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第三十四 雜志 第三 지리(地理)一 신라(新羅)
今按新羅始祖赫居世 前漢五鳳元年甲子開國王都長三千七十五歩廣三千一十八歩三十五里六部國號曰徐耶伐或云斯羅或云斯盧或云新羅.
지금 살펴보면 신라(新羅) 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는 전한(前漢) 오봉(五鳳) 원년 갑자(甲子)(기원전 57)에 나라를 세웠다. 왕도(王都)는 길이가 3천 75보, 넓이는 3천 18보이며, 35리(里) 6부(部)로 되어 있었다. 국호는 서야벌(徐耶伐)이라 하였는데 혹은 사라(斯羅) 혹은 사로(斯盧) 혹은 신라(新羅)라고 하였다.
夲國界内置三州王城東北當唐㤙浦路曰尚州王城南曰良州西曰康州.
본국(고려) 경계 내에 3주를 설치하였다. 왕성 동북쪽의 당은포(唐恩浦) 방면을 상주(尙州)라 하고, 왕성 남쪽을 양주(良州)라 하고, 서쪽을 강주(康州)라 말한다.
이병도는 삼국사기 주해에서 당은포를 서해 남양만으로 비정하고 버젓이 그려놓았다. 위의 문귀라면 당은포와 상주가 충청도에 있어야 하는데 상주는 경상도 경주 서북쪽에 있다.
당은포에 대해서는 가탐에 그 지리가 설명되어있다.
登州東北海行: 過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 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過 烏牧島 貝江口 椒島 得 新羅西北之長口鎮. 又, 過 秦王石橋 麻田島 古寺島 得物島 千里 至 鴨淥江 唐恩浦口. 乃, 東南陸行七百里至新羅王城. 自 鴨渌江口 舟行 百餘里, 乃, 小舫泝流 東北 三十里 至 泊汋口, 得渤海之境. 又, 泝流 五百里 至 九都縣城 故 髙麗王都. 又, 東北泝流 二百里 至 神州. 又, 陸行 四百里 至 顯州. 天寳中, 王所都. 又, 正北如東 六百里 至 渤海王城.
진왕석교 마전도 고사도 득물도를 지나 1천리를 가면 압록강 당은포구에 이른다. 육지로 7백리를 가면 신라왕성이다.


통일시대의 신라왕성은 현 봉황성으로 추정된다. (철길의 방향과 거리에 유의할것,왜 철로가 저좌표에 놓여있는지...))
심제글.
첫댓글 당나라등주에서 3천리거리에 신라왕성이 있다고 해서 저도 봉황성을 제일 유력하게 봅니다..그런데 신라가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저 곳을 동경으로 격하 시키고 새 수도를 개봉일대로 한것으로 보입니다.우선 18만호나 되는 인구를 먹여살릴 위치가 봉황성은 아니고, 조선지리지에 계림과 전주는 거의 동일한 지역이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백제의 수도였던 개봉일대를 신라가 다시 수도로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봉황성은 그렇지요.하남에 항성이라고 있는데 그곳도 후보가 될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