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노력 중독 부제 :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 지은이 : 에른스트푀펠, 베아트리체 바그너 옮긴이 : 이 덕 일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식중독. 넘쳐나는 지식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속도중독, 빠른 속도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친구중독, 너무 많은 친구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편견, 잘못된 관점이 어릭석음을 낳는다. 완벽에의 강박, 우유부단함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전문성에 대한 맹신, 전문가의 의견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독서중독, 독서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너무 많은 지식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어리석음을 향한 불편한 보고서인 이책은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다.
뇌괴학자와 심리치료사가 공동 집팔힌 이 책은 “왜 죽어라고 노력하는데도 우리는 현명해지기는 커녕 점점 멍청해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여러가지 면에서 완전한 바보다. 인간의 문제점과 오류에 대해 똑깉이 되풀이하는 것을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그 뿌리를 연구해보기로 했다.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저자는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더빠르고 ,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성취 지향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가치에 눈뜨게 되길 바란다고도 한다.
지식 중독 넘쳐나는 지식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할수록 아는것은 점점 적어진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똑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멍청하다. 정말로 그럴까? 무엇이 정말로 어리석은 것이고, 지적이란 또 무엇일까? 학교 성적이 나쁘면 멍청하고 방대한 상식을 갖고 있으면 똑똑한가? 아인슈타인은 타고난 천재였을까? 피사pisa의 서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침내 편견에 대한 오해를 풀때가 왔다.
속도중독 빠른 속도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경제의 모토는 시간은 돈이다이다. 이같은 생각은 미국을 개척한 아버지이기고 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젊은 상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말은 최근 다보스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바브에 의해 업데이트되었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다. 이는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 신상품을 먼저 출시하는 기업은 경쟁사에 비해 훨씬 더 이익을 본다. 퀴즈쇼에서는 먼저 대답하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달리기에서는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금메달을 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점점 더 속도에 집착한다. 많은 분야에서 이미 우리는 속도의 한계에 도달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의 속도 증가가 불가능한 분야 말이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치료가능할까?
첫째, 복잡함을 줄이자. 극도의 무기력 상태를 경험할 때 좋은 방법은 복잡함을 줄이는 것이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몇 개만 골라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 가능하다. 내가 오를 산이 어마어마하더라도 작은 자리에 앉아 가야 할 길을 몇 단계로 나눈 다음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다.
둘째, 일부러 산책을 선택한다. 바쁠때 일 수록 돌아가고, 시간이 없을 때 휴식을 취하라. 천천히 걷고 잘 생각하라. 달리는 사람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는 것밖에 모른다.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보라. 걸으면서 그 걸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을 받자마자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답변하면 서서히 생겨나고 있는 감정을 지나치게 빨리 표현해버림으로써 감정에 휩쓸리기 쉽다. 차라리 몇 주가 지난 뒤 진심을 담은 연애 편지를 쓰는 것이 즉각적으로 답변하는 것 보다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답을 내놓기 보다 자아의 힘을 시험하고 단련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편견 잘못된 관점이 어리석음을 낳는다. 사람들이 오직 자기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거나 보고 싶어하는 것에 우리는 종종 놀라곤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너나 없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다. 편견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 인간에게는 관점을 바꿔볼 줄 아는 능력이 있지만 자신의 공공한 확신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의 든든한 초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자신의 지평을 넘어서서 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고집스런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친구중독 너무 많은 친구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자신을 열어보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 이런 점에서 페이스북 활동은 일종의 자발적 매춘과도 같다.
완벽에의 강박 우유 부단함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선택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여러 가능성 중에서 우리는 소수를 택하고 나머지는 남겨둔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남겨둘까? 결정내리기는 복잡한 과정으로 우리의 감정과 마음이 결부된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여러 요인이 작용하기도 한다. 결정내리기라는 세계로 향한 여행에서 우리는 여러갈래 길을 만날 수 있다.
일과공부 완벽주의는 이제 그만
전문성에 대한 맹신 전문가의 의견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독일에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있다. tv토크쇼를 몇번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최고의 전문가임을 자처한다. 만일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들은 어떻게 하는가? 어떤 사람은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진작 문제를 파악해야 했었다며 남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최고 전문가들이 맡은 중요한 프로젝트임에도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전문가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이다. 세부 지식에 능통한 사람은 종종 전체적인 큰 그림을 못 볼 때가 많다. 그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큰 재앙이 되고 만다.
독서중독 독서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 것이나 지도를 보는 것 뉴스를 보는 것과 같은 행동을 통해 우리는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눈 멀기 십상이다. 또한 독서에 두뇌를 사용하게 되면 그동안 그 부분은 감각을 감지하는 기능을 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 독서는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공기를 새롭게 느끼고 받아들이기를 하는 것이 우리를 똑똑하게 만든다. 그저 걷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길때마다 그 속에 마음을 담는 것이다. 몇 초 동안 자신과 상대방의 움직임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욕망을 느껴보라. 촉각에 집중하고 상대의 냄새에 집중한다.
인간 자연이 만든 부끄럽고 불완전한 창조물 인간의 어리석음을 묘사하는 자료는 셀 수 없이 많으며 그걸 다 다룬다면 이 책의 두께는 백과사전을 능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묘사의 분석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 두뇌의 원리는 무엇일까? 두뇌의 신경구조에서 어리석음의 실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자연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생동물에서 복잡한 인간의 두뇌에 이르기까지 그 경로를 추적하고 그것의 학술적 의미를 생각하며 나아기 철학적이고 심오한 시적, 세계와의 연관성을 파헤치기로 한다.
지구상에 존재한 생물 종의 평균수명은 수백만 년 밖에 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종은 멸종될 수 밖에 없다.종의 수명 한계를 설정해 놓은 것은 어리석음 탓일까 현명함 때문일까? 종의 짦은 수명이 의미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 이른바 지적인 동물이라는 인간 조차도 이미 충분한 수명을 누려왔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수명이 다하게될 경우 이것은 자연의 영리함일까 어리석음일까 한 종의 수명이 오직 몇 백만 년 밖에 되지 않고 인류 전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이는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새로운 진화를 위한 공간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연환경 파괴건 더 파괴적인 무기개발이건 상관없이 지성의 탈을 쓴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결과다. 인간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새로운 종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기 위한 자연의 고차원적인 표현 방식일 수도 있다. 우리가 특정 생명체의 멸종을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수백만년이 걸리는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냥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새 생명를 태동시키기 위한 생태계의 흐름에 우리를 맡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저명한 두뇌 연구가와 상담 치료 전문가이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왜 어리석은지에 대한 통찰을 통해 우리가 조금 더 현명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선천적이고 생물학적인 한계에 의한 어리석음. 다른 하나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쌓아온 경험적 후천적 어리석음이다.
우선 이들은 인간이 이룩해 낸 빛나는 문명의 수단들이 우리를 현명하게 만드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빠른 소통방식, 더 많은 친구들은 우리를 점점 더 멍청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많은 독서도 인간이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고 점점 외부의 지식과 전문가들 손에 자기 삶을 맡기는 문명의 노예로 전락해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지인 이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국 자연 속 진화의 산물이라는 냉정한 통찰을 한다. 인간은 날 때부터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데 다른 생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두뇌를 가진 고등동물에 속하는 우리 인간도 결국은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났다가 언젠가는 멸종될 하나의 생물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결함과 어리석음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가진 본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편견이다.
우리 인간은 생래적이면서도 후천적으로 발달되고 축적되어 온 어리석음으로부터 진정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희망은 있다.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 어리석음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 질 수는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명상이나 자기반성을 통해 지나치게 외부의 자극에 의존하고 통제 받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좋다. 또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들여다보고 조롱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면 어리석음의 함정에 거듭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냉철한 두뇌 연구가이자 상담가이지만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이론만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해부하고 설명하지 않는다.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표현과 재미있고 설득력 있는 재미있는 예드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야기하고 어떻게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조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