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군대를 제대하고 나머지 학업을 마쳤습니다. 당장 취직할 길이 막연해
형님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잠시 일을 봐드렸죠. 그리고 이거다 싶어 공장을 하나
차렸습니다. 하지만 일차 오일쇼크로 두 손, 네 발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공장에서 아는 후배뻘 되는 사람 하나 만났습니다. 동두천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대마를 수확해 미군들한테 팔다가 결국 도피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오갈 데 없다 보니 허름한 공장까지 와 일하는 처지가 되었죠.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한데 이 친구는 눈썰미가 참 대단합니다. 어릴 때부터 야생 대마도 찾아낼 줄 알만큼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형님 돌아가시고 조카가 물려받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 친구의 유일한
낙은 주말마다 낚시를 가거나 산채 산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열 번 가면 대여섯 번은 삼을 보는 겁니다. 하도 웃겨서 감정까지
받아봤는데 분명 산삼입니다. 이 친구 자주 가는 산은 경기, 강원 북부입니다.
한 번 함께 두릅 산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나름 눈썰미가 있어 두릅 정도야 많이
채취할 수 있다고 자부심을 가졌는데 무려 보통 사람들의 두세 배가 넘습니다.
신의 눈썰미와 감각을 가진 거라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날도 이 친구는 산삼
한 뿌리를 채취해 왔습니다.
허접 심마니지만 심마니는 심마니인 셈입니다. 이 친구 벌써 오십 중반이 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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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월간잡지 산이란 게 있습니다. 직장생활할 때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 퇴사를 하고 조선일보 입사한 후 산이란 월간지 기자로 들어갔습니다.
이 친구는 광양에 수십만 평 부농의 아들인데 천성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대학 때는
사진전공을 했습니다. 네팔 등 세계 오지란 오지는 다 돌아다니며 참 수련을 했지요.
물론 지금도 사진을 하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괜찮은 후배이자 친구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 조선일보 출판국 산이란 잡지사에 근무할 때 전문 산악인들과 친했나
봅니다. 직업이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들과 친분이 많았겠죠.
이 친구, 한창 신문에서 떠들던 산삼이란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산 잡지에서도 힘을
실어줬겠지만, 이 친구는 앞장서서 대학교수, 언론인, 산악인, 그리고 일반 직장인들을
규합해 작은 모임을 만들고 전국 유명 산들을 찾아다니며 산삼씨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교수들한텐 산삼배양근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고 전문 산악인들과 함께 전국 산들을
돌아다니며 산삼씨를 뿌렸습니다. 장뇌삼이란 이름도 그 시절, 널리 알려지게 된 거죠.
그 덕분에 서두에 말했던 그 친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산삼이란 걸 캐옵니다. 물론
인삼 재배농가가 많다보니 새들이 삼 씨앗을 먹고 여러 산 돌아다니며 배설한 것들이
싹이 터 흔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노력 없이 여기저기 산삼 흔할 수 없겠지요.
이 친구 삼씨 뿌리고 다녔던 세월이 어언 삼십여 년 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 참으로 자연에 대해 겸손합니다. 이십일만 평 농사 지으면서도 결코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습니다. 산에는 장뇌삼이며 수백 그루의 매실나무, 감나무, 밤나무
마가목, 헛개나무, 자작나무 등등 등 온갖 나무들로 빼곡하고 자연 그대로 가꾸기 때문에
온갖 약초며 별의별 산채들로 무성합니다.
서울 평창동에 마눌님하고 아들님, 따님이 살고 있는데 농사짓는 광양에서 서울 올라갈 때면
시커먼 고무신 신은 그대로 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통나무집 두 채 지어놓고 아무나,
누구라도 객이 찾아오면 서슴치 않고 내어줍니다.
말 한 마디라도 잘난 체 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대단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아직도 십여 년된 무쏘 끌고 다닙니다. 결코 자식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자식들은
미국유학 다 다녀왔고 방송국 등 언론사에 근무하는데도 몸에 밴 친절,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칭송이 자자합니다. 그 부인 또한 같은 학교에서 사진 전공하고 유명
여성잡지사 사진기자까지 했으면서 결코 거만떨지 않습니다. 익은 벼가 고개 숙이듯
아름다움 그 자체로 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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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을 닮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자기 잇속 생각해 간, 쓸개 다 내어줄 듯하다가 어느 순간 정색하고 틱틱거리며 거만떠는
인간들, 자신을 속물이라 광고하는 셈입니다.
허접 심마니 얘길 하다 조금 샛길로 빠졌습니다.
^^
첫댓글 생활 속의 삶의 이야기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어서 나라가 평온하고 살 맛이 납니다. 친구분께 복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올해는 고로쇠 약수 한 오십 통 받은 모양입니다. 도시생활 마지막으로 출판사겸 광고촬영 스튜디오 운영하다 십오 년전 낙향해 지금의 농사를 짓는데 고로쇠 나무도 그 나이쯤 됐지요. 이제서야 조금씩 수고한 값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대단한 친구(후배)분이시군요. 자연에 겸손하고 삶에 교만하지 않으니, 부인과 자식들까지... 요즘 보기 힘든 일화입니다. 좋은 분을 가까이 두신 풀씨님이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자주 부탁드립니다.
예, 조금 드문 예지요. 타고난 부와 열심히 쌓아올린 실력 넉넉해 남부럽지 않음에도 겸손할 줄 아는 건...
고맙습니다. ^^
좋은 사람곁에는 또 좋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사람의 인생에서 진짜 좋은 사람만나는것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이 듭니다,,간혹 돈 좀있다고 시건방지게 구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보는데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좋은 친구를 두셔서 부럽습니다,,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자신만 잘났다 거만떠는 사람들 많지요.
사실 별로 잘난 것도 없는데... ^^
참된 사람을 사귀셨네요....드립니다. 인생은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참 선인다운 선인을 만나셨군요. 저에게도 소개 좀 시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