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감독 차범근 간증
차범근 선수는
1978 년 다름슈타트에서 한번 뛰고 (그의 첫 경기기 <보쿰>과의 경기였다) 군대문제 해결울 위해 한국에 다시 들어갔다. 그가 다름슈타트에 약속한 날에 독일로 돌아가지 못하자 계약위반을 제기하는 다름슈타트와 문제가 되었다. (다름슈타트는 그해 2부리그로 떨어졌다).
그는 1978년 6월 22에 독일에 다시 돌아와 다름슈타트의 이해를 구하고 <브레멘>에 입단하려고 신체 검사를 받다가 연봉 25만 마르크에 <푸랑크푸르트>의 입단제안을 받아 1979-1980시즌에 <Eintracht (아인트라흐트) 푸랑크푸르트>팀에서 뛰어 첫해에 12 골을 넣어 축구잡지 <키커, Kicker>지는 80년 첫해에 그를 표지 인물로 선정된다. 이후 1983년까지 당시 강팀의 하나인 푸랑크푸르트에서 122 게임에서 46골을 넣는다.
그는 1983년 연봉 52만 6천만 마르크를 계약하고 <바이어 (Bayer) 레버쿠젠>으로 옮겨 1989년 6월 19일 퇴역하기까지 그곳에서 뛴다. 그는 다른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축구, 가족, 신앙에만 전념한다. 그리하여 레버쿠젠의 주전멤버로 활약해 레버쿠젠을 중하위권팀에서 상위권팀으로 올리는데 일조를 한다.
그는 1989년< 레버쿠젠>에서 퇴역시까지 총 308 분데스리가 게임에 출전해 총 98 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해 축구 트레이너 자격증 따고 11월 10일 한국으로 돌아온다.
차범근은 중고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미션학교를 다녔고 형식적으로는 주일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믿는 아내를 결혼해 형식적인 교회참석을 하였다. 그리고 축구선수로 성공하여 바빠지자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1972년 신인왕이 되었고 1973년 이스라엘과의 승리전, 1976년 말레시아아 개막전에서 4대1로 지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골을 넣기 시작해 4대4로 비기어서 자기가 할 수없던 일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76년 부터 78년까지 일년 이상 한국에서 그의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원인을 모르게 무릎이 아팠다. 그때 76년 12월 12일에 치료를 위한 기도를 받기위해 믿는 축구선수 이영무 를 초청하였다. 그리고 아내의 여자친구와 이영무를 같이 초청하였다. 아내의 여자친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차범근 선수가 하나님을 믿을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전에 체험했던 일들을 다시 기억하고 하나님앞에 회개하기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축구선수로서 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썼다.
그래서 10년간 분데스리가에서 축구를 하면서 상대편 선수들로부터 고의적인 반칙으로 수없이 부상을 당했으나 보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10년간 분데스리그께임에서 단 한번 밖에 노랑색 카드 (예로우 카드)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86년엔 전 스포츠인중 한사람에게 주는 페어플레이어 상을 받았다.
그의 간증은 아래 파일을 두두리면 문자로 볼 수 있습니다.
3월 28일 주일설교 양영자 선교사(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간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