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 백용성 조사 죽림정사
2023.3.15(수) 대곡관광지&도깨비전시관 관람후 장수군 번암면에 위치한 배용성 조사 죽림정사를 찾아
14:30~15:00 약 30분 동안 백용성 조사 생가 및 기념관 탐방시간을 갖는다.
<죽림정사 위의 동화댐>
백두대간 장안산 자락에 자리 잡은 죽림정사는1998년부터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와 백용성유훈실현후원회의 주도로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중의 한사람이며
만해 한용운스님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참가한 불교의 대선사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용성(1864-1940) 스님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용성 조사의 유지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국비와 장수군의 지원비 40억여원 외에도 70억여원이 더 든 대규모 불사로 용성 스님의 손상좌이신
불심(佛心) 도문(道文) 스님이 1998년부터 10년간 이끌었다.
4,100평의 부지에 생가 복원과 유적 정화를 마치고 2007년 10월 9일에 낙성 회향식을 마치고 개원하였다.
주지 도문 스님은 제자이신 <정토회 지도법사 지광 법륜스님>에게 죽림정사 주지를 맡겨 유훈 실현의 뜻을 이어가도록 했다.
죽림정사는 용성 스님의 애국 혼이 담긴 민족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용성 스님은 16세 때 합천 해인사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한 후 전국의 명찰을 돌면서 심신 연마에 힘쓰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화엄경을 한글로 번역한 업적을 남겼고 한국 불교 중흥을 위해 힘쓴 민족의 큰 스승이었다.
대웅보전의 측면
대웅보전의 측면과 뒷면
스님들이 거주하는 승당건물
생가 앞에는 비석들이 설치되어 있다.
용성스님의 맏상좌이셨던 동현스님 행적비와
현재 죽림정사 조실로 계시는 불심(佛心) 도문 스님 행적비 등이 설치되어 있다.
보통의 가정집 형태를 띄고 있는 용성 조사 생가 대문
백용성 조사 생가터
생가 안채, 방2칸과 부엌1칸으로 되어 있다.
백용성 조사 영정
죽림정사는 스님이자 독립운동가이신 이 고장 출신 백용성 조사님의 탄생지였다.
이곳 번암면 죽림리에서 탄생하신 진종 백용성 조사는 본명은 백상규(白相奎)이시다.
1879년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화월화상을 은사로 혜월율살르 계사로 수도 정진하셨다.
삼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셔서 옥고를 치르셨고, 출옥 후에는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노력하셨다.
자신이 세운 대각사(大覺寺)를 중심으로 왜색불교 추방운동을 앞장 서셨다.
용성스님은 열반 직전 맏상좌인 동현스님에게 유훈 10가지를 남기셨다.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등 한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삼국시재 초전법륜지 성자화,
신라 성지인 금오산과 낭산, 경주 천룡사지 등 국내 성지를 가꿀 것 등을 유훈으로 남기셨다.
생가터 장독대
대웅보전
대웅보전에는 설법수인을 하고 계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고 탱화들이 걸려 있다.
협시불이나 협시보살을 모시지 않고 있다.
용성교육관
용성교육관의 외벽에는 3단 30폭에 80가지 그림으로 백용성 조사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용성기념관
한반도형 연못 위로 놓여 있는 석교 피안교
작은 연못가에 석재로 태극기가 조성되어 있다.
매화꽃나무
피안교를 지나면 왼쪽에 종무소 건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해우소가 있다.
근심만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근심과 고뇌를 해결하는 곳이라는 뜻의 해우고뇌소(解憂苦惱所)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행당(行堂) 즉 행자(行者)의 숙소
일주문에 해당하는 2층 누각
충의원통문
일층은 충의원통문이고 2층은 범종법고루이다. 중앙에 장안산죽림정사(長安山竹林精舍) 현판이 있고
우측에는 충원원통문(忠義圓通門), 좌측에는 범종법고루 현판이 걸려 있다.
백용성 조사 탄생성지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