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토요만필/ 넌 나를 짜증나게 했어 /김용원
한국이 일본보다 문화는 물론 경제면에서도 앞서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소니의 워크맨이며 코끼리전자밥솥, 스즈끼오토바이 등 고급스런 제품을 보면서 왜 우리는 저만한 걸 만들지 못하나. 왜 주변 국가를 그토록 못살게 굴었으면서도 저렇게 잘 살고 있는가. 부러움을 지나 분노까지 느꼈었다. 그 부러움과 분노는 곧바로 자존심 손상으로까지 전이됐다.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다. 그랬는데, 그 일본을 우리가 앞서고 있다니! 말마따나 국뽕일 뿐이야. 그저 몇몇 부분에서 그렇겠지. 마치 평균점수는 형편없는데, 어떡하다 한 과목만 뛰어나게 잘한 걸 갖고 잘난 척 으스대듯이.
그런데, 국뽕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다방면의 객관적, 국제적 수치를 보면서 팩트는 팩트라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훌쩍 커버린 대한민국이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을 어떻게 감히 앞지를 수 있었겠는가, 곰곰 생각해 봤다. 세계 최고의 평균지능지수, 학구열, 빨리빨리근성, 인프라구축정책 성공, 근면성에 민주화 안착 등등 여러 복합적 원인의 종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결론을 얻으면서 문득 덧붙여지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기개(氣槪)였다. 사전적 풀이로는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말한다. 대국에 둘러싸였어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우리는 그들을 왜노옴, 때국노옴, 쏘련노움, 미국노움, 놈자를 붙여 비하해 버린다. 그러면서 그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대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면 ‘×도 아닌 것들이 까분다’고 열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그만큼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건 아니다. 우리의 반응자세의 바탕을 뜯어보면 사실은 그들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그들에 대한 우리 자신의 열등의식에서 솟구치는 반사행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치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 페라리 뒤에 서 있는 경차 운전자가 “짜아식, 생긴 건 꼭 꼴뚜기같이 생겨갖고, 돈 좀 있다고 온갖 폼 다 잡고 자빠졌네.”라고 비하하는 것은 나도 그만한 여유가 있다면 저런 차를 몰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부러움, 질투의 반사행위인 것과 같다.
우선 나라가 분단되었다. 번번한 지하자원 하나 없다. 중국과 일본, 구소련의 3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다 우리의 은근한 경쟁자이며 동시에 적국이나 진배없는 일본에 비해 인구는 한 배 반이 적다. 따라서 호감을 살만한 제품을 만들어내더라도 내수가 받쳐주지 못해 수지가 맞지 않아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만든 물건을 외국에 내다 팔아야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알라스카에 냉장고를 팔아야 했고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이불을 팔아야 했다. 이른바 틈새시장밖에 물건을 팔 데가 없었다. 그러자니 몇 배의 인내와 노력과 정성을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하여 값이 싸면서도 가격 대비 더 좋은, 아니 월등히 좋은 품질을 만들어내야 했다. 또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똥방자가 주인의 똥을 맛보며 건강을 가늠하듯 소비자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물론 일본도 패전 후의 비참함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지금껏 별볼일없는 나라꼴을 유지하고 있었을 게다. 그러나 운 좋게도 한국에서 6.25전쟁이 터졌다.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모든 군수물자는 가까운 일본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일본은 땅 짚고 헤엄치듯 그야말로 횡재를 만나 패전 후 복구는 물론 부를 쌓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이웃의 불행이 가져다준 행운이었다. 그런데다 대한민국보다 두 배 반이 많은 인구 덕분에 내수로도 버틸 수 있어 굳이 상품을 이고 지고 사막이며 밀림 속을 누비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희희낙락했다. 주변국들을 깔보며 말 그대로 국뽕에 취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결과는 조금씩 조금씩 온도가 높아지는 걸 참다가 결국 삶겨죽는 깨구락지의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사이 하찮게 여겼던 대한민국이 욱 커버리자 <혐한>이라는 진통제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한국에 엽기적인 대통이 나와 한동안 자존심을 상당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역으로 일본 꼴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넌 나를 짜증나게 했어.”라는 저질의 복수심 종합이 오늘의 꼬라지가 되고 말았다.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