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3 설 미사)
신앙인들의 신년 운세
올 해는 황금 돼지띠의 해입니다. 기해년이지요. 돼지는 재복과 풍요의 상징입니다. 꿈도 돼지꿈이 최고고, 저금통도 돼지 저금통이 최고입니다. 또 돼지고기가 최고로 맛있습니다.
<생일로 보는 신년 운세>
젊어진다/살이 빠진다/여행을 간다/행복해진다/커플이 된다/돈이 들어온다/복원에 당첨된다/못생겨진다/살이 찐다/ 돈을 잃어버린다/솔로가 된다/멍청해진다/노잼이 된다
날짜 순서대로 이렇게 점이 쳐져 있는데, 어떤 이들은 환호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낙심할 것입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교묘하게 음력인지 양력인지 밝히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음력 생일로 보면 부정적인 운세인데, 양력 생일로 보면 또 긍정적인 운세입니다. 결론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더 나쁘게 말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좋은 결과일 수밖에 없는 점쟁이들의 상술입니다. 그런데 점은 재미로 하다가 믿게 되고, 믿게 되면 실제 현실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미 운명 지워진 점괘대로 모든 사건과 상황을 끼워 맞추게 됩니다. 사실 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도 사람들이 점집을 많이 찾아간다 합니다. 주 고객은 정치인, 연예인, 사업가, 그리고 놀랍게도 학교 선생님들입니다. 고학력자들과 재능인, 그리고 재력가들입니다.
신부인 저도 점을 잘 칩니다. 가령 <하늘에서 흰 전선 두 가닥이 내려 와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양 손에 한 가닥씩 잡았어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죠. 누가 요상한 꿈을 가지고 오면 그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 잘 할 수 있도록 좋게 포장하여 이야기해줍니다. 믿는 대로 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헛된 꿈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수준을 잘 보고 개꿈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것을 역이용하여 그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안심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지요. 괜한 불안이 사고를 불러 오는 법이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또 용하다며 찾아온다는 거죠. 그 때는 단호히 꿈의 무용성을 이야기해주어야지요.
각설하고 신앙인들의 운세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운세를 미리 점쳐서 알아내고 화를 막고 복을 불러오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미신을 믿는 외교인들의 풍습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이미 정해진 운명의 결과는 없으며, 어떤 결과이든지 그것은 하느님 계획안에서 필요한 과정이며,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신앙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처신하느냐는 인생의 태도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 교포 사목이 어떤 신부에게는 지겨운 유배일 수 있지만, 어떤 신부에게는 즐거운 소풍일 수 있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민수기 말씀은 복의 기원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복을 내리겠다.’ 복의 기원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데에 있습니다. 또 야고보서는 수복과 재복에 맞서서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고 가르칩니다. 또 루카 복음은 종말 때 깨어 준비하고 있는 종이 복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진복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뜻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살면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축복입니다. 심지어 가난도, 모욕도, 불편함도, 고통도, 죽음도 모두 축복입니다. 인간적으로 모두 기피하는 것들이지만 그 순간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면 모든 것들이 의미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어느 한 순간도 무의미하거나 허무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인생의 모든 점들이 연결되어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어머니 탈상을 앞두고 있는 저는 살아생전 어머니의 희로애락이 모두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는 지금의 어머니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어머니 인생의 어느 한 순간만을 축복하고 있지 않습니다. 행복했던 순간이든 불행했던 순간이든, 죄를 짓는 순간이든 선을 쌓는 순간이든 그 모든 순간들을 빠짐없이 축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모로부터 지음받기 전부터, 아니 세상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은 나를 점지하셨고, 인생 통째로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잘 하는 순간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못하는 순간도 사랑하셨고 회개의 순간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인생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미 복된 것입니다. 그러니 내 맘대로 어느 선까지 행복하다 혹은 이 선을 넘으면 불행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대한 불효이고 교만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 우리가 드리는 합동 위령 미사는 축복 받은 내 인생의 뿌리에 감사하는 예식이 됩니다. 그 뿌리는 돌아가신 부모이고 조상들입니다.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고 돌아 가셨든 신앙을 전혀 모르고 돌아가셨든지 혈육으로 그분들은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내 인생이 그분들의 인생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분들의 공로와 희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이제 우리가 그분들에게 기도의 공로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어떤 부분은 좋고 어떤 부분은 나쁩니다. 이는 성격뿐만 아니라 신체적 결함과 병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중에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선사 받은 인생을 부분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듯이 저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비록 약점이 된다하더라도 말입니다. 부모가 좀 학력이 딸리면 어떻습니까? 부모가 좀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부모가 좀 장애가 있으면 어떻습니까? 제가 특별히 어머니께 감사드리는 것 중에 하나는 단연 신앙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초대하신 분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여기 신부로 서 있고요. 그 이상의 유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설날을 맞이하여 천주교식으로 제사를 드립니다. 이 미사성제 안에서 우리는 돌아가신 그분들과 만납니다. 지상교회와 천상교회가 만나는 이 자리에 언제나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기해년에도 여러분 가정에 축복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첫댓글 항상 열과 성을 다하시는 김영훈 미카엘신부님 께서도
새해엔 지난해 보담도 더욱 더 영육간 건강하시고 복도 듬뿍 받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