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정 (碧松亭)
벽송정(碧松亭)은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정자로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정자 안에 통일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詩文)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자는 당시 지방의 유학자(儒學者)들로 구성된 유림(儒林)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각지의 선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며 토론(討論)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門下)에서 수학하였던
제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과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시문(詩文)도
정자의 현판(懸板)에 남아 있다.
1920년 대홍수가 나면서 기존의 6칸 건물이었던 벽송정(碧松亭)의 일부가 파손되어
1칸만 남게 되자 선산김씨(善山金氏) 문충공파 김병식의 조부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그 후 고령군에서 대대적인 보수(補修)를 하여
담장과 기단 등이 복원되었다.
국도변 경사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벽송정(碧松亭)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외곽은 방형(方形)의 와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면과 왼쪽 측면에
일각문(一角門)이 있다. 일각문(一角門)을 들어서서 경사진 면에 다시 돌계단이
놓여 있으며 벽송정(碧松亭)의 현판이 보인다. 벽송정(碧松亭)규모는 정면3칸,
측면2칸이며, 골기와, 팔작지붕의 홑처마집이다.
벽송정(碧松亭)은 1985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에도 음력 4월 초 열흘날 벽송정(碧松亭) 유계(儒契)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계원들은 15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벽송정(碧松亭) 유계(儒契)의 기원(起源)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벽송정계안-총10권, 500년가량 되었다고 함>에 의하면
계(契)의 기원도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계를 만들 당시 선산김씨(善山金氏),
양천최씨(陽川崔氏), 고령박씨(高靈朴氏) 등 총28명이 모여 만들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유서 깊은 정자이다.
첫댓글 배롱나무꽃이 곱게핀 벽송정
낙동강가에 자리잡고있어 더운치있고 멋진곳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