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면회를 다녀왔다. 웃고 떠들며 김장을 함께했던 아빠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코로나로 병원은 큰벽을 둘러친 요새처럼 가족들의 면회를 막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면회 한 번 오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아빠는 많이 외로웠을까. 여든이 넘었으니 돌아가셔도 하나 이상할 것 없다 말하는 의사의 말이 참 아팠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선인 코로나 정부도 원망스러웠고, 처음 겪는 거대한 이벤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내가 가장 한심했다.
임종면회라니, 그건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평생 해볼 일 없을 슬픈 만남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말라비틀어진 아빠가 병상에 누워 있었다. 틀니를 뺀 아빠 입이 한껏 쪼그라들어 더 볼품이 없었다. 임종면회에선 뭘 해야 하는 거지? 이대로 잘가라고 인사하기는 싫은데. 혹시나 아빠 입에서 “사랑한다.”라는 말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단박에 무너졌다. 목소리는커녕 눈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아빠는 가장 보고 싶었던 딸들을 앞에 두고도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눈물도 나오지 않은 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저 몇 마디를 계속 중얼거렸다. 아빠가 내 아빠여서 고마웠다고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그런 종류의 말이었던 것 같다. 이불 밖으로 아빠 발이 삐져나와 있기에 그 발을 잡았는데 순간 내 입에서 통곡이 터져나왔다. 발이 너무 차가웠다. 아빠가 기어코 삶이라는 강을 건너가려는가 싶어 꺼이꺼이 숨이 차도록 울었다. 발이 따뜻해지기만 하면 아빠가 다시 일어날 것만 같아 두 손으로 발을 주무르고 비비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면회는 허망하게 끝났다. 병실 밖에 모인 우리 가족은 아빠가 더는 고통스럽지 않도록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종이에 사인을 했다. 그것이 아빠에게 잘하는 짓인지 못하는 짓인지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물어볼 아빠가 없었다. 아무리 가족이지만 타인의 목숨을 내 마음대로 결정짓는 일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아빠를 보내드리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하기로 했다. 코로나로 장례식장과 화장터가 만원이라는 주변인들의 조언을 들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동네 근처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아빠를 두고 장례식장과 화장터를 미리 예약할 수는 없었다. 묻는 실장님도 대답해야 하는 우리도 서로 민망했다.
“언제 돌아가실 예정이신지.......?”
“글쎄요. 오늘 임종면회를 하긴 했는데......”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하루하루가 참으로 길게 흘러갔다. 아빠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을 가혹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빠가 의식을 찾고 있다고. 또 하루가 지났다. 일반병실로 옮기기로 했다고. 또 하루가 지났다. 보호자로 아빠 옆에 먼저 간 엄마가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며 “여보세요? 우리 딸 설날에 아빠 집에 올 거니?”라고 또렷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번에는 아빠 발 대신 핸드폰을 붙잡고 한참을 통곡했다. ‘감사합니다’를 백 번쯤 말했던 것 같다.
의사도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의사가 쓴 아빠의 생환기가 병원 내 게시판에 올라가 병원 식구들도 모두 아빠를 알아본다고 했다. 의사는 아빠에게 염라대왕은 만나셨냐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는데 아빠가 덥석 “만났는데 그냥 가라더라구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정말로 저승사자 같은 사람들 여러 명과 함께 어딘가를 가다가 이제 그만 돌아가라는 말에 뒤돌아섰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염라대왕 앞에서 그냥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다지만 늘 긴가민가했었는데, 임종면회 때 봤던 아빠의 한껏 쪼그라든 모습과 차가운 발을 아는 나로서는 아빠가 살아 돌아온 일은 정말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일단 정신이 없었고, 아픔의 고통을 많이 느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임종면회는 기억조차 안 난다고 했다. 그대로 삶의 강을 건넜다면 그토록 허망한 죽음이 어디 있을까.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내 육신이라면, 정신이 온전할 때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주위에 전할 말을 전하는 일은 나 자신에게도,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식 소중했던 친구들처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아... 가슴을 쓰러내며 읽었습니다. ㅠㅠ
임종면회 ... 그뒤로 이어진 가혹한 시간 ... 정말 기적이 일어난 순간들의 글을 통해 왈칵 눈물이 나고, 저절로 감사의 말이 떠올랐어요.
작년말 여든이 훌쩍 넘은 엄마가 '연명치료 중단동의'에 등록했다고 알려주셔서 가족들안에서 연명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던터라 마지막문단의 '정신이 온전할 때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주위에 전할 말을 전하는 일'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깊은 공감에 저도 위로를 받습니다.
아이고, 큰 일을 겪으셨네요. 마음이 어떠셨을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힘든 상황을 글로 나눠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아.. 선생님께 지나가면서 들었던 그 고비의 시간들 글로 만나니.. 임종면회의 묘사가 너무나 슬퍼서 사무실에서 읽느라 서둘러 눈물을 훔쳐냈어요. 기적이 이렇게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났다는 것도 새삼 놀라워요. 다시 얻은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할까요.
한 편으론 샘이 정말 부럽습니다.
정말 감사한 기적이 일어났네요~! 평소에 사랑을 잘 표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다가 눈물도 나고 가슴 덜컹하며 읽어내려갔는데, 이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더욱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었습니다. 임종면회 ... 맞닥드리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겪을 수 밖에 없겠죠?
가족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