다. 이것을 본 묵호의 선비들은 문한의 필묵을 넣어 글도 잘하고 글씨도 잘 쓰는 한묵(翰墨)이 나는 마을이라 하여 검을 묵(墨)자에 큰 바다를 뜻하는 호수 호(湖)자를 넣어 묵호라 했다고 한다.
참고자료
단행본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의 지명유래집 중부편. 수원:국토해양부 국토지리원, 2008.
지방문화원
동해문화원 GO
집필자
이학주
|
첫댓글 묵호 설화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