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조치가 선포될 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외국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한국을 얼마나 우습게 볼까,
꼽다시 당하고 있는
한국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 싶어
부끄러웠고,
저항하지 못 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긴급 조치의 근거인
소위 유신 헌법은
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긴급 조치도 유신 헌법도
사라지게 한 것은 김재규다.
그럼에도 김재규는
아직 복권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영웅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데도.
안중근을 다룬 영화 '영웅'이
상영되고 있다.
안중근 거사일과
김재규 거사일이 같은 날인
10월 26일이다. 70년을 전후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사진을 보니,
영화 관람하러 극장에 입장한 사람을
모두 일으켜 세워
애국가를 듣게 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매일 오후 다섯 시
국기 하강식 때는
가던 길도 멈추어 서서
가슴에 손을 올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올려야 했던 일도 함께.
그럼에도 우리 국민 중에
박정희를 존경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30여 % 있다.
2022년 12월 30일
구자훈 페북 게재 글
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
연합뉴스
김재규(金載圭,
1924년 4월 9일 ~ 1980년 5월 24일)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제9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 전국구),
건설부 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박정희의 집권 기간 동안
대표적인 최측근으로 있었으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등을 암살한
10.26 사태를 일으켰다.
본관은 김녕(金寧)이고
경상북도 선산군 출생이며
호는 덕산(德山)이다.
김재규(金載圭)
1943년 안동농림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중등교원양성소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김천중, 고교에서 교직생활을 하였고,
국군창설 때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에 입교하여
1946년 12월 제2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54년 제5사단 제36연대장,
1957년 육군대학부총장,
1963년 제6사단장,
1966년 제6관구 사령관과 방첩대장,
1969년 육군보안사령관,
1971년 제3군단장 등을 거친 뒤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5.16군사정변 직후
군정하에서는 호남비료 사장을
역임하였다.
1973년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제9대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1974부터 1976년까지
제13대 건설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0년 말과 1970년 초부터
베트남에서의 철수문제 등이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
특히 외화와 건설기술 획득의
어려움에 직면해
본격적으로 한국기업의 중동진출을 위한
결정을 내렸고,
김재규가 건설부 장관으로 입각한 시기,
한국기업의 중동진출 과정에 기여하였다.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에서
정보수집과 사태수습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979년 와이에이치(YH)무역
여공농성사건,
신민당 총재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사건,
부산, 마산 항쟁 등의
정국 불안사건 등을 접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갈등,
그리고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고,
1979년 중앙정보부 직속부하인
박선호, 박흥주 등과 모의하여
이른바 ‘10.26사태’인
대통령시해사건을 행하게 되었다.
10월 28일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에 의해 체포되었고,
이 사건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여러 가지 설과 주장들이 제기되었으나,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재규 처형장면 미공개 사진 최초공개
박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재규
사형대로 옮겨지는 중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모습
처형 직전 유언을 남기는 중
머리에 보자기를 씌움.
손에는 염주가 들려있다.
처형된 순간
가슴을 열어
완전히 숨이 끊어졌는지 살펴본다.
바닥에 내려진 김재규의 시신
김재규의 시신이 담긴 관
용인(用人)의 귀재(鬼才)
중수(仲樹) 박정희 대통령이
고향 친구이자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배신을 당하여,
독일제 발터 PPK 권총으로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미제 S&W M36 치프 스페셜 리볼버
권총으로
머리에 확인사살까지 당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할 때
사용한 발터 PPK
(Walther PPK)
Walther PPK
S&W M36
FN M1900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할 때 쓰인
안중근 의사의 FN M1900
총기번호 262336
실물 소재 불명
실제 안중근 의사가
의거에 사용했던 총기는
증거품으로 분류돼
일본 본토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일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분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안중근(安重根 ) 의사(義士) 사진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총 명사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에게 권총을 발사하였다.
하얼빈역 플랫폼에
이토가 하차했을 땐
워낙 많은 수행원들이 함께하여
도저히 누가 이토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체념하던 순간에,
이토의 하얼빈 방문을 환영하는
현지 일본인 환영객들 중
누군가가 이토의 이름을 부르자
이토가 뒤를 돌아서서
손을 흔들어준 덕분에
안중근이 이토의 얼굴을 확인하고
FN M1900으로
3발 저격했고
그 주위의 일본 측 인물도
혹시 몰라 4발 저격했다.
제1탄은
이토의 오른팔 윗부분을 관통하고
흉부에,
제2탄은
이토의 오른쪽 팔꿈치를 관통해
흉복부에,
제3탄은
윗배 중앙 우측으로 들어가
좌측 복근에 박혔다.
3발 모두 급소를 맞혔다고 한다.
이토는 피격 30분 만인
오전 10시 경에 숨졌다.
그리고 남은 총알로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 俊彦),
이토의 수행비서
모리 다이지로(森 泰二郞),
만주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田中 淸太郞)에
각각 1발씩을 맞췄다.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토를 저격한 후 혹,
자신이 이토가 아닌
무고한 늙은이를 살해한 것인가
생각이 들어
이토 주변의 남자들을
저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알 한 발을 남기고
체포된다.
여기서 이 한 발을
자결용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이 아니다.
안 의사는 당시
자결할 생각이 없었고
이토 처단 후
재판에서
이토의 죄를 낱낱이
밝힐 생각이었다고
여러 번 진술했다.
그리고 가톨릭에서
자살은 죄악이다.
총알 한 발을 남김은
이미 이토가 쓰러져서
더 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재규는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는 배은망덕(背恩忘德)으로
인과응보(因果應報)이다.
배은망덕(背恩忘德)
背 등 배, 恩 은혜 은,
忘 잊을 망, 德 큰 덕
은혜를 잊고
배신을 함을 뜻하는 한자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악행 중의 하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남을 위한 노력과 희생을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시간낭비로 만들어버리는
악행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혜를 갚으려 했더니
오히려 배은망덕한 놈으로
몰아세우는 경우도 있다.
정반대의 의미의 고사성어로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있다.
관련어
견리망의(見利忘義)
적반하장(賊反荷杖)
토사구팽(兎死狗烹)
도와주고 누명쓰기
인과응보(因果應報)란
행위의 선악에 대한 결과를
후에 받게 된다는 말로
흔히 죄값을 치른다는 개념을
나타낼 때 쓰이는
한자성어이자
불교에서 유입된 불교용어이다.
불교적 의미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는
이 용어의 일상적인 용법에 비해
상당히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윤회의 작동원리이자
그것의 원동력이 되는
'덕(업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한 행위는 업보가 되어
윤회의 고리에서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인간은 전생에서 지은 죄에 따라
내생의 외모나 고난 등이
결정되는데
이것이 곧 인과응보의 논리이다.
반면에 현생에서 참회하고
덕을 쌓아 업을 없앤다면
그 또한 인과응보에 따라
해탈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절제함과 동시에
늘 선한 일을 하여야 하며
또한 자기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즉 인과응보는
불교윤리의 기본이 되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유의어
사필귀정(事必歸正) -
일이 잘못된 길로 흘러도
결국에는 바른 길로 들어선다.
권선징악(勸善懲惡) -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한다.
선이 악을 이긴다.
자승자박(自繩自縛) -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은
잘못된 결과에
스스로 괴로움을 당한다.
비슷한 말로 '자업자득'이 있음.
자업자득 -
자신이 저지른 과보(果報)나 업을
자신이 받는다는 뜻.
종두득두(種豆得豆) -
콩 심으면 콩 난다.
속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린대로 거두리라.
옮겨 온 글 편집
카페 게시글
… 대청마루(펌)
덕산(德山) 김재규(金載圭)
청산 노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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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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