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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1-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기록된 이후 지구상엔 전쟁과 싸움이 그친 적이 없었습니다.
적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는 항상 싸움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쟁의 축약판이 올림픽 경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자기 나라의 이름을 걸고,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황대헌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여자 1,000m에서는 최민정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라고 하면,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실력있는 선수들입니다.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메달을 땄기 위해서, 어느 선수이든지간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엄청난 훈련을 했을 것입니다. 그 훈련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어려운 훈련들을 잘 극복하고, 마침내 올림픽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메달은 오직 실력으로 따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몇 년간의 고된 훈련의 과정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빙상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빙판이 좋지 않아서, 다른 선수 때문에, 심판 때문에”, 어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끝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싸우라”라는 말은 올림픽 같은 운동 경기에서 “시합하다”, “시합에 이기기 위하여 애쓰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싸움”이라는 말은 “운동 경기 그 자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는 말은 “선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하여 애쓰라.”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안 따도 좋다”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올림픽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기 위하여, 더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올림픽에 나가면서, “베이징 구경이나 하고 오겠다.” 혹은 “다른 나라 친구나 사귀겠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은 없을 것입니다. 피나는 노력을 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금메달을 따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따야 한다는 당연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믿음이라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1-12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내가 너를 구속하엿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면, 그가 속한 나라의 국기가 붙여져 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메달을 딴 선수들이 자기가 속한 나라의 국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메달을 딴 선수가 다른 나라의 국기를 자랑스럽게 흔드는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있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살다 보면, “싸우지 말라. 다투지 말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는 말들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우리의 예상을 깨고, “싸우라. 대적하라.”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3)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바울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엡 6:11)고 말할 뿐만 아니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라고 말한 것처럼, 직접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권투 선수가 링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절대 싸워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링 위에 올라가, 경기를 할 때에는 힘써 싸워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아무 때나,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싸우거나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경기를 할 때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싸워야만 합니다. 싸워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다른 나라 선수들입니까? 아니면, 심판입니까? 빙상 위를 달리는 다른 나라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어떤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경기장에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에베소서 6:12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싸움에 승리하려면, 싸워야 할 대상을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적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에 나가는 선수들은 본인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하여 무척 애를 쓰기도 하지만, 함께 싸워야 할 다른 선수들이 어떤 선수인지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경기를 할 때,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선수 뿐만 아니라, 싸워야 할 다른 나라 선수들에 대한 분석을 이미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 있어서, 우리와 싸워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무엇과 싸워야 할까요?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악한 영입니다. 사단 마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단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금하고, 해야 할 것들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피할 것은 피하고,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탐욕을 피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극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으로 무장한 이론들을 피해야 합니다.
피할 것은 피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멀리 할 것은 멀리 하고,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것들은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
정의롭게,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정의롭게 살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때, 실망감이 더 크게 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그렇지 못할 때, 실망하게 됩니다.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삶, 덕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에게는 메달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될까요? 무엇을 얻기 위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일까요? “영생을 취하라” 바로 영생입니다.
에베소서 6:13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은 시상대에 올라가, 자랑스럽게 메달을 받게 됩니다. 메달을 입으로 물기도 하고, 두 손을 번쩍 들기도 합니다. 환하게 웃기도 하고, 기쁘게 울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수고했다. 자랑스럽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선수들은 그 시상대에 올라가 메달을 받기 위하여, 온갖 훈련을 참고 견디어냈을 것입니다. 당장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았을 것이고, 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참았을 것입니다. 쉬고 싶어도, 달렸을 것이고, 힘들어도, 훈련에 매진했을 것입니다.
그런 혹독한 훈련의 과정들이 있었기에, 시상대에 올라간 그 모습이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진정한 자기의 실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편파적인 도움으로, 그 시상대에 올라갔다고 한다면, 그 마음,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보는 사람들도, 그를 부러워하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 시상대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올림픽 경기에 나간 선수가 “나는 운동선수입니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경기장에 나온 선수를 보고, “저 사람이 운동선수구나”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기장에 나온 선수가 경기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경기장에서 ‘왔다 갔다’ 어슬렁거리기만 한다면, “저 운동선수입니다”라고 말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출발선에 선 선수가 출발신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지 않는다면, 경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선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선수 맞아”라고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왜 안 달리지”
경기장에 나온 선수는 경기복으로 갈아입고, 달려야 하는 것이 정상이듯이,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도, 당연히 믿음으로 무장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2절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갖추어야 할 것은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경기장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에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기장에 들어가,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훈련이라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올림픽에 나갈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라고 한다면, 어쩌면, 그 훈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훈련과정을 인내하는 자만이 올림픽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경기장에 나왔다고 해서, 다 된 것도 아닙니다. 경기를 하면서도, 인내해야 합니다. 다쳐서, 꿰맸을지라도, 아플지라도,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그 결과를 떠나서, 그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선수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잘 때까지, 숨이 막힐 정도로, 꽉찬 스케쥴에 따라, 훈련에 임했을 것입니다.
그 모든 훈련 과정을 통과한 자만이 경기장에 나와, 경기에 임하게 되고, 자기가 훈련한 모든 모습들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경기에 임한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가 메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기왕, 싸울 바에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생을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바울 사도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게 주실 것입니다. 나 뿐만이 아닙니다. 나와 같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시상대에 올라가, 메달을 받기 까지는 그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 시상대에 올라가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을 보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우리들도, 결코 쉬운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넓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고통스럽고 험난한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김으로, 하나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를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이 믿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셨사오니,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게,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모든 장애물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마침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면류관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