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회의 뒤풀이 후유증으로 심하게 고생은 하였지만 다음날 석곡 선생님묘에 가본다고 하기에 무거운(?)몸을 이끌고 마음은 가볍게 길을 나섰습니다.
마을 입구 인면암각화에 선명히 새겨진 석리가 반겨줍니다. 석곡 선생님이 서당을 열었고 현재 후손이 살고 있는 동네라고 하네요 ..
이 마을 표시석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데 인면암각화로 판정되고 문화재 지정을 받을 무렵 이 큰돌이 어디론가 휭~~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신문에 기사도 내고 정신없이 찾아다녀도 도무지 행방을 몰랐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마을 표시석으로 떡하니 서있더라는 것이지요 훼손이 되었으니 문화재 지정은 물 건너 갔구요
마을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석곡 선생님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 있습니다. 석곡 선생님 손주 며느리라고 하시던데..짧은 길 올라가면서 숨이 차신지 많이 힘들어 하시네요..
집 마당에 맷돌과 방아돌
이렇게 만든 메주는 처음 봅니다..
보관소 문을 여니 목판이 차곡 차곡 쌓여져 있습니다. 총 366장이었는데 6장을 분실하였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갔을때는 못본, 석곡 선생님이 사용하던 약재 찧는 절구라고 하네요
마을 길가에서 보이는 심상치 않은 돌.. 고인돌?
집앞에 꾸며 놓은 돌에 선명히 보이는 성혈.. 예전에는 신성한 돌로 여겨 대접좀 받았겠지요...
나무가 석화된 규화석이라고 합니다.
마을 뒤 밭에 가보니 몇개의 성혈자국이 더 있네요
마을에서 조금 올라가니 선돌이 있는데 3년에 한번씩 정월에 동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우리를 보고 따라오신 동네 어르신, 이 땅의 주인이라고 하시며 석곡 선생님 이야기부터 동네 이야기 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석곡 선생님 묘로 가는 길에 신정1리 염장마을 입구에 선돌도 있습니다. 본래 염전들 앞 시내에 있던 것을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단면형태는 부정형의 5각형으로 높이 240㎝, 둘레는 147㎝정도이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집니다.
차로 계속 올라갈수도 있었지만 날씨가 좋아 걸어가기로.. 흡사 흥덕왕릉 소나무군이 생각나는 숲을 지나니 석곡 이규준 선생님의 묘가 나타납니다.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양지 바른곳에서 간담회.. 교수님하고 오니 배울게 참 많습니다. 포항지역에서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었는데 왜 모르고 지냈을까요?
대화에서 느낀점 중의 하나 제자를 잘 키워야 합니다.....ㅋㅋㅋㅋ
간담회 마치고 소봉대로 이동.. 이 길이 저길 같고 저길이 이길 같고 감포 양포 이쪽길은 왜 이리 헷갈리는지...
올라가는 길과 올라서서 바라본 소봉대는 많은 쓰레기들 때문에 참 지저분....그래도 바다는 맑습니다.. 낚시 하시는 분들 신경좀 쓰셔야 할듯....
이곳 저곳에 쓰레기들 많은데.. 일부러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강선생님 홀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요???
소봉대 도착하니 홍길동처럼 짠~ 나타나서 열심히 설명하시는 서선생님
마음은 20대 몸은 비밀????
돌아오는길에 잠시 둘러본 신계리 고인돌
고인돌 보고 있는데 주민이 오셔서 위에 있는 밭에 기와 와 도자기 파편이 나온다고 하시네요. 몇분동안 둘러보았는데도 몇개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 대곡리 용수골의 비각 비각은 정면1칸 측면1칸으로 지붕과 기둥은 모루돌을 가공하여 만든것이라고 합니다.
지붕은 비석의 가첨석과 유사한 모습이며 지붕에 네 모퉁이에 배흘림기둥 을 받쳤습니다. 남편을 위해 호랑이와 맨몸으로 사투를 벌였다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용감한 전설이...
그냥가기 아쉬운지 뒷산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는 서선생님..
문길에 와서 참 좋은구경 많이 합니다. 시간내어 주신 문길 선생님들과 신상구 교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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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 내키는 곳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당군
첫댓글 아쉽네요...함께 못해 죄송.... 다음에 한번 같이가요
다른 좋은데 다녀 오셨겠지요..^^
승호동기님 생생 기사 고맙습니다.
글 쓰는 재주가 없어 죄송할 뿐입니다.
흐미 소봉대까정 오셨는데 어찌 지는 아니 부르셨는지요?^^ 아무튼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