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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심심찮게 전쟁을 한다. 전쟁이라고 하면 아주 크게는 종교 분쟁이나 이념의 차이로 일어나는 국가나 민족들의 전쟁이 얼핏 생각된다.
그런데 그렇게 전쟁이라고 명명하기에는 작은 전쟁들을 사람들은 보통 싸움이라고 한다. 이웃과의 싸움, 오가다 부딪는 사람들과의 싸움, 어떤 오해나 실망이 가져온 싸움도 흔하다.
칼로 물을 벤다는 부부싸움이 가장 잦고 그 강도나 형태도 다양하다. 형제간의 싸움이나 친구들과의 싸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우리 부부와 가까운 친구다. 그래서 우리 집의 방문이 잦고 여행, 외출, 여가를 함께 즐기고는 한다. 그러한 사람이 싸움 대장인 것은 참 불편하기도 하지만 어처구니없을 때도 있고 간혹은 재미있기까지 하다. 원래 구경은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지 않던가.
남편과는 어릴 때부터 친구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낳아서 함께 키우고 함께 늙어가는 처지이기도 하니 그의 모든 행동이나 목소리는 물론 생각까지 읽혀질 때가 있다.
우리 집은 골목에서 두 번째 집이다. 첫 집인 옆집을 지나야 들어올 수 있다. 그 집에서는 콩이라고 부르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다.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목소리로 짖어대기가 일쑤여서 골목은 언제나 조용할 날이 없다. 오가는 사람 모두에게 짖어대고 앙앙거린다. 나는 비교적 강아지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강아지는 찢어지는 목소리부터 혐오스럽다. 그래서 ‘무엇’을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고 더러워서 피하는 것처럼 슬그머니 숨을 죽이고 그 곁을 지나온다.
싸움을 잘하는 그 사람은 당연히 우리 집을 드나들 때마다 그 강아지와 싸움을 벌인다. 발로 땅을 구르면 멀리 도망가듯 하다가도 다시 쫓아 나오며 악을 쓴다.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질 것 같은 그 강아지와의 전쟁은 이어지고 막된 욕을 뱉으며 들어서는 그 사람을 보면서 참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그렇지 강아지하고 저렇게 싸우는 것일까?’ 강아지와 눈높이를 맞추어 바닥으로 기어들 듯 한 그 자세가 참 우습다.
“아니 그까짓 강아지하고 무엇 하러 싸움을 한 대요?”
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 사람은 나한테까지 으르렁 거릴 자세다. 속으로는 웃음이 피식 나오지만 아닌 듯 그 강아지한테 욕을 퍼 대며 편을 들어준다.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수년을 보아왔는데 아직도 낯설다는 거야?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꽤나 짖어대네.”
없는 소리 있는 소리 다 해가며 거든다. 그래야 화가 녹아들 테니까 말이다.
필드로 나가기에는 더운 여름날이다. 싸움을 잘하는 그 사람과 언제나처럼 한 조를 이루어 스크린 골프를 치러갔다.
스크린 골프 프로그램에는 캐디가 있어서 안내를 해준다. 바람의 방향도 알려주고 클럽을 신중하게 고르라고 조언도 해준다. 퍼터를 해야 할 때에는 쪼그리고 앉아 공의 방향도 잡아주는 캐디가 마치 ‘진짜 사람’ 인 것 같기는 하다. 요즈음 프로그램에는 캐디도 골퍼가 마음대로 선정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곳도 있어서 친해진 캐디와의 재미도 쏠쏠하게 즐긴다. 경상도나 전라도 태생인 캐디를 선정하면 그 지방의 사투리를 즐기며 웃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재미가 화로 변했다. 그러지 않아도 컨디션이 안 좋은지 생각이 많은 것인지 타수가 많아져서 슬슬 화가 나던 그 사람이다. 그런데 캐디가 눈치도 없이 화를 북돋운다. 녹음된 언어로 스크린 안에서 떠드는 캐디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공은 OB를 내고 만다. 다시 치려고 타석으로 올라서는데
“실수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연습 샷 한 번 더 하시고 신중하게 치시기 바랍니다.”
어김없이 건네는 캐디의 목소리는 상냥하기만 한데
“아, 알았어, 알았다고. 누구는 몰라서 못해?”
캐디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외치며 클럽에 화를 섞어 다시 한 타를 날린다. 역시 오른쪽으로 휙 돌아가 또 물에 빠져버린다.
“아,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저놈의 캐디 주둥이를 싹싹 비벼놓던지 해야지.”
화가 끝까지 난 그 사람의 목소리는 더 높아진다. 나는 얼른 말을 받는다.
“그러게, 재봉으로 입을 박아버리든지, 반창고라도 입에 붙일까요?”
남편이 거든다.
“아예 벙어리 캐디를 골라봐”
싸움은 함께 거들어 주어야 빨리 끝난다. 우리 부부의 합세에 주저 않고 만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는다. ‘아니, 아무리 싸움을 좋아해도 그렇지. 가상의 스크린에 있는 사람하고도 저렇게 리얼하게 싸울 수 있다니.’ 언제 어디에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자신의 감정을 속에 넣고 있지 못하는 그 사람이 부럽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해 화병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강아지와 싸울 수 있는 그 사람, 가상의 어느 무엇과도 팔을 걷어붙이고 해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성격이 부럽기만 하다. 한여름 하늘의 검은 구름들은 서로 부딪쳐 천둥번개를 일으킨다. 그 끝에 시원한 소나기도 만들어지지 않는가.
등단: 2012년 월간 수필문학 천료
저서: 사진 수필집 「두 번 울던 날」
수상: 제7회 백교문학상. 제15회 춘천여성문학상
활동: 한국문인. 강원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