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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 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애3:24-46
주신 말씀 예레미야애가 3:25-46절을 중심으로[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요? ]라는 제목으로 선포되는 멧세지를 통해 큰 은혜 받으시기 원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평안 하셨는지요? 이제 5월이 가고 장마의 계절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금주는 6월6일 현충일이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구국기도 주간입니다.
얼마 전 까지 만해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원들이 전국곳곳에 있어 기도의 불길이 꺼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기도원마다 치료 축복응답을 내세운 기도원만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영합하는 자들이 득세하고 개교회의 숫자 늘리기에 혈안이 된 자 들만 난무하고 , 나라의 민주화와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사라지자,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힘든 자, 병들고 약한자, 핍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멀리하고 높은 자리와 자기 이름 내려고 전전긍긍하는 동안 성도들 수백만 명이 한국교회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 논산훈련소에서 한꺼번에 8천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기네스 북에 등재한다고 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350만 명이 군병영에서 세례를 받았다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갔을까요?
바느질세트 손톱깍기 세트 받고 초코파이 먹는 재미로 교회에 나가고 세례 받았다가 목사되어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기드온협회에서 보급한 작은 성경을 가슴에 품고 쉬는 시간마다 읽으며 신앙을 키우다가 우연히 그 성경에 적탄이 맞아 살아난 기적도 있지요.
나라의 독립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고 싸우다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을 위해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 나라에 적화통일세력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유신 세력의 부활을 막아내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 그리스도인으로써 과연 어떻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은 66절로 되어 있으며 첫째 문단 1-23절은 여호와의 징벌의 극한 고통에 대한 절규와 여호와 안에서의 소망회복에 대한 고백을 말하고 있고, 두 번째 단락 24-46절은 징벌 중에 있는 선민에 대한 중보자적 권고와 여호와를 향한 중보자적 호소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둘째 단락인 본문은 첫째로 24절에서 여호와를 절대 신뢰한다는 고백이다.
둘째로 25-41절은 징벌로 신음하는 선민을 향한 중보자적 권고이다. 셋째로 42-46절은 선민의 고통에 대한 중보자적 대변과 호소이다. 현충일 주간 만이라도 나라와 민족의 자유와 민주화 복음화를 위해 노력한 선배님들의 희생을 감사하며 이 나라에 복음의 꽃을 활짝 피우는 그날까지 기독교문화가 창달되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과 윤리가 정착되기를 기도하는 주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징벌로 신음하는 선민을 향해 중보자 되신 주님께서 어떻게 권고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징벌에 대한 중보자적 권고와 호소를 통해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요? 첫째로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자신을 낮추라.(25-30)
국가대표 선수까지 한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하여 자격이 정지되자 급기야 부녀자를 납치하려다 미수한 사건이나 , 고등학생이 후배에게 자기 부모를 살해해주면 수억의 돈을 주겠다고 한 살인미수사건이나 다 이 땅에 윤리도덕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유교가 들어와 여자들의 활동을 형편없이 위축시켰고, 여권을 악랄하게 유린했고, 나라를 꽁꽁 걸어 잠그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상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만연한 점쟁이들과 제사로 인해 이 나라는 벌을 받을 수밖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불교와 유교의 영향으로 도덕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기독교는 그 윤리와 도덕체계를 확립하지 못한 혼란의 시대에 이와같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5,26,27절은 토브(좋다, 선하다, 합당하다)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세 구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다리고 구하는 인간의 행위가 소망을 이루며 그 효과를발휘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선하시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좋고 선한 일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25절에서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라 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다고 선언하는 것은 유다에 대한 심판과 멸망이 여호와께서 악하셔서가 아니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악으로 인해 당연한 결과이므로,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회복한다면 선하신 여호와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기다리다. 바라다, 참고 견디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고난 속에서도 참고 기다리라]는 의미입니다. 구한다는 말은 [예배와 기도 속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26절에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는 말은 그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소망 가운데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말씀 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철저한 파멸의 상태에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재앙을 만나 파멸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불평하며 소란을 피우지 말고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겸손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파멸의 상태를 스스로 모면해보고자 서둘거나 부산을 떨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를 기다리며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역사 속에 있었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적용되어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역사하는 능력이 되는 줄 믿어지시는 지요?
조급하고 어리석어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기 전에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소동을 피우다가 완전히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약성도들이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영적 싸움을 하며 참으로 긴급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경우에 참고 소망 가운데서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손에 붙들고 유지하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손에 붙들고 계신다는 것은 직접 다스리시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경영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조그만 양어장의 고기를 키우기에도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동식물들을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직접 챙기시고 다스리시고 운영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악한 것이 사람보다 강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올리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성도는 잠잠히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것이며,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써 갖추어야할 합당한 태도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수치와 모욕을 참되 처음에는 앉아 있다가 입술이 티끌에 대도록 숙이고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지나 죽음의 위험이 찾아올 때조차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점층법을 사용해서 28-30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징계 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반드시 소망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 구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시므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며 잠잠히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 충만케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징벌에 대한 중보자적 권고와 호소를 통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이라 하나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요? 둘째로 하나님의 뜻인 평강과 축복을 누리라.(31-39)
참된 평화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합니다. 31-36절에서 여호와의 자비와 공의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며, 축복과 징벌에 대해 여호와의 절대주권에 대한 인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33절에서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합니다. 본절은 일차적으로 심판을 받아 고난받는 유다 백성을 향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류를 향한 선언입니다. 여기서' 본심이'란 말 [밀립보]는 '그의 마음으로 부터'라는 말로 여호와의 본심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본래 의도한 것은 단순히 인생을 고생하게 만들며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보다 하나님 백성에 합당한 순결한 삶을 저해하는 불순물, 성장을 저해하는 장애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인생을 고생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시는 것은 궁극적으로 더 순수하고더 성숙한 신앙을 소유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다 확고하게 , 공고하게 확립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고난 속에 있는 성도나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악한 사람이 건강하고 복을 받고 자녀들이 잘 되냐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법 없이 살만한 신실하고 충성스런 사람이 그렇게도 지지리도 복이 없어 시험과 환난이 계속 되냐고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이런 부조리와 부패와 음란과 문제와 고통이 있느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진정 메시야시라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면 예수님 오신 이후에 더욱이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도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고통이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세상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공의와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공의와 사랑으로 완벽하게 창조하신 세계를 근본적으로 인간과 사탄이 파괴했습니다.
탐욕과 더럽고 부정한 죄 때문에 인간이 파괴한 피조세계를 새로운 평강과 축복의 나라로 만드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시어 그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징계와 심판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와 사랑을 통해 더 크고 아름다운 뜻,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축복의 나라인 천국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것은 사탄의 궤계에 빠져 드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유다 백성이 범죄하여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 고난을 당한 것이나 지금 인류가 수 많은 문제로 고통당하는 것은 스스로 팔려 사탄에 미혹된 결과이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통해 수백만명이 희생된 것은 우리가 우상을 음란하게 섬기고 쇄국정책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죄의 결과입니다. 몇 일 전 미군에 소속된 학도병 카추사 12명의 유해가 전쟁이 종료된지 60년만에 고국 땅에 들어왔습니다.
대통령이 영령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보도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리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하는 말을 보고 서글퍼 눈물이 났습니다. 같은 동족끼리 협상을 통해 유해봉송이 된 것이 아니라 미군의 유해를 찾다가 카추사로 배속된 한국인의 유해를 미군들이 발굴해서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그중에 10구는 신원도 확인이 안된 모양입니다.
이러고도 자주독립국가라고 경제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나요? 나라의 독립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다가 산화한 영령들조차 대접하지 못하고 친일파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일제에 징용자들 남양군도에서 희생된 수 많은 정신대 까지 챙기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19대 국회에는 주사파 국회의원이 6명이나 금뺏지를 달고 국민의 세금으로 세비를 주고 국가비밀을 내놓을 판이라 합니다. 권력욕에만 치우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정치인들을 탓한들 뭘 하겠습니까? 이제라도 모든 국민들이 하나되어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옳은 것 바른 것 정직한 것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평강과 축복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우리가죄때문에 준비되지 못해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4-36절에서 라멧 즉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는 뜻을 가진 것 즉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밟는 것, 재판을 굽게 하는 것,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등을 통해 불의한 재판을 통해 약자를 억압하고 학대하는 권력자를 하나님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약한 자를 짓밟고 권세를 남용하여 공의를 무너뜨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청지기인 것처럼 권세자도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위임받은 청지기들이므로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맞게 선용해야 될 줄 믿습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직임은 있으나 자리는 없는 줄 믿고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권세가 남용되고 가진 것을 악용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37절에서 자연계의 피조물은 물론 인간 역사조차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지배를 받는 영역임을 명백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얻은 재물이나 권세는 자기 것이라 우쭐대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사용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든지 그 모든 것을 주인이신 하나님 뜻을 헤아려 사용할 줄 아는 성도, 평강과 축복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여호와의 징벌에 대한 중보자적 권고와 호소를 통해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이라 하나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요? 셋째로 회개와 간구를 드리라(40-46) 40절에서“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자” 한 말씀은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파헤치자. 그리고 조사하자 , 그리고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현재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그 회개의 출발점은 자신들의 과거의 행위를 자세히 살피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먼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 가운데 출생한 인간은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너무 잘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작 보았으면서도 보았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고백하지 못합니다.
민족적인 회개가 필요한데 정치인들의 실정으로 혹시나 하면서 김일성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면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몰랐다면 무능이요 알고도 민심이반될 것을 우려해서 우물쭈물 하다가 이 지경에 도달했다면 마땅히 방조가 되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올바른 길을 가기는커녕 자기 지역구 고향 학력 이런 것에 의지해서 편파적 편향적으로 기울어져 형님예산 운운합니다. 북한의 핵문제, 인권문제, 미사일문제, 지원한 식량의전용문제등 얼마든지 저들을 압박할 수 있고 저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요구할 수 있음에도 어떤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다는 짓이 5,24조치로 결국 중국과의 경제적 종속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지요. 그리고도 종북주의자들이 문제라고 말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내부에 있는 문제들을 감추고 학벌 지역차별 재벌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근로자가 화합하지 못하면 국민화합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대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고 고백한 사람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민족구성원 모두 자기 죄를 고백하고 새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서로가 인정하기 꺼려지는 것부터 인정하고 나아갈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의 여섯가지 요소를 토머스 왓슨이 제시합니다.
죄를 직시하라. 죄를 슬퍼하라. 죄를고백하라. 죄를 부끄러워하라. 죄를 미워하라. 그리고 죄에서 돌이키라 합니다. 참된 회개의 출발점은 자신의 죄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인정에 있습니다. 나부터 자신의 죄를 적당한 변명으로 덮고 넘어가지 말고 철저히 파헤치고 고백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임하시는 사유의 은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42절에서 “우리의 범죄함과 우리의 반역함을 주께서 사하시지 아니하시고”라 한 것은 범죄의 주체가 우리 즉 유대인이고 이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곧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죄로 임한 것이기에 너희는 회개하라 하지 않고 ‘우리가 회개하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한 개인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바라보고 계시며, 동시에 한 사람으로 인해 심판을 늦추기도 재촉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으로 흩어지고 나누어지지 않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웃들은 어떻게되든 나 한 사람만 잘되면 그만이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물론 각 사람의 행한 바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 책망과 상급을 받게 되겠지만, 이 땅에서 성도의 신앙생활은 더불어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더불어 함께 함으로 가능하며, 성도들은 예수 안에서 성령의 전으로 함께 지어져 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사 항상 그의 얼굴을 저들에게 향하시고 빛을 비추사 축복과 은혜로 내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44절에서 하나님의 장자요 제사장 삼으신 백성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시고 진노의 구름으로 스스로를 감추셨을까요?
이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금식기도도 제사도 드리지만, 실제 삶에서 이방인보다 더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과 구분되지 않고 더 악랄하고 비겁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삶은 거룩하고 정결한 삶입니다. 말씀에 따른 올바른 삶이야말로 모든 예배와 기도의 뿌리임을 알라 합니다. 삶의 열매가 없는 거짓 가증스런 삶을 살며 죄에 대해 회개없이 드리는 희생제물은 악취가 되어 하나님을 실망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항상 정결하고 의로운 삶과 함께 회개가 뒷받침된 예배와 기도를 드림으로 진정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는 삶을 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의 징벌에 대한 중보자적 권고와 호소를 통해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첫째로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자신을 낮추라.(25-30) 둘째로 하나님의 뜻인 평강과 축복을 누리라.(31-39) 셋째로 회개와 간구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라(40-4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요? 민족 대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통일을 위한 구국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의로운 정치 의로운 판단 공정한 분배를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부정부패와 음란 욕설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품성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복음 전파를 계속해야 합니다. 직임은 있으나 자리는 없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교회와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지금도 붙들고 계시며 지속적으로 다스리고 계신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온전한 예배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 삶 속에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인격과 품성을 보여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각이 변하고가치관이 변하고 삶의 모습이 변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성도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한 손 으로 붙드시고 기다리시며, 회개와 간구를 드릴 때 평강과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