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 관람을 가지 못하고 다른 날 따로 갔었습니다. 연극을 본지 꽤 오래되었고, 대학로 소극장에서 보는 연극은 처음이어서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간 극장은 정말 아담했습니다. 좌석이 맨 뒷자리였는데, 극장 관계자분이 앞자리에 앉도록 해주셔서 무대 바로 앞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배우와 마주한 무대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두근거렸습니다.
연극을 보러가기 전에 왠지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아 나름대로 이것저것 찾아보았지만, 연극이 시작하고 배우 분들이 등장하자 그전에 무엇을 생각했냐는 듯 바로 몰입되었습니다.
제가 본 공연은 ‘박동만 할아버지’ 역을 이호성씨가 맡으셨고, ‘이점순 할머니’ 역을 예수정씨가 맡으셨습니다. 어느해 봄, 동두천 신사 박동만 할아버지는 환갑이 넘으신 나이에 말씀 그대로 '대한독립 만세'를 하기위해 이점순 할머니의 집에 세를 듭니다. 처음에는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20만원이었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된다는 것을 이유로 월세를 50만원으로 올립니다. 30년전 남편과 사별한 후, 남편없는 여자라고 사람들이 얕잡아 볼까봐 일부러 욕을 하면서 강하게 살아온 이점순 할머니는 박동만 할아버지를 멀리 하려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와 할아버니는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나누고 정전된 집에서 함께 있고, 고스톱을 함께 치면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60세를 넘긴 나이라며 남들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밝히기 부끄러워하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인생은 60부터라며 당당한 모습을 보입니다. 여름이 되서 대청마루에서 한이불을 덮고 잠들고, 서로의 식사를 챙겨주며 오순도순 살아가며 서로의 자식을 본인의 친자식으로 여기며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가을에 할머니는 불치병을 얻게 됩니다. 결국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취득한 운전면허로 신혼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겨울에 돌아가십니다. 투병중에도 손을 놓지 않고 짜던 스웨터는 결국 할머니의 막네딸이 완성하여 할아버지께 소포로 보내드리게 되고, 할아버지는 그 스웨터를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공연은 막을 내립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안내하시는 분이 "웃기면 함께 웃고, 슬프면 그냥 우시면 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재밌기도 하지만 슬프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연극을 보면서 정말 많이 웃고 또 많이 울게 되었습니다.
쉽게 소화할 수 없는 하얀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백구두를 신는 화려한 패션감각과 야한 농담을 할머니께 건내는 능글맞은 모습은 마치 이호성씨가 아니면 안될것처럼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또한 억척스럽게 거친욕을 내뱉으시다가 할아버지와 사랑을 나누면서 본연의 부드러움을 드러내는 이점순 할머니의 모습은 예수정씨의 인자한 미소로 더욱 빛이 났습니다.
이점순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자신이 떠난 후를 준비하는 장면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에는 숨을 넘길때마다 목구멍이 아플만큼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고개를 숙인 할아버지의 등에 기대면서 '나때문에 울지마'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제가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듯이 감정이 이입되어 엉엉 울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로 바로 앞에서 연기를 바라보고, 연기에 몰입하여 진짜로 눈물을 흘리는 배우들의 모습을 본 것은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등에 엎혀서 동네 한바퀴를 돌자고 조르던 할머니의 모습을 연기할때 정말 눈물과 콧물을 흘리시던 예수정씨의 모습은 더욱 가슴을 짠하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과제라는 이유로 보게되었지만, 한시간 반동안 공연을 본 후 배우분들이 인사를 하시자 마음으로 부터 박수를 치게 되었습니다. 점점 겨울의 정점으로 향해가는 요즘,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줄 수 있는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그동안 연극은 접하기에 먼것으로, 학생이 대하기에 값비싼 예술로만 느끼왔는데 조금은 더 가까워 진것 같습니다. 앞으로 가족들과 친구들과 연극 공연 관람을 즐겨야 겠다고 느꼈습니다.
첫댓글 마져요~할머니의 그 대사..진짜 가슴 아프죵.... 자주 찾아주세요~더더 좋은 모습보여드리도록 노력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