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지금...내가 세상에서 - 예수는 지금 제자들을 남겨 놓는 시점에 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11절에 이어 예수는 아버지에게로 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이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지상의 사역 가운데서 제자들을 보호하셨던 때와 떠나가시는 때 사이의 대비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셨다.
이 말을 하옵는 것은 - 바렛에 의하면 '이 말'은 14:1-16:33의 고별 설교도 포함한다고 한다. 이 해석의 근거는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의 헬라어가 사용된 15:11로서, 그곳에서는 그동안 예수가 말씀하셨던 것들을 포함하여 '이 말'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옵는 것'이란 표현이 미완료 과거형이라면 고별 설교도 포함될 수 있으나 현재형이므로 '이 말'은 단순히 1-12절까지의 기도 내용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 이 표현은 고별 설교에서도 언급되었다. 그 설교에서 '기쁨'은 하나님의 보호에 따른 기쁨이다. 예수가 잠시 제자들과 이별하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영원하며, 성령의 강림으로 제자들은 영적으로나 지식적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므로 그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확실히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고별 설교에 있어서 기쁨의 근거다. 본절에서도 역시 같은 차원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 17:14]"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 '아버지의 말씀'은 예수를 통하여 계시된 메시지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예수가 성부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예수가 여러번 자신을 성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 표현할 때 이미 암시되었다. 한편 '주었다'는 '위임하다', '위탁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므로) 제자들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게 됨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본절에서 '데도카'는 완료형으로서 제자들이 이미 받은 말씀과 연관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제자들에게 그동안 예수가 가르치신 내용들에 대한 것이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사오니 - 제자들이 미움을 받을 것을 대화식으로 말씀하실 때와는 달리 기도 가운데서 제자들의 고난을 위해 기도하심은 자기에게 소간 자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 본 구절을 혹자는 '(내가 세상적이지 않음같이) 저희도 세상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본 구절을 헬라어 본문대로 번역한다면 '(내가 세상에 기원을 두지 않았듯이) 저희도 세상에 기원을 두지 않습니다'로 해석된다. 이 말은 출신이나 소속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개역 성경처럼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서 예수는 제자들도 자신과 동일한 출신과 소속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치신다. 제자들이 이러한 신분을 소유하게 된 근거는 어떤 인간적인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또한 영으로 거듭났다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예수에 의하여 세상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이며 예수에게 접붙임을 받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다.
[요 17: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 예수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실 때까지는 세상에 머물러 계셨다. 이와 같이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자기들에게 위임된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여전히 세상 안에 있어야 한다(11절). 그래서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으나 예수와 함께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다.
예수의 이와 같은 표현이 당시의 종말론적 기대 즉 예수 재림시에 있게 될 휴거에 대한 사상을 수정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그러나 이 추정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절에서 강조된 것은 종말론적인 내용이 아니라 제자들의 사역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바렛은 본 구절의 표현이 성도와 세상의 분리를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한이 본서를 당시의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에 대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기록했으며 또한 본절이 세상과 엄격한 분리를 반대하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으므로 이 견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아무튼 고전 5: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도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세상과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성도들이 그렇게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 - 이 말은 제자들을 위한 예수의 간구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구속이 있을 것에 대한 기도를 의미한다 '악에'의 헬라어 '에크 투 포네루'에서 '포네루'가 남성도 되고 중성도 되므로 본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남성:이렇게 해석하는 자들은 악한 자에게 넘어간 가룟 유다의 사례와 예수의 고별 설교 가운데 언급된 이 세상 통치자들에 대한 기사 같은 부분을 근거 구절로 삼는다.
그리고 그들은 요한의 서신서에 언급된 '포네론' 또는 '포네루',가 의미상 '악한 자'를 뜻한다고 보아 본 구절도 '남성'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 번역이 이 견해를 취한다. (2) 중성:이렇게 해석하는 자들은 세상에 실제로 악이 있다는 것과 또한 세상 자체가 악하는 것(요일 5:19)을 들어 악의 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 개역 성경도 이 견해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견해를 지지하면서 혹자는 악이 이세상에 존재하는 무신론적 경향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 구절이 '남성'이나 '중성' 어느 것으로 해석될지라도 의미상 큰 차이가 없다. 한편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테레세스'로 '지키다', '보호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 구절 전체를 헬라어 본문에 따라 번역하면 '악(한 자)에게서 보호하시기 위함'이 된다. 개역 성경은 헬라어 본문에 없는 '빠지지 않게'라는 말을 첨가시켜 '보전하다'라는 말을 강조시키고 있으나 본 구절에 사용된 전치사 '에크'가 '~에서 벗어나를 의미하므로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요 17: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4절에 언급된 말씀이 어순만 바뀌어서 반복되고 있다. 즉 두 절에서 '우크 에 이신'와 '여 투 코스무'의 순서가 뒤바뀌어졌. 14절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이유로 서술되었지만 본절은 악으로부터 보전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요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 '거룩하게 하다'는 것은 성별'에 대한 것으로 세상과 분리된 삶을 의미한다. '거룩하게 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하기아조'는 '깨끗하게 하다'를 뜻을 가진 '카다리조'와 다른 측면에서 사용된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의 말씀에 의하여 깨끗함을 받았다.. 물론 그들이 깨끗함을 받은 것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과 분리된 삶을 의미하는 '성별'과는 다르다.
이미 깨끗하게 된 제자들은 진리안에서 깨끗게 된 그 신분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는 지금 제자들이 그러한 삶을 살수 있도록 해 달라고 성부께 간구하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예수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그 자신과 같은 거룩함이 은혜로 그들에게 주어지기를 원한다.
구약에서 '하기아조'는 선지자를 불러 세상과 구별하여 세울 때 사용되었으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에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을 맡겼다' 따라서 예수는 자신이 성부에 의해 거룩하게 되어 세상에 보냄을 받으심 같이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 파송하실 때에 하나님에 의해 성별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진리'는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는 매개체이며 거룩하게 하는 실행자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가 지상 사역동안 선포하셨던 것이며 성령은 그 선포된 말씀을 근거로 활동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본절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계시만이 성별을 가능케 한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진리이며 생각하시는 것, 행하는 것, 모두가 동질의 진리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예수에 의하여 선포되어 현실 가운데서 '진리'로 나타나신다.한편 본절에서 '진리'는 헬라어 본문에서 관사 없이 사용되었다. 이는 앞의 '진리'와 구별시키기 위함이다. 즉 상반절의 '진리'와 구별시키기 위함이다. 즉 상반절의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여기서는 그 말씀이 '참되심'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