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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이란 무엇인가?
1. 문제제기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 생산요소를 중심으로 각 나라의 경제적 성과를 설명하였다. 이 설명에 의하면 자본과 노동이 각각 얼마만큼 투입되느냐에 따라 경제적 성과는 달라진다. 이 중에서도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을 자본 축적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노동생산성을 국가 혹은 기업의 핵심적인 경쟁력이라고 보았을 때, 그것을 결정하는 요소가 자본의 양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쉽게 풀이하면 도구, 기계, 생산 설비 등과 같은 물적 자본이 잘 갖추어져 있을수록 경제 성장은 더 잘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은 왜 유사한 자본량을 가진 나라 사이에 경제적 성과의 차이가 나타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노동과 자본의 양이 유사한 나라, 특히 자본량이 유사한 나라 사이에도 경제적 성과의 편차가 매우 크다. 그것은 선진국에서도 그러하며, 후진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에 주목하게 되면서 1950년대 이후가 되면 자본과 노동 이외에 기술의 발전이 경제 성장에 영향을 끼친다는 당연한 인식에 도달하였다. 개인에 체화된 기술이나 지식 등과 같은 인적 자본과 기술이 축적되어 있을수록 경제적 성과는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의식을 확장해보면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 역시도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해당 국가의 사회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도덕심으로 충만되어 있을수록 그 만큼 국가 경제가 원활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경우 매년 봄만 되면 노사 분규로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나라 전체에 생산 차질뿐만 아니라 경쟁력의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만약 노사 모두 평소에 충만한 도덕심으로 평소부터 상대방을 존중했다면 노사분규로 인한 손실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매출의 약 10% 정도가 도난이라고 한다. 백화점과 슈퍼는 이를 막기 위해 판매요원보다 감시요원을 더 많이 두고 있으며 도난을 감시하기 위한 각종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한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만약 도난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물건 가격은 더 싸게 판매될 것이기 때문에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 이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내재해 있는 이로운 점을 물적․인적 자본과 구별하여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경제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서 사회적 자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어떤 기능을 통해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가? 그리고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사회의 경제 구조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또한 그 역기능은 무엇이며, 시장은 사회적 자본 형성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 이하에서는 이와 같은 쟁점을 중심으로 사회적 자본과 관련된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회적 자본의 개념과 순기능
일반적으로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집단․조직들 간의 신뢰 혹은 자발적 결사(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단체를 조직하는 것)와 연대(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를 말한다. 콜만과 후쿠야마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조직이나 집단을 구성하고 상호 신뢰 아래 협력하는 능력을 말한다.
퍼트남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이란 자발적 모임이나 사회적 연결망(네트워크)을 말한다. 개인들은 모임이나 인적 연결망을 통해 사회적 접촉을 활발히 하면서 협력과 신뢰를 만들어 나간다. 자발적으로 모임에 자주 참여하다보면 타인의 평가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공동의 노력을 통해 얻은 보람을 맛볼 수 있게 되므로 더 열심히 모임에 참여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임과 연결망은 시민들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개인의 평판이나 오명을 확산시켜 협조적 행위는 장려하고, 기회주의적 행위는 억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연결망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구축한다.
그러면 사회적 자본은 어떤 순기능을 담당하는가?
우선 사회적 자본은 거래비용을 감소시켜 거래를 활성화시켜준다. 모든 거래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어제 산 제품이 제대로 된 것인지, 며칠 전 고용한 사람이 제대로 일을 잘 할 수 있을 지, 일주일 전 예약한 사람이 그 물건을 사게 될 것인지 우리는 사전에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이런 불확실성에 대비하고자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제품의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해야 하고, 제품을 구입한 후에도 여러 가지 검증을 해봐야 한다. 제도적 차원에서는 과장 광고나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각종 공공 감독기관이 존재하며, 개인 및 집단 사이의 약속․계약․협약 및 기타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보장하기 위해 변호사제도, 판검사제도 등이 존재한다. 거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이 모든 개인의 노력과 사회 제도의 유지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이처럼 거래에 수반되는 개인적․사회적 비용을 거래비용이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뢰가 충만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거래 비용이 절감된다. 예컨대 고객과 점원에 대한 신뢰가 높으면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의 경우에도 굳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유지하기 위해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 사기나 불공정 행위에 대비하기 위해 소요되는 변호사비 등과 같은 각종 비용 역시 절감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정보를 원활히 유통시켜 정보 획득에 소요되는 탐색비용을 절감시켜 준다. 우리는 믿는 사람에게는 속마음을 잘 털어놓고 은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를 꺼려한다. 또한 많은 사람과 친분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마당발’은 일자리도 쉽게 얻을 수 있고, 승진도 더 잘되며, 필요할 때 정보를 쉽게 획득할 수 있다.
이처럼 거래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면 그 만큼 거래가 활성화되며, 그렇지 못한 경쟁자에 비해 상거래에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대인이나 중국인들이 지역 상권을 장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은 내부 집단 사이에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강한 응집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내부에서의 정보교환이 원활했고, 상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윤이 많이 남지만 모험적인 일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다. 그 결과 경쟁력이 다른 집단에 비해 커지게 되었다.
두 번째, 사회적 자본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준다. 거래 비용의 감소를 통한 거래의 활성화가 교환 영역의 문제라면 생산성 향상은 생산 영역에 관한 문제이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생산 영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협동정신과 단체의식이다. 상품의 생산이란 동료들 간, 부서들 간, 부하와 상사 간,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협동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직원들이 상급자의 감시 소홀을 틈타 증권거래나 부동산 투기에 한 눈을 팔고 있다면 이를 감시하기 위한 비용이 매우 많이 들 것이다. 또한 고용주와 노동자 간에 상호 불신이 쌓여 있다면 노동자들은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협력하기 보다는 단기적인 자기 이익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업 역시도 노동자의 숙련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인적 투자를 소홀히 여길 것이다. 그 결과 기업은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빠져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일일이 감시하지 않아도 믿음직스럽게 업무를 수행하는 태도, 일에 대한 책임감과 성취에 대한 열정, 서로 믿고 아껴주는 인간적 분위기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생산성은 그 만큼 더 높아질 것이다.
세 번째,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규범을 형성하여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하도록 해준다. 죄수의 딜레마란 개인들 간에 서로 협력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타인을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를 통해 개인이 선택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이 반드시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가장 합리적 선택이 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얼마 전 모 과학고의 교장선생님이 과학고의 학생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인성이 부족하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 학생마다 좋아하는 분야가 존재하고, 그 분야의 경우 더 많은 노력을 투여하기 때문에 대체로 그 분야를 더 많이 알고 있다. 만약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노하우를 서로 공유한다면 학생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의 노하우를 공개할 경우 자신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다른 학생들이 공개할 지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합리적 전략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숨기고 자기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된다. 결국 학생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해 지금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또 다른 경우로서 우리는 개인들이 서로 협력해서 환경오염을 조금만 자제한다면 환경이 크게 개선되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내가 조금 자제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역시 자제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만약 ‘나’만 자제하고 다른 사람은 자제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이익은 없으면서 그로인한 고통만 야기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볼 때 각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환경오염 행위를 자제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환경오염 행위를 자제한다면 ‘나’만 편하게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좋고, 다른 사람들이 환경오염 행위를 자제하지 않는다면 같이 자제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볼 때 합리적 선택은 환경오염 행위를 자제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환경오염은 더 심화된다. 결국 개인적으로 볼 때 이익이 되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큰 손해를 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자본은 개인의 기회주의적 행위에 제재를 가하여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치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자발적 모임이 잘 결성되어 있고, 개인들 간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다면 좋은 일은 물론이거니와 나쁜 일도 빨리 소문이 퍼진다. 이 경우 신의를 지키고, 공정하게 행위하는 것이 개인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자본은 비협조적 행위에 대해 각 개인에게 사회적 비난에 따른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갖도록 만들어 개인의 이기적 동기를 억제하도록 만든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 규범을 자발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용이하다. 앞서 언급했던 환경오염 문제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면, 사회적 자본은 시민 개개인에게 다른 사람들이 환경오염 행위를 자제할 것이라고 믿도록 만든다. 이런 사회적 규범이 형성되면 개인들은 환경오염 행위를 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환경 개선 행위에 동참할 것이다. 그 결과 환경이 개선되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최선의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3. 고신뢰 사회와 저신뢰 사회의 경제구조
후쿠야마 교수에 따르면 탈산업화된 현대 사회의 번영은 정부의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건전한 습관, 관행, 도덕심에 좌우된다. “경제 활동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한 나라의 사회복지 및 그 나라의 경쟁력은 그 사회에 스며있는 단 하나의 문화적 특성, 즉 그 사회에 내재한 신뢰의 수준에 좌우된다.”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의 강도에 따라 경제수준과 경쟁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저(低)신뢰 사회(low trust society)와 고(高)신뢰 사회(high trust society)로 분류하였다.
고신뢰 사회란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에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믿고 협력하는 개방된 사회를 말한다. 이런 이유로 고신뢰 사회의 경우 시민들에 의한 자발적 집단 구성과 결사(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단체를 조직하는 것)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반면, 저신뢰 사회란 혈연, 지연, 학연 등과 같은 연고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강한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뢰감이 잘 형성되지 않는 폐쇄된 사회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혈연, 지연, 학연 등과 같이 특별한 연고가 존재하는 사람들끼리만 집단이나 기업을 만든다.
이러한 차이는 경제 구조에 그대로 반영된다. 대체로 고신뢰 사회의 경우 경쟁력 있는 대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저신뢰 사회의 경제는 중소기업이 중심이 된다. 저신뢰 사회의 경우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기업을 꾸려가기 때문에 기업 규모를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차이는 기업 경쟁력에도 그대로 영향을 끼친다. 고신뢰 사회의 경우 기업 규모가 커지더라도 회사원 사이에 신뢰가 강하므로 거래비용이 적게 된다. 또한 혈연, 학연, 지연에 관계없이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기업의 실질 경영권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능력 있는 경영자가 최고 경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어 기업 수명도 길다. 후쿠야마 교수에 따르면 미국, 일본, 독일이 이런 국가에 해당한다.
반면, 저신뢰 사회의 경우 기업 총수 개인의 탁월한 능력에 의해 대기업이 만들어지더라도 총수가 은퇴하고 나면 기업이 공중 분해되거나 친척들에게 분할된다. 그러다보니 경쟁력 있는 대기업이 별로 없고 중소기업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후쿠야마 교수에 따르면 한국, 중국, 대만, 이탈리아 남부가 전형적으로 이런 나라에 해당한다.
4.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
지금까지 논의는 사회적 자본의 순기능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적 자본이 반드시 순기능을 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 자본이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지만, 개발도상국에 대한 다수의 경험적인 연구는 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케냐 농촌 지역에는 200,000개 이상의 참여 집단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토착 집단들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연대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빈곤 수준은 매우 높다. 낵과 키퍼의 실증 연구에 의하면 인도와 터키의 사회적 자본은 우리나라 보다 훨씬 높지만 그럼에도 경제 수준은 우리에 비해 매우 낮다. 이러한 경험적 연구가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자본이 반드시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 자본은 부정적인 기능을 동반할 수도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폐쇄적인 집단 내에서의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이다. 신뢰의 연결망이 전체 사회에서 고립된 집단 내부에서 형성될수록 신뢰의 연결망은 파당(패거리)의 성격을 띠기 쉽다. 폐쇄적인 강력한 유대관계와 신뢰는 그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에게는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집단에 속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회적 자본은 집단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파당의 배타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아담스미스는 “동업자끼리는 즐기기 위해서나 또는 사업과는 관계없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조차도 별로 만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동업자들이 일단 만났다 하면 대중에 해를 끼치는 모의(담합)를 하거나 가격을 인상할 구실을 찾는 것으로 회동을 끝맺는다”고 하였다. 예컨대 강한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능력 있는 신규 진입자들이 해당 부문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조선시대의 보부상이나 미국 주요 도시에서 세탁업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이민들, 마이애미 시의 다양한 산업부문을 지배하는 쿠바 이민들의 경우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뿌리 깊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학연, 지연, 혈연 등과 같은 연고에 의한 패거리 문화 역시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의 경우 특히 학연에 대한 사적 신뢰가 매우 두텁다. 이들의 관계는 가족 관계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어 선배, 후배의 호칭이나 이름보다 형, 아우라는 호칭이 일반적이다. 가족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같은 학교 출신끼리는 서로 챙겨주고, 정보를 교류하지만 다른 학교 출신들은 배척한다. 같은 학교 출신끼리는 사적인 신뢰가 너무 강해 때로는 부패를 저지르거나 부정한 행위에 대해 눈감아주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사회적 자본이 반드시 경제적 성공을 가져오는데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자본은 역으로 지속적인 경제적 성공을 가로 막을 수 있다. 집단 내 결속이 강할수록 친족이나 가족들 중에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여러 가지 요구가 쇄도하기 마련이다. 결속이 강하다는 것은 그 만큼 공동체의 규범 또한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를 이용해 쉽게 도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경우에도 성공한 사업가는 가문을 빛낸 것으로 칭송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족이나 친족을 능력에 관계없이 고용하거나 도와주어야 하는 것을 의무로 간주한다.
만약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공동체의 규범을 어긴 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반면, 이를 들어주다 보면 기업의 이윤은 투자를 위해 사용되기 보다는 가족이나 친족들의 복지를 위해 소비된다. 물론 집단 내 결속이 강할수록 그 요구를 거절하기란 매우 어렵다. 결과적으로 가족이나 친족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기업의 성장은 억제된다. 이 경우 사회적 자본은 친경제적이기보다는 반경제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자본이 반드시 사회적 규범을 강화하여 공공의 이익(public good)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자본은 공공악(public bad)을 창출하는 원천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빈곤지역에 대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빈곤지역에 존재하는 사회적 자본이 오히려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빈곤 지역의 경우 범죄나 일탈 행위를 익힐 수 있는 조직적 연대가 강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 지역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규범적인 행위가 오히려 일탈 행위로 간주되어 제제의 대상이 된다. 미국의 빈곤 지역에 존재하는 마피아나 매춘집단, 젊은 갱 문화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처럼 사회적 자본은 때로는 경제 발전에 오히려 역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토대로 사회적 자본 무용론을 펼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좋은 인간관계와 활발한 사회적 참여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또한 폐쇄적인 신뢰망이 형성되는 저신뢰 사회보다는 개방적인 신뢰망이 형성되는 고신뢰 사회가 보다 더 나은 사회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자본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자본이 시장 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조건이 맞을 경우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뢰는 폐쇄적이어서는 안되며, 개방적이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자본만 있으면 시장 경제의 발전이 저절로 달성된다는 식의 사회적 자본 만능론을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요소는 사회적 자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물적․인적 자본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회적 자본만 존재한다고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물적․인적 자본이 유사하고, 기술력도 유사한 상황이라면 개방적인 형태의 신뢰가 풍부한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에 비해 명백하게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5. 시장과 사회적 자본
사회적 자본이 시장 경제에 영향을 주지만 역으로 시장 또한 사회적 자본에 영향을 미친다. 시장에서의 일상적인 실천 행위가 인간의 성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타인을 믿던 사람도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행하다 보면 모든 사람을 일단 의심부터 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불신에 몸에 배여 성품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검사가 전형적으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시장에서의 일상적인 실천은 인간의 성품을 변화시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장 경제는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키는 형태로 사회적 자본에 영향을 미친다. 왜 시장 경제가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키는가?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시장 경제에 내제해 있는 빈부격차 때문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시장 경제는 경쟁을 통해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해 소수의 승자가 부를 독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경제 하에서 부의 불평등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불평등은 계층 사이에 불신과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여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킨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잘 사는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끼리만 어울리며, 못사는 사람들은 못사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는 현상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이 경우 동질적인 사람 사이에서는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신뢰가 형성되어 협력이 용이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불신과 적개심이 쌓이게 된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취향 등이 달라지면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요소가 점점 엷어지고, 사람들 사이에 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못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협력을 통해 함께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잘사는 사람들이 독식하고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잘사는 사람들이 획득한 부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식으로 불신이 형성되면 합리적 대화가 들어설 여지는 점점 좁아지며, 협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발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조차 점점 줄어든다. 그 결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갈라져서 계층 간의 반목과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된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커다란 비용을 치르게 되어 국가 전체에 손해를 야기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노사갈등 및 부의 양극화로 인한 갈등이 전형적으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시장이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키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시장이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과 타인과의 신뢰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 행위를 통해 타인과의 신뢰가 형성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 이기적 행위는 타인과 신뢰를 쌓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과 신뢰를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타심을 키워야 하며, 이타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타심을 함양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만 시장 경제는 만물의 상품화를 통해 이타심을 함양할 수 있는 실천의 계기를 앗아간다. 예컨대 우리는 헌혈이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헌혈에 대한 강한 동기를 갖는다. 이 경우 헌혈이라는 구체적 실천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심을 키워나갈 수 있다. 혈액의 상품화는 이런 동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혈액이 5만원의 돈으로 거래된다면 타인의 생명을 살리고자 한 나의 고귀한 이타심은 무시되거나 단지 5만원으로 평가받게 된다. 어차피 이타심을 평가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굳이 이타적으로 행위해야 할 동기가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이타심을 실천할 계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타심이 함양되지 않는다.
반면, 시장은 개인에게 이기적으로 행위할 것을 항상적으로 요구한다. 시장은 경쟁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타인을 배려할 경우 경쟁에서 낙오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시장 경제를 일컬어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배려할 경우 자신은 손해를 본다. 이런 이유로 시장 경제 하에서 사람들은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로 전락한다. 특히 시장 경제가 지배적인 사회일수록 더 그러하다. 예컨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앨런 울프의 중산층 도덕연구 결과에 따르면 20년 전에 비해 ‘미국인들은 더욱 이기적으로 변했다.’는 질문에 절대다수의 조사 대상자들이 동조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만물의 상품화가 가정의 상품화를 야기하여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킨다는 점이다. 가정의 상품화란 옛날에는 주부들이 담당하던 가사노동을 이제는 시장이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잔치 상을 직접 마련해야 했지만, 지금은 이벤트 회사가 대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음식을 장만할 필요가 없다. 이벤트 회사에서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가정의 상품화는 비단 특별한 활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아이들 키우는 기저귀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했지만, 지금은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모유를 먹였지만, 지금은 분유를 많이 먹이고 있다. 심지어 밥까지도 이제는 직접 할 필요가 없다. 시장에서 햇반을 구입하여 먹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집에서 금방 한 밥보다 더 맛있기 때문이다. 대략 이런 것들이 가정의 상품화에 해당하며, 상품화 덕택에 우리는 그만큼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활동에는 돈이 필요하다. 가정의 상품화가 진행될수록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요구된다. 이제는 아버지 혼자 벌어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표준화된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도 돈을 벌어야 한다. 이 말은 가정의 상품화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독려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에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점점 맞벌이 부부가 일반화되고 있다. 물론 여성 역시도 직장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 대해 여성의 자기실현 기회의 확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자본의 견지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남편과 아내가 모두 직장 노동에 전력하다보면 이웃과 교류하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다. 동네 모임에 참여하고 지역 사회에서 활동할 시간과 정력을 직장에서의 일에 점점 더 빼앗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960년대 이래 미국 주요 사회단체에서 여성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주요 여성단체의 회원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자본 형성은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오늘날 시장 경제가 가장 발전된 미국 경제에서 사회적 자본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자본과 관련된 대부분의 실증 연구에 의하면 미국 사회는 장기에 걸쳐 사회적 자본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퍼트남 교수에 의하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혼자 볼링 치는 사람의 증가이다. 미국의 경우 그 전에는 단체로 볼링을 즐기면서 사람들 사이에 교류가 진전되고, 인간관계도 다져졌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 감소하면서 사회적 불신으로 인한 비용은 더욱 급증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치안 유지에 소요되는 공적 비용이 90년대 초에 이미 국내총생산의 1.3%에 달하고 있으며, 범죄가 늘어나면서 전체 인구의 1% 이상이 감옥에 갇혀 있다. 물론 사설 경호원의 수는 공공 경찰의 두 배 가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백화점 운영 인건비에서 청원경찰이 차지하는 비중이 판매 요원보다 더 높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송이 증가하면서 1인당 변호사 수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 과거에는 자발적 합의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이제는 법정에서 다투어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1. 사회적 자본의 순기능에 대해 5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2. 시장이 사회적 자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5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3.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두 용의자 김씨와 박씨가 검거되어 검사의 신문을 받게 되었다. 검사는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김씨와 박씨를 독방에 가둬놓고, 각각을 불러서 다음과 같은 제의를 했다. “만약 한 용의자가 자백을 했는데도 자백하지 않는다면 자백한 용의자는 방면되고, 자백하지 않은 용의자는 법정 최고형인 15년형이 구형될 것이다. 만약 둘 다 자백하면 둘 다에게 법정 최저형인 5년형이 구형될 것이며, 둘 다 자백하지 않는다면 둘 다에게 1년형이 구형될 것이다.” 물론 김씨와 박씨는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씨와 박씨의 최선의 선택에 대해 400자 내외로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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