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서둘러 나섰습니다. 한라산 영실가려던 계획은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요며칠 날씨가 포근해서 눈이 다 사라진 듯 해서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영실 쪽으로 한라산 등반의 의미보다는 설경을 보고자하는 것이었는데 설경은 다음 폭설 때 다시 시도하려고 합니다.
일전에 다녀온 신천목장 뒷편 제주올레 03코스를 목표로 우리가 여름 가을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낸 신산리 앞바다부터 출발해 보았습니다. 출발지점도 목표지점도 모두 너무 근사한 곳이라 가는 길도 근사하리라 믿으며 출발! 날씨도, 햇빛도 적당하니, 서울 쪽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온다고 하는데 여기는 한 겨울 옷차림도 아닌데 덥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신산리 앞바다 농개에서 표선쪽 해안도로는 차도 사람도 다닐 수가 없이 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지도로 보니 정말 쑥 들어가 있네요. 씰에스프레소에서 호동이식당이라고 되어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 만을 지나서 신산리 쪽을 바라다보니 멀리 오른 쪽에 우리 차가 보입니다. 터닝포인트라고 명명해둔 남미풍의 건물들이 그럴싸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주바당길 18이라고 표시된 이 길은 신산리 앞바다와 유사한 바다와 빌레를 쭉 바라보며, 바라방파제 위에 놓인 길 따라 걸을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방파제 윗길이 아주 좁지만은 않아서 태균이도 넉넉하게 걸어다닐 수 있었고, 단 높이가 1.2미터 정도 되니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술을 요하기는 합니다.
길게 이어진 방파제길을 준이까지 덩달아서 올라와 걷더니 내려가야 하는 지점에서 혼자 못하고 마냥 서있습니다. 알아서 하게 일부러 내버려두었더니 요지부동 서있기만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서 내려오는데 도와주고...
훨씬 좁은 방파제 위를 날라다니는 완이를 보니 어지간히 높은데 올라가는 걸 좋아합니다.
제주도 용어로 바닷가로 불쑥 튀어나와 돌출된 지형을 코지라고 부른답니다. 유명한 섭지코지가 있고 오늘 우리는 주오코지에서 한참 바다보기를 즐겼습니다.
신천목장 뒷편 올레길 초입을 목표로 삼았지만 가다보니 평소보다는 좀 길겠다 싶기는 했습니다. 가까이 보이는 것 같아도 해안길이 일자가 아니라 구불거리기에 거리가 더 있었을겁니다. 신천목장 뒷편 올레 03코스 다 건너가면 좋았겠지만 초입까지도 벌써 7천보를 넘어섰기에 돌아가는 노정을 고려하면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간 길 그대로 돌아오는 길, 방파제가 높고도 길게 이어져 있어 돌아오는 길도 비슷합니다. 단 잠깐 다시 들렸던 주오코지 바닷가에서 기어이 물에 발을 담군 완이. 신발 양말은 물론 바지무릎까지 다 젖었으니 찝찝함에 몸부림치면서도 자기가 한짓이니 찍소리도 못하고 감히 벗어내지도 못합니다. 결국 방파제 위에서 신발을 벗어젖히고 양말발로 걷는데 신발챙기라는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신발들고 걷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중도에서 신발을 바닷가 쪽으로 떨어뜨리고... 예전같으면 무심하게 상관도 안하고 그냥 내처 걸었을텐데, 지금은 신발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신발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실 방파제길이 바닷가 쪽으로는 사선이 아닌 그냥 일자라서 내려가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래도 기어코 내려가서 신발을 챙겨 신고는 다시 올라오지도 못하고 방파제 벽에 붙어 걸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조금 떨어져있지만 바로 옆에 바닷가길이 잘 나있건만 그런게 아직 보일리는 없겠지요.
그렇게 쇼를 해가며 돌아오니 무려 13,275보를 걸었네요. 만보 시작하고 가장 많이 기록된 걸음수입니다. 이제 만오천보로 늘려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살짝~~ 듭니다.
걷기는 참 훌륭한 선택이었고, 겨울내내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빛나는 활동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도 신나게 걸어봐야죠^^
첫댓글 한편의 영화같습니다.
태균씨도 많이 슬립해져 보이고 준이씨와 완이도 활기 차 보입니다.
겨울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 같습니다.🍒‼️
제주살이 글을 보고있자면 한없이 부럽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이건 대표님이 마치 제주 홍보대사이신 것 같기도 하고.ㅎㅎ 저도 다 접고 가족들이랑 매일 제주 해안을 돌고싶어지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