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시와산문 제34집 원고
말줄임표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총 칼로 막아버린 진실
구릿빛 입술에 낀
침묵의 말들은
소통되지 않는 문장부호다
반란과 항쟁,
희생과 학살 사이를 떠돌다
말줄임표로 남은 다른 열망의 분출,
잘못 끼운 첫 단추
다름이 틀림이 된 왜곡된 역사
허공을 떠돌다 차갑게 식어
굳어버린 침묵의 70여 년
줄줄이 엮인 나, 그리고 너,
벙어리 된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사흘 밤낮 불꽃으로 타오른
백이십오 개의 장작더미,
점 여섯 개로 남은
만성리 골짜기 묘비명이다.
上善若水
잔잔한 강물 위로
세상에서 밀려난 돌멩이 하나
첨벙, 뛰어내린다
순간 부서진 거울이 바르르 떤다
가슴으로 돌멩이를 껴안은 강물
파문의 중심이 잠시 들썩이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흐르거나 고여있거나
변함없는 물결은 無等(무등)이다
세상의 모든 허물을 덮고
다툼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물
첨벙 튀어 올랐다가 금방 내려앉아
고요함으로 키를 맞추는
上善若水(상선약수)
생을 살다 보면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제 빛깔로 칠해진 한 생을 살다 가는 것,
잘난 체하지 말고
기어오르려 바둥대지 말고
바닥의 찌꺼기로 남아도
넉넉함으로 어울리며 사는 삶
쌓아둔 견고한 벽을 밀어내고
잔잔한 마음으로
키를 맞추고 함께 사는 세상
이순의 뒤안길을 걸으며
점점 점으로 작아지자
느긋하게 작아져 더 단단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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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善若水 :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최상의 삶은 물과 같은 것이다'라는 의미.
코로나-19 팬데믹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전염병의 공포가 한 해를 넘어서고 있다. 이웃 간의 소통도 줄고 애경사에도 발길을 끊었다. 사람 노릇 하기 힘든 시기이다. 인류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전염병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고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다. 아테네와 로마 제국의 멸망, 중세 봉건 체제를 무너뜨린 흑사병, 스페인의 남미 잉카제국 정복, 20세기 인류 최악의 전염병 ‘스페인독감’은 5천만 명을 넘게 죽였다. 1차 세계대전 희생자보다 더 많다. 한국에서도 십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무오년 독감이 그것이다.
일정한 주기로 나타나는 팬데믹의 공포,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 진행 중이다. 심각한 질병 신종 전염병 SARS, 국경이 무너진 세계적 확산 질병, 여러 신종 전염병은 인류가 만들어 낸 것이다. 자연생태계의 무분별한 훼손과 지구 온난화는 풍토병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것은 첨단 과학 문명도 어찌할 수 없는 21세기 위협이며 신의 경고이다. 세계가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여행제한 봉쇄 조치로 세계 경제적 불황, 대규모 정리해고, 실업 대란의 공포,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을 인류의 재앙이다. 기약 없는 공포의 날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과 싸우고 있다.
재앙의 무덤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를 휩쓸다 인류에게서 멀어진 천연두 바이러스처럼 우리 곁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그러하기를….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를 지키는 것은 전염병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개인위생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답답해도 코와 입을 막자. 마스크는 개인 보호 필수 장비다. 희망의 끈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의무가 아닌 배려하는 마음이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은 우리 곁에서 심각한 감염질환을 떠나보내는 일이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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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경보 단계 최고 위험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세계적 유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