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 서울에서 선배시민대회에 참석하고 장충체육관에서 나와, 인천으로 가는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종로3가에서 환승하여 다시 신도림에서 환승하고 인천 주안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동생집으로
이동하였다. 복지관 관계자에게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나이 탓일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것이 좋기도 하였지만 또 사람 뭘로 보는거야 왕년에 서울에서
잘 나갔던 난데 ~~~ 결혼해서 맘에 들지 않았던 인천에서 살다가 신의 한수로 시골로 내려오긴 했지만
아직 정신을 맑아. 약간의 반발심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종로 . 청계천 . 을지로 . 충무로 모두 내가 좀
지나 다녔던 곳들이기도 했다. 노량진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곳을 지날때는 오래전의 기억들이 살짝 나를
붙잡기도 했다.
다음 날 6개월전 일산에서 교통사고로 목이 부러진 친구에게 병문안을 갔다.
다행히 친구의 남편께서 데리러 오셔서 편히 병원까지 갈 수 있었다. 가는 동안 장대비가 쏟아지고 김포평야
조금 못간 곳에 정말 넓고 새로 지은듯한 병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친구는 조수석에 앉아 있다 변을 당했는데,
앞에서 온 차에 치어서 목이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치아가 많이 손상되는 대형사고 였다고 한다.
수술후에 5일만에 깨어 났다고 하니 가족들의 심려가 얼마나 컷을까를 짐작 할 수 가 있었다.
2개월 치료후에 치료비는 4600만원이 나왔고 간병비는 하루에 167000원씩 계산을 해야 했다고 한다.
치료비는 가해 차에서 부담하였지만 간병비는 오로지 환자의 몫이라 많이 힘들었다고.
인천 재활 병원으로 옮긴지도 4개월! , 2개월후에는 이 곳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걷지 못했고
대신 휠췌어가 그녀의 발이 되어 주었다. 손끝이 저리고 복부에는 아직 뭔가 한무더기 들어있는듯
더부룩해 보였는데 아프지는 않다고 했다. 불편한곳은 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딱히 꼬집어 내기
어렵다고 했다. 남편에게 수지침 재료등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다음 면회때는 꼭 가져다 달라고 당부한다.
씩씩한 친구는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배변도 원활하다고 했다. 두어번 그 친구를 안아 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치료비 1억원은 들어갔네 했더니 친구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들은것으로 대략적인 값을 추산해보니 1억~~~ 아! 한번쯤 만져 본 돈일까 싶었다.
숫자로는 보았을법한 돈 1억.
사람들은 말한다. 그깟 돈이 문제냐고 .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지 . 그러나 사람들에게 과연 1억이 있기나 한가?!.
우리 마눌 죽어가니 돈좀 빌려줘 하면 모두 冷冷하게 도망가는 그 웬수 같은 돈!! ,
친구는 한참 설명을 한다. 병원에 들어온김에 모두 고치고 갈거라고. 뭐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또 한참을 이야기 하다보니 환자는 사라지고, 서로의 이야기에 열중해진다.
돌아가야 될 시간! . 한번 더 친구를 안아 주고 .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라. 남편도 생각해야지. 그만하면 나머지는 통원 치료도 하고 수지침 . 이침 다
배웠으니 써먹고, 집안일 하는것도 재활치료다. 그만 집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치료해"
돌아오는 길은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퇴근차들로 도로는 금방 밀려 버렸다.
머쓱하게 있기가 어려워 이런말 저런 말 끝에 꼭 친구랑 속리산에서 16km 떨어진곳, 보은 저희집에 한번
오세요로 인사했다.
편리한 만큼 위험한 것들은 너무 많다. 그리고 더 위험한것은 마음이다. 약해진 환자의 마음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오늘도 기도하면서..... 남은 치료비는 또 얼마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