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승 대표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LH...
1. 분당과 토지공사(현,LH)
2. 2015년 사건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분당과 토지공사(현,LH)
이호승대표는 1989년 분당개발당시 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분당택지개발사업시행처인 토지공사(현LH)와 만나게 된다. 토지공사는 분당에 본사가 있었고 이호승대표는 분당에 살았다.분당개발은 LH 본사가 있는 앞마당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입장에서 분당등 수도권택지개발주민들이 단결하여 토지공사의 밀어붙이기 개발에 저항하는 이호승대표의 눈부신 활동이 눈에가시처럼 느껴졌던 토지공사(현,LH)와 공안당국은 이호승대표를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자로 매도하며 탄압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이호승대표는 서민주거안정을 말하면서 분당세입자대책없는 분당개발은 대국민사기극이라며 선대책 후이주를 외쳤고 분당등 택지개발사업시행처인 토지공사를 일본제국주의의 동양척식회사라며 몰아부쳤다.
철거민문제는 정부가 나서야한다며 철거민발생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라며 나섰다.
이호승대표는 1980년대에는 기독교문화운동을 주도하다가 85년경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다,89년 분당개발이 되면서 개발이 개발지역주민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피부를 느끼며 법과제도가 개발지역주민에게는 굴종과 복종을 강요한다는 것에 분노하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철거민운동에 뛰어들었다.
2. 토지공사(현,LH)와 두 번째 만남
이호승대표는 토지공사와 분당과 판교에서 시차를 두고만났다. 89년 분당과 2004년 판교에서인데, 분당에서는 분당대책위원장으로서 당시 관계관대책회의등 이호승을 분당에 침투된 자(?)로 매도하면서 토지공사는 경찰등과 함께 이호승을 탄압하였지만 이호승대표의 눈부신활동은 분당세입자주거권쟁취의 견인차역할을 했다.
1989년에 시작된 분당주거권투쟁은 1991년4월에 (1)공공장기임대아파트 (2)가이주단지 (3)생계대책용 상가권리등을 쟁취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당시 얻은 가이주단지가 판교개발지역에 있었다. 그런데 그곳이 2004년에 판교개발이 된 것이다. 이호승대표는 판교에 있던 분당세입자 가이주단지에서 살았다.
분당에서 주민들의 배신과 특정세력의 탄압속에서도 1989년 분당주거권투쟁은 토지공사의 완패이고 이호승의 승리라면 2004년의 판교는 상황이 달랐다. 철저하게 이호승을 견제해 온 것이다. 먼저,분당세입자대책의 성과를 없애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전철협을 무력화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실제로 판교주민들과 이호승을 분리하는 활동을 많이 하였다. 이런 결과로 2004년 판교개발과정에서 이호승대표는 판교에 살고있었지만 철저하게 판교주민들에게 배신을 당하였고 이호승은 판교에서 뼈저린 아픔을 겪으면서 토지정의와 부동산투기근절 그리고 철거민권익운동을 위해 전철협을 강화하였다.
판교에서 철저하게 당한 이호승대표의 서울을 중심으로한 활동은 전철협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자 전철협을 파괴하려는 큰 음모가 교묘하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 음모는 2006년 이었다. 2006년11월2일 분당경찰서앞에서 전철협 회원164명이 강제연행되어 경기도내 10개 경찰서에 분산수용되었다가 석방된 조작사건인데 그사건이후 주동자들은 LH 퇴직자들에게 주어진 철거일감을 보상으로 줬다는 의혹과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제보가 지속되는 것을 눈여겨 보고 있다. 이당시 이호승대표는 2004년 판교사건으로 집행유예기간이라 대표직에서 물러나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이다. 이호승대표가 잠시 물러나 있을 때 전철협에 침투된 자들이 LH관련자들과 함께 전철협을 파괴하고 이호승을 파괴하고자 2006년과 분당경찰서앞 사건과 2007년 이호승사기사건을 연출하였다.
두 번째 큰음모는 2015년에 발생되었다.
2004년 이호승구속(집시법)과 2005년 이호승 판교비닐집 강제철거사건 2006년 분당경찰서앞 사건 2007년 이호승사기사건을 야기한 LH관련자들과 부역자들은 성남(판교)에서 이호승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한뒤 2011년12월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이 되면서 성남에서 이호승을 음해한 세력들이 서울로 진출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민사회진영에서 전철협을 퇴출시키고자 전철협 파괴활동을 본격적으로 한다.
성남에서 이호승과 전철협의 활동을 방해한 세력들이 서울에서 이호승과 전철협 활동을 왜곡하고 음해하면서 서울에서 2015년 사기사건이 만들어졌다.
성남(분당)에서 시작되어 서울로 이어진 이호승과 전철협 탄압과음해사건에 대해 성서련은 “이호승대표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LH”라고 요약하여 우리사회에 알린다.
평생,토지정의와 부동산투기근절 그리고 합리적인 철거민대책을 말한 그를 30년이 넘도록 탄압을 지속해온 토건세력들이 사회곳곳에 있다는 것이 안타갑기 그지없다.
지난 30여년동안 이호승대표는 토지공사(현LH)의 개혁을 말해왔다. 토지와주택은 상품보다는 삶의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며 외쳤고 투기의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외쳐왔다. 지난 1989년 당시 노태우정권의 분당개발당시 서민주거안정을 내세웠지만 이호승대표는 개발지역주민의 주거권,생존권,재산권을 보호못하는 개발로는 서민주거안정을 위한다는 주장은 허구라며 부동산가격의 급상승을 초래하는 LH주도의 개발을 반대해왔다.
평생,철거민발생없는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2015년 사건으로 이호승대표는 억울하게 169일 동안 구속이 되었다. 그러다, 최근에 무죄확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이제,지난 89년부터 성남(분당)에서 시작된 이호승대표의 탄압과음해에 대해 성서련은 진실을 우리사회에 알리고자 한다. 일단,이“이호승대표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LH”이라는 주제로 생각해 봤다.
(성남지역서민단체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