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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짧은 산길 다녀와 급 번개로 이뤄진 대구 선제지부장님과 타키 총무님과 가산산성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서울 한양도성길이 정과 망치로 다듬은 돌 문화로 웅장한 느낌과 사람 사는 풍경이 그려졌다면, 부산 금정산성은 시원한 느낌과 탁 트인 조망이 멋졌는데, 칠곡의 가산 산성은 웅장함은 없지만 지천으로 자라는 야생화와 억새 그리고 어디서 주워온 건지 모르겠으나 멀리서 보면 마치 깨알을 차곡차곡 쌓은 듯 멋진 곳이다.
오늘 보다 내일 그 후인 앞으로 보름에 만개할 수천 송이의 산수국을 생각한다면 꼭 한번 추천하고 싶다.
식전 댓바람같이 찾아온 타키님의 천리마로 도착한 가산 산성 남문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포곡식 산성으로 인조 때인 1640년에 이정웅이 장정 10만 명을 동원해서 초축(初築)했다고 한다.
인근에서 성 쌓기에 불려온 장정들이 끝인줄 알고 좋아했겠지만 이후 효종 때 관찰사 이만과 이지충이 중수했고 숙종 때 관찰사 이세재가 외성을 추가로 쌓고, 영조 때 정익사가 내성 가운데 중성 벽을 막아 최종적으로 삼중(내성, 중성, 외성)의 형태의 성이 완성되었고,종 3품(대령, 혹은 국장급 )의 도호부사를 두어 성내에 읍치(邑治)를 두어, 인근 의성, 군위, 의흥, 신녕, 하양, 경산지역을 관리하였다.
좋게 보면 다 좋은데 나쁘게 보면 산중턱 위에 칠곡 도호부(관아)가 있어 백성들이 민원 넣으려면 800 고지 위에 올라와야 했기에 고생 좀했을듯 한 곳이다.
인조 때부터 1819년까지 읍치 기능을 하다가 갑오개혁 무렵인 1895년에 고종 때 75개의 읍격이라할수 있는 도호부는 폐성(180년)된 후에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큰 홍수로 산성의 건물은 대부분 사라졌다가 1977년 남문, 동문, 중성문이 복원되었다
11km의 성을 관리했던 천주사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1701년 경상감영의 명에 의해 건립된 가산산성 수호 사찰로 승병을 뽑아 궁술을 연습시키고 외성 성벽 보수를 담당했던 사찰이다
참고로 조선 숙종 때 쌓은 대표적인 성으로 북한 산성은 용암문 아래 중흥사가 관리
부산 금정산성은 국청사가 관리 보수를 했는데
스님들께서 늘 성 쌓고 보수했으니 낮에는 산성관리 밤에는 불경 공부했으니 대단했던 분들이다.
가산 산성은 둘레 11km 면적은 2,2㎢로 대규모의 성으로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뤄져 있으며 문은 4대 문과 중성 그 외 성벽 따라가며 암문, 수문, 치성,포루 등 100여 개의 시설이 있으며 가운데 관아, 군영, 창고, 사찰, 마을터가 성안 곳곳에 남아있다.
진행 경로
남문-남포루-동문-가산정상-북포루-북문-서포루-가산바위-중문 왕복(100m)-남포루-산성마을터-관아터-장대터-가산정상-입암바위-치키봉-(출입금지구간) 가산 탐방지원센터
지도에 보시면 *포루가 나오는데 남포루, 북포루, 서포루가 있으며 어느 성벽을 가더라도 성곽 시설물인 포루를 만나는데 포루(砲樓)와 또 다른 포루(捕樓)는 한자(漢字)가 다르면 뜻도 다르다.
첫 번째 포루(捕樓)는 성위 전망 좋은 곳에 지은 집이고
두 번째 포루(砲樓)는 적이 올 때 공격하는 무기 포를 뜻하는데 지도에서 보듯 공격용 포루(砲樓)는 없는듯하다
이제 가볼까요
타키님이 미리 답사를 다녀오셨다고 앞장을 서긴 서는데 쪼매 앞서더니 뒤에서 따라온다.
성은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동문에서 북문으로 진행한다.
성문은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숨구멍으로 저승과의 경계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던 임란과 병자호란 끝난후 뭘 지키려고 이 높은 산중에 10만 명을 동원해 돌을 다듬고 만들었는지
예전 같으면 잡혀와서 일했을 두 분
세상 많이 좋아져 성벽 위를 걷고 있고
남문을 지나면 산성길은 자연석 그대로 쌓았다
마치 시골집 할매방 한쪽 벽에 매달아 놓았던 메주를 닮은 돌을 이리 깨고 저리 깨고 차곡 차곡 쌓아
어느 누구도 이곳을 올라오지 못하게 해 놓았다.
거인은 못 들어오고
쪼꼬미만 기어 들어와야 하는데
지부장님
오전이라 바람 시원하고
팔공산 주능선 방향
소나기가 한줄기 오면 좋은데
대구는 늘 이렇다
오기 싫던가 안 온다.
도덕산 방향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산 아래도 이렇게 시원할 거라며 지나는데
산 아래는 그야말로 찜통이란다.
앉아 놀기 좋은 곳이데 뒤쪽은 절벽이다.
바위 앞으로 묘(墓) 하나 있을 법한 자리로 보이고
오래전에 지붕이 있었던 건물이 있었던가? 기와 파편이 제법 보인다.
예전에 남포루 건물이 있었을 자리인 것 같고
타키님은 운동삼아 언제나 냉장고를 짊어지고 오시고
남포루(南捕樓) 있던 자리라고
고만 고만한 돌을 사각형 넓이로 쌓아 놓았다.
4 수문터
예전에 중성 안 산성마을 있던 곳으로 수문(水門)이 있었으나 지금은 세월 앞에 허물어지고 흔적만 남아있다.
가산 산성에는 남쪽과 북쪽으로 모두 7개의 수문이 있었지만 수문은 대부분 세월 앞에 유실되어 정확한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무너진 돌 무더기 사이로 물이 흐르는 모습만 보인다
이곳에서 가산바위로 가는 것보다 동문(東門)으로 돌아가서 가산 정상 북문을 지나 가산 바위로 진행한다.
중문과 동문, 진남문 갈림길
동문으로 가는 길
성터 위로 지나오는 지부장님과 타키 총무님
단단해 보이는 동문 위의 두 사람
가산 산성위를 걷다보면 동문부터 성벽길은 이렇게 걸어가는구나 하는걸 느끼는데 한바퀴 돌아 올때까지 멋진 모습이다
동문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게 복원은 했으나
진남문 같은 멋스런 루각(樓閣)은 없다.
성위로 올라가면 웃자란 풀이 허리 높이까지 자라있지만 이런 곳은 눈이 찾는 길보다 발이 먼저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성터 위로 잡풀이 생존 경쟁에 돌입하여 치열하게 자라는데
한양도성이나 금정산성과 다르게 성터 위로 풀이 많고 걷는 맛은 이곳이 한수 위라 보인다.
식물이 이렇게 웃자랐을때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을 초대해서 예초기로 싹 밀어야 하나 아니면, 지 맘대로 자라게 두는게 좋을지
앞 길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두는것도 좋을것 같다.
돌이 산에 있는건 당연함인데
마치 메주를 차곡차곡 세워 놓은 듯 한 성으로
자연스러운 한편 어딘가 모르게 자연을 막아선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지나온 동문과 한티재 방향
그리고 올라가야 할 유선대나 용바위 방향
팔공산 방향
가산정상으로 올라가야 할 능선
식물이 웃자라는것과 사람이 웃자라는건 분명 다르다
사람이 웃자라면 쓸데없는 욕심과 지나친 과시욕 그리고 허영심만 생기니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풀밭 사이로
지나온 능선과 팔공산 도덕산 방향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케리어 선생이 이곳에 와서 에어컨을 발명할 생각을 한건 아닌지 모를 정도로 시원하다.
잠시 쉬었다가 가는데
오늘은 거리도 짧고 성 쌓던 민초들의 애환도 느껴 보고자 나무 아래에서 막걸리 한잔하고
가팔환초 아니면 금호강 환종주를 생각하시나
뭐가 좋을까
새차,새집,새로운걸 바란다면
꼭 가산산성 한바퀴 추천
가산 정상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올 때
가산 정상석이 보이고
유선대, 북포루로 가는 길에
북포루(北捕樓)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처럼 산성이 많은 나라도 또 있을까
백제 660년,고구려 670년
신라 마지막 56대 경순왕까지 935년
고려 34대 공양왕
조선 임란과 병자호란 후인 숙종대까지 성을 쌓았으니 그야말로 밥 숟가락 놓을때까지 산성을 쌓았던 민족으로 전국 산성은 2천3백 개 정도라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산성이 있을 수 있기에 찾아보면 더 있을 것 같고 전국 읍성은 15세기에 96개
16세기에 가장 많은 160여 개가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 사라졌다.
전망이 아주 좋아 군위와 의성땅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북포루에서 북문(北門)을 찾아가는 길에
성위로 물레나물꽃이 노랗게 피어있는데 마치 달맞이꽃처럼 보인다.
이곳부터 야생화 천지로 눈은 즐겁지만
가산바위까지 발 아래는 뭐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잡풀이 빼곡한 구간이다. (분명 멋진곳은 맞지만 안 멋지게 보일수 있음)
산수국 천지건만 아직 군데군데 피어있어 일주일 가량 더 기다려야 만개할 것 같다.
산수국
북쪽으로는 야생화가 많이 있어 지겨운 줄 모르고 걷는데
긴바지는 꼭 입어야
골등골나물?
오늘은 정모하는날 골등골은 다모여
북문 옆 수문(水門)이 있던 곳에서 세수하고...
저기 아래 수문이 있었던 자리인데 홍수로 사라진지 오래
팔공산 소원길 옆에 북문이 있던 자리
여기 북문 있어요!
북문 있던 자리로 지금의 진남문처럼 수문과 함께 있었던것으로 상상이 가는데
그리고 동문이나 서문보다 북문만이라도 복원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것 같다는 생각도
세계에서 복수초가 가장 많은 군락지인데 올해는 별로였다고
북쪽은 바람이 없고 덥기는 드럽게 덥다.
에고 더버라
팔공 지맥길에 들어서서
서포루 찾아가는 길에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을 지나
한국전쟁 당시 대구를 방어하기 위해서 유학산-다부동 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국군 1사단 11 연대가 북한군 14 연대를 맞아 이곳 일대를 방어했으며, 미군이 b29 비행기로 포탄 40톤 투하한 가산 산성이다.
국군과 학업을 접어두고 일선으로 달려온 학도병의 두려움
이때 폭격으로 인해 성벽이 무너졌고 보수한다고 했지만 지금에 이른다.
거친길도 자주 걷다보면 무덤덤해 지는데
누군가 이곳에 와서 걷다가 마음에 안든다고 민원 넣으면
공공근로 투입해 닭털 뽑듯이 싹 밀어 버릴것 같다.
암문 지나면 서포루가 나오는데
가팔환초 할 때 올라오는 등로
서포루 인근의 흰 까치수염이 자라고
하늘나리도 보이고
서쪽으로 오니 다시 에어선생이 찾아와 시원하게
바람 좋은 성벽길
가암 바위에 찾아서
지부장님과 타키님이 과일을 꺼내 주셨고
가산바위 정상부 인근에 자리하는 넓은 바위 봉으로
넓은 자리 윗부분은 평탄하고 주위는 모두 절벽인데 조망은...
바위 가운데 큰 구멍이 있는데 신라 고승 도선대사가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어 지기(地氣)를 눌러 놨지만 관찰사 이명웅이 성을 쌓을 때 이를 없애 버렸다고 한다.
성벽길 따라가며 중문을 찾아간다.
중문
중문 가팔환초 때 이길로...
문어 다리 나무를 지나서
암문
여리재는 예전에 대왕재 혹은 다부동이나 소야 고개로 넘어가던 옛길로써
고려 초대왕인 왕건이 신라를 도와줄까 하고 견훤과 동수대전에서 한판 붙으러 갈 때 호기롭게 지났고
4대 왕인 광종이 도덕암에 계시던 혜거대사를 국사로 모시려고 찾았던 길
그리고 조선 19대 숙종이 파계사에서 기도 후에 연잉군(영조)을 얻었다는 품격있는 고갯길이다.
크게 깨지거나,모시거나, 아들 낳거나 ...
여기 암문 있어요?
거인은 가라!
남포루 내려가기 전에 조금 전에 지났던 4 수문터에서 산성 마을로
산성마을 터 근처에서
가산에는 6,25 전쟁을 겪으며 커다란 나무는 대부분 사라졌는데
산성 마을 인근으로는 오래된 고목이 곳곳에 자리한다.
옛 칠곡 도호부에서 관리하셨던 고을 수령들의 불망비와 송덕비 몇 기 있고
나무다리도 건너고
산성마을터 (해발 773m-810m)
아주 오래전 백성을 모아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 주고 성안에 살게 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 전쟁( 미군이 b29 비행기로 포탄 40톤 투하)과 홍수로 민가 수가 줄었고 1970년대 박정희 때 강제로 철거하여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개망초꽃만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산성마을
망초,망초,개망초
산성마을터를 지나면 관아터가 나오고
관아터
칠곡도호부의 관아터로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북구 읍내동에 있던 팔거현을 조선 인조 18년에 가산산성 안으로 옮기고 칠곡도호부로 승격한 곳이다.
지금으로 본다면 읍(邑) 정도의 규모이며 무려 180년간 칠곡도호부의 중심이었던 곳인데
산아래 사는 사람들이 올라오고 내려가기 귀찮아 이웃간에 닭한마리 잡아 먹은걸로는 민원은 넣지 않았을것 같다.
관아터에도 개망초꽃이 피어있고
위로 올라가면 가산정상이 나온다
산수국
산수국과 궁댕이가 이쁜 호박벌
가산 정상석과 장대터
읽어 보시고
장대터에서 나온 기와 파편들
바람 좋은 곳에서
치키봉으로
암문을 지나고
또 다른 암문을 지나
지나온 가산정상과 용바위 방향
할배,할배바위
이곳에서 기도 후 자식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고
산세가 곡식을 까불 때 쓰는 키와 닮았다고 해서 치키봉이라고
이곳에서 남쪽으로 이어 가야 하는데 국립공원 비법정 구간이라 출입금지란다.
걸리면 이 한 몸 받쳐 벌금 낸다는 타키님을 앞장 세우고
이 사진을 끝으로 하산하며
전국이 찜통 같은 날씨인데
다른 지역으로 골고루 가야할 바람이 오늘 가산으로 대거 몰려온 듯
엄청 시원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한다.
바람 시원한 날 초대해 주신 대구지부장님과 타키님께 감사드리며
야생화 좋아하시는 분 계시면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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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복수초와 산딸기 군락지 ㅎ
세분이서 멋지게 한바쿠 도셨네요
5월에 짧게 한바퀴 했었는데 또 가야지 하면서 잊고 있었네요
산수국이 예쁜날 다녀와야 겠어요
고대로 한바퀴 해봐야 겠어요
사진들 싱그럽습니다~♡
안녕하세요
산수국 좋아하시죠
이번주나 다음주에 절정일것 같은데
한번 다녀와 후기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둘레 11km, 면적이 2.2㎢
여기서 살았던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민원 하나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걸어야 했기에 사소한 것들은 눈감아 줬을까 몰라도
봄의 전령사 복수초를 시작으로 여름엔 산수국이 지천에 피어나고 깨끗한 물이 흐르며 바람도 좋고 조망도 좋은 곳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사는것도 나쁘진 않을듯한데
지부장님 보내어 닭털을 뽑듯 키만큼 자라난 잡풀 조금 정리하고 나면
조만간 텐트하나 짊어지고 갔으면..
하는 멋진 곳
두분 덕에 재미없는 역사이야기 실컷 들었던 날
동행에 감사드립니다 ㅎ
사소한 송사는 그냥 무시하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괜히 올라 가봐야 힘만 들고
길 안내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방장님이 여름에 가산도 참 멋지게 담아주셨네요
사진으로 수풀을 따라 천천히 따라가는 느낌 넘 좋습니다
치키봉 현수막에 순간 당황 하셨습니꽈!!~~~타키님 벌금 땜시 전망정자 까증 한 20분
쪼리셨겠네요 ㅎㅎㅎ
노놉!! 잘못 짚으셨어용!!
거 아니어요~ ㅋㅋㅋ
심장 쫠~깃한 길이라.. 노적봉보다 쫠~깃할까 싶은뎅..
조만간 얼굴보면 좋겠구요~^^
@타키(김수정) 아니 그 험한 길로 내려가신 겁니꽈~~~
앞으로 함산은 없는걸로 ㅎㅎㅎ
가는날이 장날이라 바람 시원하고
야생화도 많이 피어 반겨 주더군요
다만,치키봉에서 출입금지 현수막이 막고 있어 불편한 마음이 가득 있었구요
글 감사합니다.
역사와 자연, 인간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둘 이 갔으면 후다닥 올라 갔다 내려 와 막걸리 삼키고,집에 갔을 코스인데,
방장님 덕에 꼼꼼히 살펴 보다 성 안에 관공서가 있는지 알았습니다.
얼마나 부럽던 지..... 웬만해선 안 올라 왔을 것 같습니다.^^
양대 란을 겪으면서 뭐하나 남아있지 않던 시절에
또 뭘 지키려고 막 노동을 시켰는지
산성을 쌓던 분들을 깊이 생각했던 하루였습니다.
지부장님과 총무님 덕분에 즐거운 하루 보내고 왔기에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익숙한 산길
야생화 천국 시원한 산바람과 함께
걸은산길 좋으셨는가요 ?
지난번 노루궁뎅이가 생각나고요.
무더운 날씨에 수고 하셨습니다
성터위 야생화 천국 길을 걸으며
복원보다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가 더 아름답다고 느꼈던 길이였습니다.
이번주에는 하천 걷고자 보령의 오서산과 월명산으로 가볼까 합니다.
더운날 글 감사드리며 시원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내년 복수초 어여쁘게 올라올 때 산성 한바퀴나 코스 잘 잡아서 오려주시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성터 땅이 안보일 정도로 풀이 수북~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덕이 많이 산이구나 모두를 품어 땅을 고루 나눠주며 그리 키워내니
그 곳을 걷는다면 행복한 기운이 저절로 몸 속에 담길 듯 생각됩니다.
그래도 가봤던 구간들이 있어 흐뭇하게 후기 함께해보며...
하산길 통나무다리 구간은 숲속 운치가 너무 좋아 보여 꼭 가보고 싶어집니다.
한여름 바람이 함께하는 산성길 걸음
얼마나 좋았을까.
방장님과 선제지부장님 총무님 세 분 즐거운 걸음 살짝 부럽기도 합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푸르름이 넘 좋습니다.
가산은 k2군시절 방공교육가보고 아직 안가봤네요
더운데 살방살방 다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