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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420 화요공부방 제3 수행편/제3장 염불법
교무님 설법
<염불법>
반갑습니다. 우리 호겸 교우님께서 염불법 아주 상세하게 잘 해주셨습니다. 사실 제가 할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꼼꼼하게 잘 해주셨다.
문제는 염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염불을 하는 것이고, 염불의 경지 합일 하는 것이고 맛을 보는 것이고, 염불을 통해 정에 들어가는 것이고, 염불을 통해서 스승님의 본의를 또 감상을 우리가 느끼는 것이, 그것이 깨달음의 길로 수양의 진경을 들 수 있는 길을 맛보는 기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염불을 얼마나 하시는가 모르겠다. 젊은 사람은 염불을 잘 안한다.
그럽니까?
주로 품위 있게 좌선을 하는데, 염불은 별로 안하고...
구타원님이나 성성원님이 젊은 사람이 어떻게 염불을 하냐고 했다. 다른 것이나 해달라고 주문을 지어줬다. 젊은 사람이 염불을 하고 있으면 뭐랄까, 도인 같다고나할까?
그렇습니까?
저는 원불교 학과를 다닐 때 저녁마다 염불을 한 20분씩 계속 했다.
해보면 가지가지다. 입도 안 벌린 사람, 몸을 흔드는 사람, 지 목소리 자랑 하는 사람
하다 말아버리는 사람, 괴상한 소리도 하는 사람, 운곡을 맞추는 대도 지 성격 따라 한다.
우리는 원불교 학과 다닐 때 북으로 쳤다. 지가 성격이 늦든 대중의 속도에 맞춰야지.
자기가 성격이 차분하니까 착착 치는데 염불을 하다가 마음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나무아미타불~’을 하는데, 속도가 이정도로 되야 하는데, ‘나무..아미..타..불’ 으구~~
아따 우리 선배인데 지금 서울 어디 교구에 근무하고 있다.
그날 내가 얼마나 마음공부를 해버렸는가. 아하! 염불 하는 것도 좋지만 은혜가 되야겠구나
염불 얘기하니까 그 기억이 납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신 총서편 교의편이 끝나고 수행편의 일상 수행의 요법 이후에 정기와 상시 훈련법을 내놓으시고 그 정기와 상시 훈련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법이죠. 필요한 과목들. 즉 수양이나 연구, 취사의 과목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맨 처음 나오는 게 염불법이다.
11과목 중에도 맨 처음에 나온 게 염불이다. 그다음이 좌선이다.
그 순서대로 정전이 구성이 되어있다.
그 다음에 뭐인가요.
정신수양이 끝났다. 사리 연구 과목으로 들어간다. 사리 연구 과목으로 뭐가 있나요?
경전 강연 회화 의두가 있는데 의두가 먼저 나오죠. 순서가 그렇게 된다.
정기 훈련을 하기 위한, 또는 집에서 상시 훈련을 하기 위한 과목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요지와 방법과 결과, 공덕까지 나오게 됐다. 대종사님이 이렇게 꼼꼼한 양반이다.
‘알아서 해라. 하다보면 알 것이다.’ 그렇죠?
제가 붓글씨 배우는데 아따 진짜 열 받더라고, ‘써봐 백장 써봐.’
체본 하나 써주고, 써보라고,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저는 성격이 고약해가지고 어떻게 썼는가 봐야겠고, 쓰면서 수정도 받고 싶은데, 근데 써보라는 것이다. 물론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어떻게 썼는가를 먼저 보고, 또 내가 쓰고 있는 것을 수정을 해줘야지~ 내가 백번을 이백번을 써도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냐~
우리 마음 공부도 똑같다. 일단 해봐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 니가 먼저 보여라.
그 다음 내가 할 테니 당신이 나를 지적을 해주시오. 아니면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냐~내가 해보니까 이러더라고. 의문을 물어봐야돼!
물어 보지마. 일단 써. 물어보는 거 제일 싫어해.
이런 사람도 있어요. 물어보질 않는 거요~ 성격 다양하다.
물어보지 말라는 스승은 좀 그렇다. 저같이 물어봐라. 묻는 문과 답이다 .공부는 문답을 통해서 많이 는다. 소크라테스도 옛날에 문답법을 많이 했다. 문답법이 중요하다. 그 속에서 탁 터진다. 근데 지금 기독교 문화가 있어서 일방적으로 교무가 막 답만 하고 있다. 묻지도 않은 답을 막! 이런 물음이 있겠죠하고~답만 하는데 그것이 아니다.사실은!
문답, 먼저 물으셔야 하고, 제가 답을 해야 하고. 그것은 사실 제일 맞다.
자! 질문 하시렵니까?
염불 하다가 의문 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호겸교우님이 너무 잘하니까, 할게 없어. 그냥 끝내버릴까 어쩔까 하다가~
자. 질문 하세요. 염불법에 대해서. 교무님 당신은 염불의 어떤 맛을 느껴봤습니까?
그런 것도 괜찮다.
물어볼거 없어요?
물어보면 나의 공부심이 탄로 나는가. 나의 공부단계가 드러나는 가요?
Q 정경도.: 걸어가면서 발걸음에 맞춰서 염불하고 그런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른 방법인지 궁금합니다.
교무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운전을 하면서 일원상 서원문을 몇 독을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을 걸어가면서 ‘나무아미타불’ 그런다는 거요, 뛰어가면서 ‘천지영기아심정 만사여의 아심통’
해본사람 있을 걸? 저도 해봤거든~ 질문 잘했다.
제가 이 질문을 누구한테 했냐? 원불교 학과 다닐 때 양산 김제승 선생님한테 제가 방에 찾아가서 한 질문이예요, 똑같은 질문이다.
양산님께 아침 선 끝나고 요가 후에 청소를 한다. 청소를 하고 나면 시간이 조금 있어요. 열심히 구보했었다. 총부 뒤, 송암동 뒤로 해서 담으로 뛰어갔는데, 뛰어다니면서 별것을 다해봤다.
천지 영기 아심정 해보고 나무아미타불도 해보고 다 해봤다. 이게 맞는지 궁금했다.
제가 양산법사님께 ‘양산님, 제가 뛰면서 주송도 하고 염불도 해봤는데, 이렇게 하는게 맞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더니
‘뛸 때는 뛰소. 그냥. 달릴 때는 달리기만 하소.’ 나한테 그러시더라고. 그게 정답이었다.
아까 호겸 교우 이야기대로 고렇게 할 필요가 있다. 한번 씩
그러나 그것이 더 깊은 경지에서는 하나의 방편이고, 그냥 그 자체 일심으로 무위안락의 경지라고 했잖아요. 염불은 무위다 무위!!
한자칠판에 -> 無爲
내가 걸으면서 맞춰야지 그것이 아니라 그건 유위이다.
그것은 유위이다. 염불은 무위로 하는 것이다.
오직 유위라고 한다면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소리에!
더 들어가면 소리로 사실은 집중하면서 그대로 무위안락하는 경지다. 그래야 염불의 공덕이 좌선의 공덕과 맞아 떨어진다. 처음부터 바로 좌선한다. 아니거든
제가 원불교 들어와서 항상 아쉬운 그거였다. 자다가 어떤 사람은 이도 안 닦고, 어떤 사람은 몸도 안 풀고 가고, 어떤 사람은 바로 선부터 하니 계속 졸림의 상태가 덜 깬 상태에서 각성이 안된 상태에서 졸고 자빠졌잖아. 그게 무슨 선인가.
나는 원불교 학과 다닐 때 일찍 잔다. 씻고 저녁에 기도를 항상 따로 했다. 4년간! 따로 심고하고 나서 옥상에 올라가서 4년간 기도를 했다. 기도 하고나서, 이 방에서 딱 요가를 한다. 일기를 쓰고 나서 요가를 하고 딱 누워서 와선을 한다. 와선을 하면서 계속 잠든다. 몸을 풀고 마음을 챙겨서 잤잖아요. 이것이 수면시간도 선시간이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 보다 자고, 몸도 안 푼 상태에서 자고, 퍼 묵다 자고, 다르죠 이게?? 다릅니다.
그러고 자고, 아침에 먼저 일찍 일어나서 이도 닦고, 좀 씻고, 그리고나서 방에서 저는 조금 늦게 들어갔다. 좌선시간에. 항상! 여기서도 조금 늦게 들어간다. 왜 늦게 들어가냐?
방에서 몸을 풀고 들어간다.
요가로써 몸을 먼저 풀고, 그다음에 독경을 아침에 하잖아요? 일상 수행의 요법을 같은 것.
우리 교당에는 헌배를 하는데, 헌배 40배 정도 하고 하면 좋아요, 사실은, 약간 빨리하는 것 보다는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몸의 근육이 풀리고 마음의 호흡이 된 상태에서 기운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해야 한다. 이도 안 닦고 몸도 안 풀리는 상태에서 폼만 잡고 있으면 무엇 하냐? 그러니까 멍 때리고 앉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심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운전할 때는 운전에 일심하고, 달리기 할 때는 달리기 할 때 일심하고, 글을 쓸 때는 글을 쓰는데 일심하고 그것이 맞다.
어떤 애들은 그런다. 컴퓨터 음악을 틀어놓고 컴퓨터를 하면 저는 그것이 좋아요. 하는 것은 습관이 된 것이지, 심히 안 맞습니다.
금이 좋다고, 눈 탱이에 금가루 뿌린다고 되겠습니까?
똥통에 들어가나, 물속에 들어가나 옷 젖는 건 마찬가지다. 어차피 옷 갈아입어야 한다.
난 물에 젖었으니 괜찮다. 똥통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미타극락을 장엄을 그린다고 그런 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거든. 이해하시겠어요?
그래서 아까 요가라던가 몸을 풀고 염불을 하고 입정을 하시는 것이 훨씬 좋다.
우리가 금요일에 하는 게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다. 사실은요.
제가 출가여행 갔을 때 호겸교우가 그걸 느꼈다고 하는데, 출가여행 갔을 때 제가 시키는 대로 딴 생각, 짓거리만 안하고 하면 3,4일째가 되면 그 맛을 반드시 느끼게 되어있다.
그 맛을 느끼기 위해서 제가 출가여행을 만든 것이거든요.
출가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냐? 7일간, 만 6일간 음식조절하고 몸을 좀 풀고 염불 등을 해서 입정 하면 다른 것 계문 별로 안 어기면, 반드시 염불이 끝나거나 선이 끝나면 ‘야. 이런 맛이 있는 거구나’ 할 수 있도록 제가 짠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우리 일박 이일 훈련 가서 뭘 느낍니까. 말이 2박 3일이지. 그것도 길다고 안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 옛날에는 석 달 씩 했잖습니까. 3개월씩.
지금도 불교에서는 석 달 씩 한다.
우리는 2박 3일 하는데, 교무님은 다른 데는 1박2일 하는데 2박 3일 합니까? 이런 소리 하면 제가 기가 막힌다.
염불을 잘 하면 삼매의 경지에 든다.
소리는 나는데, 내가 진경에 들어가 버린다. 그러면 희한하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는데도 내가 지치지 않는다. 염불은 단순히 겉 공부다. 표리의 관계에서 좌선이 진짜 공부고 염불은 별로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그러지 않는다.
염불 공부가 오히려 소양 체질, 사교형들, 초학자들, 좌선보다 염불이 낫다.
대산 상사님 법문집에 그런 말이 있다. 초학자들은 염불이 낫다. 그리고 성격이 차분하지 않은 사람, 들썩 들썩 하는 사람들, 덕안이가 경찰인데 발령을 받아서 사무실에 앉혀놓으니 죽을 라고 한다. 그래서 외근 나갔다. 자기 찾아왔는데. 아이고아이고~ 지성격에 맞아요! 돌아댕겨요! 사무실에 앉혀놓으니 죽을려고 그러죠! 밖에서 활동을 해야죠. 그것과 똑같다. 성격이 활달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좌선보다 염불이 훨씬 좋다.
번뇌가 많은 사람들, 일단 염불이 훨씬 낫다. 금요일 프로그램이 기가 막힌다. 심고를 하고 요가를 한 다음에 백배하고 잠깐 쉬고, 백배하고 잠깐 쉬고, 백배하고 잠깐 쉬고 염불하고 입정한다. 삼백 배 그 정도만 해도 단전호흡이 되게 되어있다. 열 명 하면 한명정도 안될 겁니다. 환자, 전혀 연습 안 되는 사람, 1명 정도는 안 되고, 9명은 아마 단전호흡 다 될 겁니다 .그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내가 만들어 놨다. 괜히 만든 거 아니다.
제가 자신 있게 말한다.
제가 원불교 출가하게 된 그것도 염불하고 입정해서 그때 초학자 때 진경에 들어갔잖아요. 아유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살 뻔 했네, 자기들만 하고 있었네. 별 생각이 다 드는 거다. 이러니까 산 속에서 살 수 있구나. 이러니까 모르는 재미가 이렇게 있었구나. 이러니까 얼굴이 좋아지는 구나 별 생각이 다 드는 거다.
얼마나 좋아.
옛날에 오직 했으면 노는 이 염불한다는 소리가 있다.
그런 소리 나오죠? 분한 일을 당해도 괴로운 일을 당해도 또 순경에도, 순경이 뭐죠? 일이 다 잘 풀려, 회사가 진급하고 좋은 남자 만나고, 새끼가 이쁘고 돈이 잘 벌리고 취직 잘되고 기분 좋아도 순경에 빠진다.
순경에 빠지면 보통 사람들은 ‘니나노 한다. 늴릴리야. 니나노~♬.’
잘 풀리면 니나노다.
이게요 왜 그러냐, 우리가 염불을 습관화 하지 않으면 옛날 것이 그대로 나온다. 풀려버린다. 풀리기만 해? 안 풀려도 옛날 것이 나온다. 한잔했던 사람은 그대로 한잔이요, 여행 잘댕기는 사람은 잘되면 그대로 여행 간다. 안 풀려도 옜날 것이 나온다.
그래서 염불은 저심 저불이 되게끔 단련해야 한다.
자보세요!
대종사님이 구도하실 때 들어보셨죠?
대종사님이 처음 주문한 거, 뭐한지 알아?
[일타래 일타 동공, 이타래 이타 동공] 이걸 처음으로 주문을 만들었다.
[우주심 적기적기] 이 주문을 당신이 알아서 했다.
정산 종사님도 주문을 알아서 했다. 처음에! 어릴 때 14살에!
20대 초반에 했다. 대종사님도
그때 알아서 주문했다. 뭔 소리야. 전생에 했다는 것이다. 전생에 했다는 것이여. 그게
아 우리 아버지가 어릴 때 보면 새벽에 나 자고 있었는데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생사에 도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의 도요, 하나는 사의 도라.’ 이렇게 하면서 경을 읽으세요! 우리 아버지가 어릴 때 그래~
그러면 자장가지~ 아버지 또 하셨구나! 얼마나 기가 막힌 교육이여!
제가 시디를 낸 것도 아버지 덕이다. 네가 누구한테 배운 적이 있나, 독경 같은 거~
어릴 때부터 들은 것이다. 어릴 때. 그것이 얼마나 큰 교육이냐. 이 말이여!
자식 잘되기를 바란다면 염불만 잘 해봐. 자식이 잘되.
맨 날 텔레비전만 틀어서 되냐. 그게
이 염불도 삼매가 있다.
오늘은 이걸 소개한다.
삼매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정이라는 뜻, 선정이란 뜻이다.
대종사님은 일행삼매 일상삼매라고 동,정간에 제시 해주셨다.
그런데 우리가 삼매를 떠나 일심이라고 말을 한다. 하나가 되 버렸다.
그래서 우리가 맨 처음에 이건 원기 71년도에 대산종사님께서 법문으로 내놓은 것이다.
선정 삼매라고 내놓으셨다. 선정 삼매란 이걸 말한다. 선을 할 때 정이 돼서 삼매가 되어버렸다. 딱! 정이 되어버렸다! 정이 되어버리면 몸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얼마나 좋겠어. 항상 이것 과 저것이 싸운다. 상대가 인식하면서 하나가 안 되니까 마음이 안정이 안 된다.
하나가 딱 되어 버렸다. 삼매가 하나가 된 것이다.
선을 통해서 삼매가 딱 된 것이다. 이것이 진경이다. 이때는 시간 공간을 초월해서 관념을 못한다. 이걸 바탕으로 의두가 들어가야 그대로 바로 밝아진다.
그래서 묵조선 다음에 의두를 해라. 간화선을 해라 그것이다.
묵조선을 한다는 것 은 단전호흡, 단전 주, 염불을 통해서 선정에 든다. 선정에 든다는 것은 일심이 돼서 원적 무별한 진경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바탕해서 의두 연마를 마치면, 의두를 붙이는 것이다. 공적 영지라. 텅 빈 속에서 영지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러면 수양하지 않은 사람이, 삼매에 들지 않는 사람이, 선정에 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깨달을 수 있냐. 법문 듣고 그럴 수 있어요, 근기가 높은 사람 육조대사 같은 양반은 그럴 수 있다. 보통 양반은 그렇지 않더라. 보통 양반은 반드시 수양이라는 것을 거쳐서 염불을 해야 한다. 경계 따라 마음만 대조한다고 되는 것 아니다. 경계 따라 마음만 대조한다고 해서 어떻게 진경에 들어가고, 공적 영지가 올라오겠어요. 그것은 아니다.
두 번째가 염불 삼매라. 염불을 하다보면 삼매에 들어갑니다. 희한하죠. 한 시간 해도 하나도 안 지친다. 삼매에 들면. 묘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좌선을 할 때 삼매가 안 되는 것은 뭐야. 앉아있는데 별놈의 생각이 다 난다. 가스 불 잠갔나, 어제 그 녀석이 나를 섭섭하게 했어. 온갖 번뇌가 나를 빼앗아가~
그런데 단전에 딱! 가면서 나중에는 단전도 놓아져버려! 그것이 삼매가 되버리거든
염불해요 염돈해요?
날마다 돈 생각하잖아요~ ‘돈돈돈돈~ 돈돈돈돈돈~♬’
날마다 어떻게 하면 돈 벌어볼까. 어떻게 하면 명예를 올려볼까 하고 있으니까, 염불을 해야 하는데 염돈을 하고 있으니까 돈에 마음이 뺏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염불을 하는 것이 죠! 염불! 그러니까 이것이 딱 삼매가 든다. 마음이 돈에 뺏기거나 다른 욕심에 뺏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삼매에 들어간는 거죠. 여러분 그러세요? 희한한 재주가 대단해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다른 생각들 별놈의 생각 다한다. 여러분 그러시죠?
능력들이 대단하다. 인간의 능력은.. 분명이 나무아미타불 딱 혼자 하고 있거든
남들은 진경에 든 것처럼 보이는데, 생각은 딴 데 가서 ‘영화를 꼭 봐야지.’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거든요. 대단해요! 그것은 삼매가 아니라! 따로 분리 되 놀고 있다 그 말이죠!
염불은 그대로 소리에 무위안락 , 소리와 내가 하나가 딱 된 것이다.
즉 온갖 번뇌가 모으고 모아서 포커스!
딱 초점을 맞추는데, 좌선을 어떻게 맞추느냐, 단전에 맞추는 것이다. 나중에는 단전에 심단, 염불은 처음에 소리를 집중하는데 나중에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소리는 있고 나중에 마음에 합일하는 것이다. 온갖 것이 있는데 하나의 초점에 맞춰지는 것이다. 소리라는 초점을 둔 것이다. 단전이라는 초점, 포커를 둔 것이다.
이해하시겠죠?
하나가 되 봐. 기가 막힌 재밌다. 하나가 되어버리면! 시간 가는지 모른다.
좌선도 염불도 그것만 그러냐?
독서도 그래. 독서삼매도 있다.
세 번째가 독서! 책을 읽으면 딱 하나가 될 때가 있다.
여러분도 그럴 때 있죠. 만화 볼 때 무협지 볼 때. 그때가 독서삼매가 되지?
경전을 볼 때라던가. 부처님의 경을 볼 때 5분 후에 잠들지 말고 삼매를 해라.
이 삼매가 되면 나중에 경계가 있어도 툭 솟아 올라온다. 삼매란 힘이다! 무서운 힘이 있다. 딱 삼매가 되면, 이 육식 칠식 팔식, 삼매가 되면 팔식까지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열려버린다. 염불도 똑같다. 염불도 차원이 다르다. 보통 육식에서 7식을 왔다 간다. 근데 염불을 하면 영지가 열린다. 그러니까 거기에 합일이 되 버린다. 그러니까 나중에 탁 생각이 난다. 염불만 해도, 돈불하고는 염돈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툭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그다음 사상 선이다.
사상 선이라는 것은 만덕산 훈련 가면 한번 씩 들어보셨죠? 사상선이다. 일속에서 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 승산님 보면 기가 막히다. 나이가 분명히 7학년이 넘었는데 같이 수계농원에서 일했을 때도 만덕산에서 일했을 때도 분명히 밭을 매는데, 우리는 요만큼 했는데, 저 양반은 더 많이 해요.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넘었는데, 그대로 하나가 되었다.
물론 숙달도 되어있죠, 요령도 있죠. 경험이 있죠. 그렇지만 하나가 되어서! 우리는 이만큼 하고 쉬었다 해요. 그러는데 승산님은 쉴게 뭐있어. 계속 하시고 더 많이 하시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상선을 그대로 선력을 얻으셨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가 없다. 그것이다.
체력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다음 해탈 삼매라. 해탈 삼매는 마음에서 해탈이라는 것은 다 풀려버렸다는 것이다.
얽힌 번뇌, 얽힌 일들이 싹 풀려버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해? 그것이 자성 자리에 딱 들어가면 해탈이 된다. 걸리고 막히는 게 없는 한가한 그 자리다. 툭툭 다 풀린다. 그 자리에 가면 툭 풀려버린다.
경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경계가 와도 그 자리에 가면 툭툭툭 다 풀려난다. 이게 해탈 삼매다.
그 다음에 선보 삼매라 한다. 여섯 번 째!
선보라는 것은 내가 걸어. 걷는데, 선보가 되는 것이다.
선보. 걸음 보자이다. 걸음을 걷는데 헛생각으로 걷는 게 아니라 딱! 그대로 엄지발가락에 기운을 주고 걷는 것이다. 차근차근. 이렇게 되면 이것도 하나의 선이 된다. 몸이 아픈 환자들은 좌선보다도 선보가 좋습니다. 선보가 훨씬 좋을 수 있다. 옛날에 대산 종사님이 아프실 때 양주에서 걸망 매고 지긋이 산을 선보 하셨다. 그때 주문도 떠올리고, 선보를 하면서 정신이 맑아지니까 툭툭 솟아오르는 것이다. 와선 삼매라 한다. 누워서 마음 놓고 자버린다. 단전에 기운을 주하고 호흡을 하는데, 좋지. 그렇게 주무세요? 그렇게 주무세요. 좋습니다.
뻘 생각 하고, 어문 거 보다 자니까 꿈속에서 어문거 한다. 머리 아프잖아. 안 피곤하잖아.
저는 꿈이 별로 없다. 아주 몸이 약할 때 만 꿈을 꿔요. 꿈을 꾸었는데 제가 모르는가 몰라도 대게 거의 꿈을 꾼다고 그래. 심리학에서. 거의 꿈이 없다.
그래서 오베이레이 라고 해서, 꿈에서도 화두가 걸려야 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꿈에서도 선을 해야 한다고 한다. 달라요. 잠 하나도,
여섯 번째가 낙고삼매라고 한다.
락고 삼매는 뭐냐면 고통이 왔는데 그 속에서 삼매를 얻는다. 예를 들어서 수운대신사가 사형이 되었어도 삼매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것 못하겠죠?
예수님, 못을 박혔는데 그게 낙고삼매다. 이차돈도 목이 베었죠. 이게 낙고삼매다. 어떻게 가능한가? 육신은 아프지. 근데 마음의 실체 자리에서는 아프고 말 것이 없다. 자성 자리에 탁 들어간다. 그 안에 삼매가 있다. 육신의 고통에서도 삼매가 있고.
정산 종사님이 암에 걸리셔서, 얼마나 아프셨는지 뭐라고 표현을 하셨나면 바늘을 쌈지로 지어가지고, 날카로운 부위에 쿡쿡 찌른 것과 같다. 암 걸리신 분을 만나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화색이 돈다. 아프시다면서 꾀병 아닙니까? 했다. 정산 종사님이 육신이 아프지 마음이 아프냐? 이런 것도 낙고삼매다. 여러분 어떠세요? 저 부터도 침 하나만 들어오면 어! 아파 죽겠다고 그러는데~
그 다음 감로 삼매라고 한다.
이건 뭐냐면 달감자에 이슬로자라고 한다. 우리가 선을 하면 감로수가 나온다고 하죠?
선을 할 때 그 감로수 그런 삼매도 되고, 아니면 수많은 경계 속에서 우리가 뭐랄까. 경계들을 탁탁 넘길 때 그 느끼는 게 있다. 경계를 당해서 어떤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학대하고, 어떤 사람은 경계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오히려 아! 내가 역시 부처구나 확인하는 사람도 있죠. 역시 내가 공부가 되가고 있구나 확인한다.
열 번째가 설법 삼매이다.
법문을 할 때도 삼매가 되는 것이다. 제가 때로는 법문 할 때 삼매가 될 때가 있다. 약간 헷가닥 해야죠. 제가 삼매가 될 때는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이 시간 갈 줄 몰라요, 저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대로 하나가 된다. 나와 대중이 말하는 나와 청중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문 들을 때 그때 좌선하면서 눈감고 폼 잡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불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법문을 할 때 그 사람의 눈과 코와 입을 바라보는 것이다. 어디 가서든 마찬가지다. 누구와 말할 때 눈감고 앉아 보세요. 기가 막힌 일 아니겠어요?
그것은 아주 일심을 실지 불공을 못하고 있는 내용이 된다.
염불법 할 것도 말 것도 없네.
본문은 해야지.
팍!팍!팍! 넘어가겠습니다.
염불 법은 염불이다.
염불의 요지.
염불이라 함은 천만가지로 흩어진 정신을 일념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법이다. 천만가지 흩어진 온갖 번뇌에 생각을 오직 일념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순역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이다. 순경! 일이 잘 풀려서 교만해지는 것이다. 편안해지고 나태한 것이다. 그때도 염불을 통해서 또는 역경을 통해서 화가 나고 안 풀리고 답답하고 미치겠다. 그때도 염불을 통해서 마음을 안정시킨다. 동정 간에 다 필요한 것이다. 정시만 아니라 동시도 필요하다.
그래서 염불의 문구인 나무아미타불을 정해 놨다. 우리는 그걸 정해놨다.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이고, 아미타는 무량수라는 뜻이고, 불이라는 것은 각자를 뜻하는 것이다. 자기 본래를 회복했다. 깨닫는다 그 말이여! 자기 자성자리에. 무량수라는 것은 영생을 말하는 것은 불생불멸을 말한다. 참 자성자리를 말한다. 그 자리에 귀의한다.
그래서 여기 말로 무량 수각에 귀의한다는 바, 과거에는 부처님의 실력에 의해서 서방 정토의 극락을 원하며, 미타 극락을 염송 했다. 이건 좋다. 이것은 타력적인 것이다. 뭐냐면, 서방 정토는 중국에서, 인도도 서방이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사실 그 뜻이 아니라 서방이라는 것은 온전한 정신을 말한다. 맑은 기운. 그걸 서방이라고 해. 시원한 기운. 서늘한 기운.
정토라는 것은 세상이죠. 깨끗한 토양. 미타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극락을 원하며, 우리 절에 가면 막 있잖아요. 하잖아요. 그것이 다 그것이다 .일종의
그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만 해도 성불할 수 있다. 거기까지만 해도 사실은
그 정도로 위력이 있다. 여기서 내가 제임스, 제임스라고 하는데 제임스가 나한테 위력을 얼마나 주겠어. 근데 내가 ‘부처님, 부처님’해보세요. 그럼 부처님이 나에게 위력을 주지. 똑같이 불러도 누구를 부르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바로 자심 미타를 발견하여, 자력적인 염불을 말하는 것이다. 자성극락으로 돌아가기를 목적하나니, 그게 무슨 소리냐면 내가 부처다. 이 우주가 다 부처라는 생각을 가지고 염불해라. 그렇게 하세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것은 내가 부처입니다. 우주가 다 부처입니다. 그 소리다.
깨닫지 못했어도 할 수 있다. 꼭 내가 부처요, 우주가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못 깨달아도 그 뜻이라는 것을 믿고 그것에 의지해서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염불이라는 것은, 호심장이라고 동기 상응이라고 한다.
내가 부처님을 부르잖아. 부처님의 기운이 응해지는 것이다. 돈돈 하면 그 기운이 응해진다.
돈 어디 가버려, 부처님이 돈까지 갖고 온다고 한다. 좀 늦게 줘서 탈이다.
그 가운데 소소 영령하여 매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각이다. 자심미타다.
내 마음, 소소한 공적영지를 말하고 있다. 진공 묘유를 말하고 있다. 지금. 그대로. 내 마음이, 공적 영지의 진공 묘유다. 그걸 말하고 있다.
우리의 자성은 원래 청정하여 죄복이 돈공하고 고뇌가 역멸하였나니 이것이 요요하여 변함이 없는 자성 극락이다. 극락은 좋은 것이 극락인가? 고와 락을 떠난 자리. 고와 락을 떠나서 고와 락을 다 포함한 자리를 극락이라고 한다.
이해하시겠어요?
락이 좋다가 아니라, 고도 낙도 떠나버렸다. 그 속에 다 포함한다. 이것이 극락이다. 그때 고와 락을 어떻게해요? 사람들은 낙이 오면 ‘오메~좋은거’ 고가 오면 ‘아우, 죽겄네’ 극락이라는 것은 아이고 죽겄네, 오메 좋은 것을 넘어서서 ‘아~ 내가 좋구나. 아~내가 괴롭구나’하고 고와 락이 분리 된다. 분리 되서 바라볼 수 있다. 이게 극락 자리다. 느끼지 못하는 게 극락이 아니라.
이 마음이라는 것이 그러거든, 육신이 즐겁고 괴롭고가 있다. 근데 마음이라는 것은 실제 본래의 마음, 자성 자리에는 사실은 고와 락이 없다. 심지에는 고도 없나니, 락도 없나니, 요란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그름도 없 즐거움도 없고 더럽고 깨끗한 것도 없다. 그 자리는! 그런데 없으면서 다 있다는 말이다.
없는 자리를 우리가 알기위해서는 바로 없다고 하는 그 자리.
이 마음자리에는 그 속에 없습니다. 생각하고 그리고 소리에 집중하는 그것이 염불이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이 먼저 이치를 알아서 생멸 없는 각자의 마음에 근본하고, 거래가
없는 한생각을 대조하여. 생멸과 거래라~
천만 가지로 흩어지는 정신을 오직 미타이념에 그치며 순역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
흩어지는 정신,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 이것을 어디에 돌아와?
무위 안락의 지경에 돌아오게 하래, 돌아가게 하면 안 되. 돌아온다는 것은 뭐여?
내 본래 자리에 온다. 그 말이다. 내 본래 자리는 무위자리다. 함이 없다. 그대로 놓아 버리면 된다. 그런데 못 놓쳐 우리가. 유위의 세계에서 사니까.
우리 대적공실에도 나오죠? 정산종사 법문에
무위유위..
함이 없는 가운데 위가 있어야 한다.
똑같다. 염불도, 본래 무위안락이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본래 진공 묘유가 무위 안락이다. 원래 그 자리가.
방법.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
첫째는 뭐냐 자세를 바르게 하고 기운을 안정하며. 기운이란 소리가 있다. 정기라고 한다.
바른 기. 몸을 흔들거나 경동하지 말 것이고, 아까 호겸교우가 이야기 참 잘했다. 우리가 번뇌에 기본이 ‘아이고, 나는 많아서 번뇌가 많아서 염불해야겠다.’ 좋아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번뇌를 먼저 안 일으키는 것이다. 번뇌를 안 일으키는데 가장 좋은 묘약이 있어. 이게 무엇인지 아세요? 욕심을 놓고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그 번뇌는 욕심 때문에 기어 나오는 것이다.
서원을 세우면, 신이 서버리면, 그러면 번뇌의 80%가 사라진다.
여러분들 가지고 있는 번뇌의 80%가 염불 할 줄 몰라도, 좌선 할 줄 몰라도, 염불 안 해봤어도 번뇌의 80%가 사라진다. 아웃.
그런데, 서원이 없어서 욕심이 드글드글 하고, 신이 없어서 이럴까 저럴까 하고, 아니야 가치가. 이것보다 현실적으로 이게 가치 있어~하고 이 신이 흔들리면 그 속에서 번뇌가 무한대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놓고 그걸 잠재운다고?
참. 아니 어떤 놈이, 나한테 그런다. 교무님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마음공부를 해야겠어요.
교무님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나한테 신이 없으니 딴생각 하면서 마음공부 한다고 하지.
신만 있으면 그 마음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그게 번뇌다. 계교거든, 대종사님의 진리 교법 이 스승 회상에 대한 신이 서버리면, 뭐가 들어와? 신(信)=정(定)이다.
신은 일정심이다. 곧 정이 된다. 염불 안 해도 정이 된다. 정이되면 정이되. 정정이라고 한다. 정동정이라고 한다.
즉 마음이 딱 신의 마음이 정해버리면 고정되면 고요해진다.
번뇌 자체가 없어진다. 사람이 심플해진다. 순수해진다. 잔머리 그만 써도 된다.
아따 사람들이 잔머리를 많이 쓴다. 뭐하러 에너지를 쓰나. 그걸 해가지고 해결이나 되면 몰라. 해결도 안 될 것을 그 놈의 욕심 놓지 못해서 계속 고민하고 오늘도 고민, 내일도 고민, 아직 안풀렸어, 계속해봐 풀리는가~
그럼 뭘로 풀리는가?
서원으로 풀리는 것이고 신으로 풀리고, 스승의 지도에 풀리는 것이다. 아니면 자기의 자성 자리에 솟아올라야 풀리고. 그럼 훈련을 나던가 해야지, 혼자 앉아가지고 욕심 딱 갖다놓고
계속 그걸 조아리고 있어요?
쓰레기 뭣하러 버리면서 계속 주우면서 ‘이놈의 쓰레기 아이고 죽겄네’ 그래. 안 버리면 되잖아요. 쓰레기를. 똑같은 이치거든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래서 수양을 하기 전에 먼저 중요한 것이 신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원력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삶의 방향과 가치가 타겟이, 아까 나는 개인의 기쁨을 우선으로 세워놓고 원불교는 적당하게 유용하게 영혼을 즐기는데, 내 영혼을 맑히는데 한번 씩 적셔주자. 이정도의 생각은 번뇌가 솟아오르게 되어있다. 탁 정해버리세요! 기가 막힌다.
특신이 되면, 성성식이 내려진다. 하늘에서
특신이 된다는 것은 서원과 원력이 맞아 떨어진다. 그러면 그 삶은 기가 막힌다. 그 사람은 틀리다.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시간 쓰는게 다르고 돈 쓰는게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진다.
그래 놓고 이제 염불, 그래도 번뇌가 있다. 과거에 뿌려 놓은 게 있고 욕심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게 아니고, 습관도 있는 것이고, 육신을 갖으면서 요구되는 것도 있고 한다.
그러니까 염불이 필요하다. 그런데 몸을 흔들거나 경동, 경동이라는 것은 경거망동을 말한다. 경거망동 하지 말아라. 잽싸게 서두르지 말고 여유 있게 한다.
두 번째로 음성을 적당히 자기 기운에 맞게 해라.
대종사님께서 표현을 기가 막히게 한다. 좁쌀 아시죠? 좁쌀? 좁쌀이 뭐야? 조를 말하는가. 째깐한 조가 있다. 조 알죠? 차조, 매조 조가 두 종류다.
알뜰한 염불 한마디가, 좁쌀만한 영단이 뭉친다.
좁쌀만한 영단이 뭉친다. 불보살들은 이 영단으로 세계를 주유할 수 있다. 영단은 밝게 보는 눈을 말한다. 보여 알아서, 불보살들은 세계를 비추고도 남을 영단이다. 알뜰한 염불 한마디가 그렇게 된다.
자. 세 번째.
일성에 집주해라. 일념을 챙겨서 일념과 음성을 같이 연속되게 해라.
무슨 얘긴지 알겠죠?
마음과 생각을 일치 시켜라. 소리를. 소리와 마음을 일치 시켜라.
좌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좌선할 때도 마음이 어디 가 있어? 단전에 있다. 호흡이 어디가 있어. 단전에 있어. 호흡도 단전에 있어, 마음도 단전에 있어, 기운도 단전에 있다. 똑같다.염불 할 때도 소리와 생각을 일치 시키는 것이다. 소리에 마음이 가 있다 이 말이다.
마음에 소리가 가있다. 그 말이다.
그런데 소리는 소리고, 마음은 딴데 가 있잖아요. 능력이 대단하다. 일분이면 생각을 몇 가지를 하는 줄 아나. 얼마나 능력이 좋은지~ 중생일수록 그 능력이 뛰어 납니다. 대단한 능력이다. 한 시간에 어떤 사람은 만 가지를 생각한다. 대단하다.
그렇게 다양하게 생각해서 발명이라도 많이 하면 괜찮은데 발명도 분별도 안 될 분별 망상이다. 했던 분별 또 하고, 오늘도 했던 것, 어제도 했던 것 또 하고, 십년 전에 했던 것 또 하고 자빠졌다. 애쓴다.
네 번째, 염불을 할 때는 천만 생각을 다 놓아버려라. 무위심경을 놔버려라.
방하 놓아버려라! 그리고 한가한 마음과 무위의 심경으로, 염불 할 때 기도의 심경과 서원을 챙기는 마음이 같이 되면 훨씬 좋다. 놔버리는 바탕에 딱 챙기는 것이다. 놓되 딱 잡는 것이다.
마음 가운데 외불을 구하고, 미타 색상을 상상하나, 극락잡념을 그러려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 그래도 사심 잡념보다 낫지 않습니까? 극락잡념을 그리는 것이~ 사심 잡념보다 낫죠.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한 단계 더 들어간다. 보통사람은 사심잡념하고 어중간한 공부인은 극락잡념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것마저도 놔버려라. 더 들어가라. 아로 생긴 병통이다.
성가 있잖아요? 병통이라~
다섯 번째 염주로써 또는 목탁이나 북으로써 운곡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운곡이 심플하고 반복되니 이것이 훨씬 좋다. 참, 무섭습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자식도 잃어버리고, 자기 집도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근데 심고 시간이 되면 딱 심고 올린다. 그리고 나무아미타불 외운다. 일원상 서원문 외운다. 그리고 가요도 외운다. 그래서 내가 그때 알았다. 그 양반이 하는 걸 보면서 무섭구나. 반복이라는 것이. 특히 음악성을 갖다 가미하면 무섭다. 제가 이번에 성가를 냈지만 노래가 아니다. 그 가사를 보면 기가 막힌 법문이다. 법문을 말로 하는 것보다 음악을 넣으니까 얼마나 좋아. 그것이다. 그것이 사실 노래지만 독경이나 마찬가지다. 음곡을 맞춘 것이다. 음곡을!
필요하다.
그 다음에 동시에 어떻게 할 것인가.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잡념이 마음을 괴롭게 하거든 염불로써 대치해라. 잠깐 멈춰서 대치하라! 염불을 뭐라고 하냐면 대치법이라고 한다.
대치라는 것은 막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것을 이 생각 갔다 놓으면 이 생각이 없어지죠! 뭔말인지 알겠죠. 누가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 돈 갚으라고 하면 딴말 하는 사람.
대치라는 것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부처님으로 갖다 놓은 것이다. 딴 소리 하는 것이다. 딴 데가 놓은 것이다. 그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건 번뇌 망상이다. 번뇌 망상 해봤자 무엇하냐? 차라리 부처님이나 생각하고 부처님으로 말하라. 이게 대치법이다.
대치법이 있고 대조법이 있다. 뭣과 뭣을 대조한다고 한다. 자성 반조, 반조라고도 하고 대조라고 한다. 내 본래 마음과 분별심을 대조한다. 여기서 염불은 대치이면서 대조인데 대치법이다. 번뇌 망상은 있는데 번뇌 망상을 해결하라고 하는 데 번뇌 망상을 놔둬버려! 그리고 소리에 갖다가 염불이라는 것에 갖다가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야에다가 관심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라. 싸고 짊어지고 계속 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파들어갈 수도 있다, 그것은 뭐냐? 의두를 파 들어가면 된다. 번뇌는 파 들어가도 안 된다. 뿌리도 없는 것이 별 볼일이 없다.
그런데, 도리어 일하는 정신에 통일이 되지 않으면 중지해라.
일곱 번째, 분한 일을 당하여도 탐심이 일어나도, 순경에 끌릴 때도, 역경에 끌릴 때도 염불로써 안정 시켜라. 그래서 염불 일성, 능히 백천사마를 항복 받을 수 있다.
부처님에 대한 신이 없거나, 염불에 대한 확신이나 공덕을 잘 모르면 안하게 되어있다. 신이 있다면 백천 삼매가 된다. 단순히 수양만이 아니다. 신앙이 들어가 있다. 기운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다. 위력이라는 게 들어가 있다.
대중없이 입으로만 하면 효과 없다. 근데 일념으로 하면 효과 있다.
변의품에서는 얼마나 멍청한가 즉심시불이라고 하는데 짚신 세벌이라고 알아들은 거잖아. 여기 있는 사람보다 그 사람이 제일 멍청했다. 더 중요한 건 일념의 대중이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정성으로 하니까 툭 열려 버린 것이다.
제가 단양에 구인사를 갔었다. 또 제가 그냥 갈 수 없잖아요. 갔는데. 제가 노인 스님을 탁 잡아놓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 어떻게 해요.’ 또 보살을 잡아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 안에 독경 했던 데를 가봤다. 이게 주로 염불선이다.
저녁 내내 기독교 통성 기도하듯이 염불 한 것이다 .무식한 사람들이 이박삼일 잠을 안자고 해요. 영지가 육식 칠식 팔식 하는데 툭 열려 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겁나게 위력이 있다. 서가 모니 부처님이 위력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워낙 똑똑해서 머리로만 자꾸 하려고 하는데, 단순 무식하게 할 필요가 있다.
자 염불의 공덕 나온다. 좌선과 같다.
극락을 수용한다. 먼저 좌선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표와 리의 관계다. 겉 표자 속리자.
염불로써 산란한 정신을 대치하고, 염불은 주로 낮이나 저녁에 한다. 새벽에나 밤늦게는 좌선을 하고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뭔 대패 이렇게 설명했죠. 어떤 사람은 빗자루 질은 염불이고 걸레질은 좌선이다. 그렇게 말한다. 괜찮다, 빗자루로 쓸잖아요? 그 다음에 걸레질 하잖아요. 그렇게도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맨 뒤에가 참 중요하다!
공부법을 결정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째 환경을 갖춘다. 아파트 옆 사람이 시끄러 죽겠다고 하는데 혼자 나무아미타불하면 은혜가 되겠어요. 자기 혼자 하면 되겠어요? 옆 사람은 성질나는데, 그때는 가만히 있거나 조용히 해야죠. 이사를 가던가 방음장치를 하던가 뭔 수를 내야죠. 목탁을 작은 것으로 하던가 목탁이 소리 안나게 꽉! 잡고 하던가 무슨 수를 내야지, 다른 사람 피해주면서 자신이 성불 할 수 있겠어요? 당시의 환경을 관찰하라.
두 번째 각자의 심경을 대조해라. 자기의 심경을.
심경을 대조해서 염불할 것인지 좌선을 할 것인지 기도를 할 것인지
미국 가서 제가 그렇게 필라델피아 선학 대학에서 말했다.
여러분 경계 왔을 때 어떻게 대치할 것입니다. 정전에 보면 분한일을 당했는데... 염불 법에서 염불하고 기도에서는 기도하라고하고, 일상수행의 요법을 하는 사람들은 경계가 왔다고 찬스라고 하고 마음을 대조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서원 대조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일기 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시의 상황에 맞게 자기의 분야를 찾아서 하면 된다. 꼭 지가 맛보면 그게 단 줄 알고, 그래서 각종 각파가 분리되는 것이다.
염불하고 재미보니까 염불만 말하고 있고, 좌선해서 재미를 보니 좌선만 말하고 있고, 마음 대조하면 그게 재미있으니까 그 말하고 착각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공부법이라고 하는 것은 다 삼학의 병진이 가장 효과적이다.
대종사님이 미워한 사람이 뭐냐면, 조각 도인이었다. 즉, 삼학을 편수하는 사람을 미워했다.
혼냈다, 특히 작업시간에 구석 태기에서 염불하고 있으면 혼내고, 그러고 더 손해를 본다. 주위한테 미움 받아서 염불 좀 한다고 성불할 거 같아요? 아니죠. 그래서 때에 맞게 운용하면 서로 연속이 된다. 염불과 좌선이. 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도 마찬가지고 무시선도 마찬가지다. 쉽게 큰 정력을 얻을 수 있다.
자 질문.
황원공: 염불을 듣는 공덕과 하는 공덕에 대해 스스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궁금합니다.
교무님 : 하는 것이 낫겠죠. 근데 듣는 공덕도 큽니다.
어떤 양반이 일생에 복 지은 것이 하나도 없고 부처님 병을 겨를 것도 없는데, 비 피하려고 처마 밑에 있는데 처음으로 독경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 듣고 천도 된 사람도 있다.
죽어서 염라대왕이 너 그랬냐~ 그것이 인연이 되어가지고~ 대종사님이 쓴 예화에 나온다.
제가 CD를 드렸잖아요· CD를 듣는 것도 듣는 것이 생각 없이 듣겠습니까. 그것이 다 연결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도 하고, 들어서도 하고, 내가 해보기도 하고, 다 활용하면 좋다.
오선허 : 염불을 하면 낮에나 외경에 하면 좋다고 하는데, 저는 치심이 강해서 소리를 낮에서 잘 못 하겠더라구요. 소리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안내다 보니까 수긍이 안 되고, 그런데 어떻게 할까요.
교무님 : 소리를 내면 되지. 낮에 법당에 와 바라. 대종사님이 이쁘다고 한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지하 문화원에서 혼자 해봐. 일원상이 너 이쁘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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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면 되는 염불! 감사합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제목 날짜를 950420으로 바꿔주시면 더욱 감솨~
감사합니다~!
염불은 신을 세우고 단순무식하게 하라는 교무님 말씀, 잘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