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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생방송 묘미의 극단을 보여주마[카타리나의 주말영화 - 정민아]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감독, 2013년작 정민아
승인 2013.08.13 11:26:47 오해하지 말자. 이 영화는 액션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재난영화도 아니다. <다이하드> <인디펜던스데이> <해운대> <타워>, 이런 걸 원한다면 <더 테러 라이브>는 스케일 면에서 시시해 보인다. 그러나 근육맨들의 몸 자랑 액션블록버스터나 현실감각 없어 보이는 재난영화가 영 취미에 맞지 않다면, 이 영화의 처음 전개 10분 만에 눈이 번쩍 뜨이고 심장이 쫄깃해짐을 느낄 것이다. 영화는 밀고 당기기의 긴장감으로 충만하며, 배우 하정우의 변화무쌍한 원맨쇼와 결말까지 타협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패기로 박수 받아 마땅할 올해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대상감이다. 젊은 신예 김병우 감독은 이전에 <아나모픽>과 <리튼>이라는 저예산독립영화를 만든 적이 있지만, 감독 본인은 이 작품을 실질적인 데뷔작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원래는 세 번째 장편 역시 독립영화로 준비하고 있다가 <여고괴담>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던 제작사 ‘씨네2000’에서 상업영화로 재기획되었다. 연기력과 흥행 파워 면에서 충무로 최고 배우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하정우의 원탑 캐스팅만으로도 주목 가치가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예산규모와 개봉시기로 봐서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대중적으로 그리 썩 크지는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430억 예산의 <설국열차>와 중국 시장을 공략한 300억 예산의 <미스터고>에 맞서 35억 제작비의 소박한 영화가 배우 한 명 앞장 세워 전투를 치르자니 골리앗 앞에 선 초라한 다윗 신세다. 이름도 쟁쟁한 봉준호, 김용화 앞에 선 신인감독이지 않은가. 정치권력, 미디어권력의 두 얼굴과 마주하기 현재 영화상영의 기울어진 구조에서도 한바탕 반전을 기한 기특한 영화다. 영화는 범죄스릴러 심리드라마로서의 장점을 두루 갖춘 탄탄한 전개로 인해 깊숙한 몰입을 유도하는 힘을 발휘한다. ‘9시뉴스’ 메인 앵커에서 하루아침에 라디오 아침 프로그램으로 밀려난 윤영화(하정우)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전화연결 도중 청취자로부터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는 경고를 받는다. 그리고 실제 마포대교가 폭파되는 테러가 벌어지고 윤영화는 이 일을 9시뉴스 앵커로 복귀할 천군만마의 기회로 여긴다. 방송국은 특종을 향해 우왕좌왕하고,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동상이몽을 꿈꾼다. 투미하게 움직이던 윤영화는 깔끔하게 변신하여 TV뉴스 캐스터 자리에 앉고, 보도국장 차대은(이경영)은 시청률 70%를 찍으면 본부장으로 승진하고 곧 공천 받을 일에 입이 벌어진다. 이제 긴장감 넘치는 윤영화와 테러범과의 대화 독점 생중계가 TV로 송출되고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폭탄테러의 실상이 90분간 실시간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시간은 실제 시간과 완전히 일치한다. 우리는 90분 동안 한국 정치와 미디어권력의 두 얼굴과 마주한다. 윤영화와 전화 목소리, 두 사나이의 팽팽한 대결은 대통령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이다. 30년 전 마포대교 신축 시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박노규는 2년 전 마포대교 확장 공사에 다시 투입되었다. 연장 작업 도중 사고로 동료 노동자 2명이 다리 아래로 떨어졌으나 국제행사로 인해 경찰이 제때 오지 않아 두 사람은 사망했다. 사망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고, 보다 못한 박노규가 그간 신뢰해마지 않던 윤영화 앵커를 통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박노규와 윤영화는 협상 중이다. 사건 해결이 이렇게 단순한데,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이게 간단치가 않다. 벙커로 숨어들어간 대통령이 사과하러 방송국에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 나라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하층민의 목소리는 실종된 욕망들의 경연장 방송국 조정실에는 테러 협상 전문가(전혜진)가 들어서서 윤영화를 진정시키고, 스튜디오 안에는 경찰청장이 등장한다. 권위주의가 뚝뚝 떨어지는 경상도 사투리의 경찰청장 역시 이 사건을 크게 부각시켜 자신의 비리 조사를 위해 곧 열릴 청문회를 묻어버릴 꿈에 부풀어 있다. 테러 진압의 공을 세워 대통령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누구도 인질로 잡힌 시민들의 목숨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건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폭발 스펙터클을 화면에 잡고자 하는 방송국의 욕망, 이 일로 공을 세워 메인앵커 자리로 돌아가려는 기자의 욕망, 시청률을 높여 승진하려는 보도국장의 욕망, 테러 진압과 범인 검거로 자신의 자리를 보전 받으려는 경창청장의 욕망, 또 다른 속보를 터뜨려 시청률 1위를 탈환하려는 경쟁 방송사의 욕망, 그리고 사과란 절대 없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 강한 정부를 과시하려는 대통령의 욕망. 이 다종다기한 욕망들의 자리에 생명을 위해 울부짖는 시민의 목소리, 억울하고 원통하여 위로가 필요한 하층민의 목소리는 있을 곳이 없다. 자칫 영화는 테러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비천한 소망을 영화가 대리 충족시켜주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통쾌한 쾌감을 선사한다. 혹은 위로라고 불러도 좋겠다. 올해 초에는 울려고 영화를 봤다. <레미제라블>과 <7번방의 선물>은 그 사명을 다했던 것이다. 이제는 겹겹이 쌓인 울분을 터뜨릴 곳이 필요하다. <더 테러 라이브>는 대중 무의식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는다. 지나치게 유능한 테러범과 서사 전개의 논리에서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은 영화의 사실성에 균열을 가하지만, 영화 속 리얼리즘과 현실의 리얼리즘을 그대로 대입할 필요는 없다. 픽션 세상에서는 인과관계를 세세히 밝히지 않아도 넘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실이 허구보다 더 어이없지 않은가. 수십 회의 전과로도 권력을 획득하고, 가짜 예일대 박사가 출셋길을 달리고, 살인을 교사한 재벌 마나님이 실형을 받고도 병원 특실에서 놀고먹는 것이 가능한 세상인 것을. 헛된 죽음이 아니길 하정우의 얼굴 클로즈업을 영화 거의 내내 보고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 배우의 세밀한 움직임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입증한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테러범의 모습도 영화에 잔재미를 준다. 최근 인상적인 캐릭터로 영화의 무드를 끌고 간 이 배우의 영화 선택 안목은 칭찬할만하다. 영화의 빠른 편집과 클로즈쇼트들, 그리고 기계음악은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다. 반영웅적 인물의 고독한 싸움은 설득력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기에 관객의 연민을 불러 모은다. 사회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선 곳에서 스미는 숙명론적인 세계관은 염세주의를 증대시키지만, 먼 훗날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2013년을 진단하는 바로미터로 기능할 것이다. 영화는 용산의 불타버린 컨테이너 참사, 국책 건설공사로 인해 숨진 하층민들, 끊이지 않는 재난 사고, 그리고 이들과 상관없는 세상 속 국제정상회의, 국회의사당, 방송권력, 정부관료 시스템, 권력남용 등등, 많은 점을 생각나게 한다. 비극적이고 헛된 죽음이 아니면 좋겠다. 정민아 (카타리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