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장(제물론) 23절
[원문]
“나와 당신이 논쟁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당신이 나를 이기고 나는 당신을 아기지 못했다면, 과연 당신이 옳고 나는 그른 것일까요? 내가 당신을 이기고 당신이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내가 옳고 당신은 그른 것일까요? 그 어느 쪽은 옳고 그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요?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요? 나나 당신이나 모두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본시부터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까?
당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당신과 의견이 같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의견이 같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당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당신과 의견이 다르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당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당신과 의견이 같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나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논리를 믿겠습니까?”
[해설]
이번 23절에서는 장자가 논쟁(論爭)의 한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논쟁에서 이긴다고 해서 그 주장이 옳거나 진다고 해서 그른 것이 아니다. 논쟁하는 사람 둘 다 누가 옳은지 모른다. 그렇다고 제삼자에게 판정을 맡겨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제삼자가 논쟁하는 어느 쪽과 의견이 같다면 그쪽을 옳다고 판정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쪽과 의견이 같다면 다른 쪽을 옳다고 판정할 것이다. 주장하는 두 사람과 다른 판정을 한다면 그것도 또 다른 주장으로 그 판정도 믿을 것이 못된다. 결국 어느 쪽의 주장도 믿을 것이 못된다고 장자는 말하고 있다.
[해설 도움글]
1. 논(論)이란?
1. 논(論)은 ‘근거(根據)를 들어 주장(主張)하는 말’이다.
1.1 주장은 시비(是非)를 가림이다.
1.11 시비는 옳고 그름과 긍정(이다)과 부정(아니다)이다.
1.12 가림은 둘로 나눈(二分法) 후에 어느 한쪽을 지지함이다.
1.2 근거는 주장의 옳음을 뒷받침하는 말이다.
1.21 주장의 옳음은 사실(실제로 일어난 일)과 당위(마땅히 해야할 일)가 받쳐준다.
1.22 뒷받침은 근거(사실과 당위)가 주장과 관련성이 깊어야 함을 의미한다.
2. 논쟁(論爭)의 한계
2. 논쟁(論爭)은 상반(相反)되는 주장을 하면서 말로 다투는 것이다.
2.1 주장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2.11 제시된 근거가 사실이거나 당위라는 근거를 또 제시해야 한다.
2.12 근거제시는 무한소급되며 그 바탕에는 형이상학적 신념이 깔려 있다.
2.13 형이상학적 신념에는 대게 증명 불가능한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포함된다.
2.2 주장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주장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제시해야 한다.
2.21 관계가 깊음을 제시한 근거의 근거가 근거와 관계가 깊음을 또 제시해야 한다.
2.22 근거제시는 무한소급되며 그 바탕에는 연역법과 귀납법이 놓여 있다.
2.23 연역법은 근거(前提)의 참을 보장할 수 없고, 귀납법은 주장(結論)의 참을 보장할 수 없다.
3. 연역법과 귀납법의 한계에 대한 사례
<연역법> : 이성, 수학, 합리론 <귀납법> : 감각, 과학, 경험론
근거1 :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근거1 : A는 사람인데 죽었다.
근거2 : 이태호는 사람이다. 근거2 : B는 사람인데 죽었다.
주 장 : 이태호는 죽는다. 주 장 : 이태호라는 사람도 죽는다.
4. 노자 『도덕경』에서 찾아본 근거
[제3장]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고, 구하기 힘든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욕심낼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이 심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인의 통치방법은 백성들의 마음을 비게 하고 배를 부르게 하며,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하여 항상 백성을 무지·무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백성들 중에 현명한 자가 있어 그 지혜로 인위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억지가 없음으로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성인의 통치 : 억지가 없음으로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
통치자의 태도에 따른 백성의 행위 | 성인이 백성에게 요구함 |
통치자 | 백성 | 마음을 비게 함 | 무지·무욕하게 하고, 현명한 자로 하여금 인위적인 일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함 |
현명함을 숭상치 않음 | 다투지 않음 | 배를 부르게 함 |
재화를 귀히 안 여김 | 도둑질 안함 | 뜻을 약하게 함 |
욕심꺼리 안 보여줌 | 심란하지 않음 | 뼈를 강하게 함 |
〈이어지는 강의 예고〉
▪602회(2025.2.27) : 장자해설 32회, 이태호(철학박사/통청 인문학아카데미 원장/『노자가 묻는다』 저자) ▪603회(2025.3.6) : 장자해설 33회, 이태호(철학박사/통청 인문학아카데미 원장/『노자가 묻는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