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代에 창업한 `슈퍼 스타트업` 공통점
`일상의 놀이`로 창업했다
[Cover Story] `슈퍼잼` 도허티·`피시플랍` 로빈슨 인터뷰
창업은 전 세계적 화두다. 특히 국내에서는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중심의 한국에선 창업은 `두려운 일` `카페나 술집을 여는 일`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하지만 10대에 창업에 성공한 `슈퍼 스타트업`은 창업을 `놀이`로 시작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했을 때 즐거운 일을 `돈을 버는` 일로 연결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나 미개척 시장에서 아이템을 굳이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10대에 `슈퍼잼`을 만들어 20대에 백만장자가 된 프레이저 도허티 슈퍼잼 창업자나 15세에 메이시나 노드스트롬과 같은 거대 백화점에서 `피시플랍`이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파는 매디슨 니콜 로빈슨은 되레 `레드오션`에서 시작했다. 이미 유행이 다 지나다 못해 삭았을 것 같은 과일잼이나 포화상태에 있는 신발이 이들의 아이템이다. 하지만 `잘 노는` 이들은 레드오션을 재창조해 블루오션으로 바꿨다.
이들은 10대에 창업해 성공한 이유를 4가지로 정의했다. 이들에게 창업은 `놀이`였고,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이었으며, `아침에 일어나 바로 생각나는 일상`이었고, 창조보다는 `재발견`이었다. 놀듯이 창업하고, 대형 소매업자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가고, 일어나자마자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지루하지 않은 일상으로 받아들여 이 속에서 재발견을 해냈다는 것이다.
매일경제 MBA팀은 두 사람을 인터뷰하고 스타트업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잼보이` 프레이저 도허티의 인터뷰부터 소개한다. 그는 15일 개막하는 매일경제신문 주최 `세계지식포럼` 참석을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아 매일경제 기자와 만났다.
■ `슈퍼잼` 창업자 프레이저 도허티
창업의 핵심은 좋은 제품·아이디어·스토리 엮는것
-어떻게 잼 산업에 뛰어들게 됐나.
▶열네 살 때 할머니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지방의 방식으로 잼을 만드는 걸 봤는데, 꽤나 흥미로웠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서 그 레시피대로 계속 만들어봤다. 그러고 나서 이 잼을 이웃들과 동네 장터에 나가서 팔았는데, 괜찮더라. 이게 `슈퍼잼`의 시작이었다.
-잼 산업은 사양산업 아닌가. 부담이 없지 않았을 텐데.
▶열네 살짜리가 `부자가 되기 위해` 뭔가를 하려고 했겠는가. 그저 내가 만든 잼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그게 창업의 기본인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잼을 예전만큼 좋아하지도, 많이 먹지도 않는다는 걸 알았다. 과도한 양의 설탕 때문이었다. 거기에서 멈췄으면 난 창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잼을 먹을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개발에 몰두했다. 오랜 시간을 엄마의 부엌에 처박혀 연구를 거듭한 끝에 100% 과일로만 만든 천연잼을 만들어냈다. 나만의 `잼의 재발견`이었다.
-영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웨이트로즈에 최연소로 납품에 성공했다.
▶내 인생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저 잼을 만들기만 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열일곱 살이 됐을 때 어느 정도 레시피를 확보한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잼을 팔고 싶었다.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사람들은 잼을 대부분 슈퍼마켓에서 사 먹더라.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영국 전역에 수천 개의 매장을 보유한 웨이트로즈를 공략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나는 웨이트로즈 역사상 최연소로 물건을 공급한 사람이 됐고, 원하던 대로 수백만 통의 잼을 팔게 됐다.
-처음부터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운이 좋은 편이었다. 웨이트로즈는 `바이어를 만나자(Meet the Buyer)`라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이를테면 슈퍼마켓에 물건을 납품하려고 하는 창업자들의 엑스팩터(한국의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라고나 할까. 두 사이즈나 큰 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고 바이어를 만난 나는 내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했다. 100% 과일잼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실제로 슈퍼마켓에서 원하는 물량을 맞추고 고객들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패키징하는 단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였다. 나는 당시 그 바이어에게 많은 조언을 얻었고,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나갔다. 내가 그들이 원하는 기준을 맞춰주자 그들은 주저 없이 납품을 허락했다. 17세 꼬마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제품 납품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 창업하는 입장에선 꿈만 같은 일이다.
-패키징이나 디자인의 문제는 뭐였나.
▶이름이 슈퍼잼이니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재미있는 제품 디자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잼의 병 디자인이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면 결국 구매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슈퍼잼`을 `슈퍼맨`과 연관 지어 이걸 포장 디자인에 넣고, 만화책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라벨에 붙였다. 내 친구들한테 보여줬더니 깔깔대고 웃으며 재미있고 좋다고 했다.
-왜 처음의 그 디자인대로 가지 않았나.
▶슈퍼마켓 측 입장은 완전히 달랐다. 100% 과일로 만든 잼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때 정신이 번뜩 들었다. 우리 제품에 대한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몰랐던 거다. 잼의 주 구매층이 나와 같은 연령대의 젊은 친구들이 아니라는 점도 간과했다.
처음부터 다시 고민했고, 지금의 아주 심플하고 모던한, 100% 천연 과일잼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디자인까지 오게 됐다. 남의 비판이나 의견을 듣는 것, 그리고 핵심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배웠다.
-디자인을 바꾸고는 모든 것이 잘됐나.
▶전부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공장 운영, 제품 생산 공정 등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항상 마음속에 담아뒀다. 대형 슈퍼마켓들은 첫날부터 제품이 잘 안 팔리면 바로 그 제품을 빼고 새로운 제품을 넣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실수를 했지만 조언에 귀 기울이고 이를 제품과 브랜드에 철저하게 체화시켜 결과적으로는 시행착오를 줄였다. 웨이트로즈에서 슈퍼잼은 첫날부터 대박을 쳤다.
-잼에 미쳐 열네 살 때 학교를 그만뒀다고 들었다. 주변의 만류는 없었나.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와 내 동생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정말 사랑하고 미쳐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나에겐 그게 잼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큰 반대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 대학을 가고 싶을 경우에 대비해 검정고시를 봐서 학과 이수는 해둔 상태였다.
잼은 나에게 있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 일을 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무엇`이다. 돈을 얼마를 벌었는지보다 이게 성공이 아니겠나.
-하지만 창업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템 부재로,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
▶슈퍼잼을 창업할 때 그 어떤 경영학 지식도 없었다. 책을 통해 경영의 세계를 공부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지식만 가지고는 결코 창업을 할 수 없다. 창업은 창업의 세계에 실제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창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나는 창업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안다. 첫째,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창업을 꿈꾸지만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다가 실천하지 않고 그냥 포기해버린다. 경영 지식 부족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지만, 용기 부족은 부끄러운 일이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큰 규모로 창업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하던 걸 다 때려치고, 집을 팔아 자금을 대면서 창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할머니의 잼 레시피를 배우고, 그걸 이웃들에게 파는 과정 속에서 창업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주말에, 방과 후나 퇴근 후에 시간을 내 일단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무조건 조언을 구해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친절하다. 나는 슈퍼잼이라는 회사를 세우면서 다른 성공한 창업자를 많이 만났다. 이들은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각종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한다. 나도 그 사실에 많이 놀랐다.
-실제로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여덟 살 때부터라고 들었다. 뭔가 남다른 DNA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내가 창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뭔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여덟 살 때 처음으로 돈을 번 것이 맞다. 그리고 그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있어 창업, 비즈니스는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출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그 느낌 자체였다.
-창업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물론 아이디어, 그리고 제품이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홍보하며 마케팅을 하는지가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좋은 제품과 함께 `좋은 스토리`가 창업에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일단 좋은 제품과 아이디어는 기본이다. 이게 없으면 창업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이 제품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로 엮어내서 알리느냐다.
내 경우 `할머니의 잼 레시피`라는 스토리를 `10대 소년의 100% 과일 잼 만들기`라는 두 가지를 엮어 좋은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단 스토리가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지 스스로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 He is…
프레이저 도허티(Fraser Doherty)는 열네 살 때 `할머니의 잼`으로 창업을 시작해 열일곱 살에 `슈퍼잼`이라는 회사를 일궈 영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즈에 최연소로 물건을 납품한 기록을 세운 창업가다. 고등학교마저 자퇴하면서 100% 과일로만 천연 잼 만들기에 몰두한 `잼보이`다. 테스코와 월마트에 납품하고 해외 진출까지 성공하며 20대 백만장자가 됐다. 슈퍼잼은 작년 800만파운드 매출을 올렸다.
■ `피시플랍` 창업자 매디슨 니콜 로빈슨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라…고객 지갑 저절로 열린다
신발 브랜드 `피시플랍`의 창업자인 매디슨 니콜 로빈슨은 이제 갓 15세다. 섬마을 소녀인 로빈슨 창업자(사진 오른쪽)는 8세 때부터 자신이 매일 신던 `플립플랍` 신발에다 자신만의 바다생물 그림을 그리는 소질을 발휘했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이를 창업으로 연결시켰다.
창업을 자신이 가장 잘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로 시작한 로빈슨 창업자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는 시간을 빼고는 자신의 일상을 모두 피시플랍에 투자하고 있다. 그동안 14만 켤레의 신발을 팔아 120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로빈슨 창업자를 매일경제 MBA팀이 인터뷰했다.
-피시플랍은 어떻게 창업했나.
▶내 고향은 텍사스주 갤버스턴섬이다. 자연스럽게 낚시나 수영, 바다, 그림 그리기 등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덟 살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신발이었던 플립플랍에 내가 좋아하던 바다생물이나 물고기 그림을 그린 게 시작이었다.
아빠한테 보여주면서 `아빠, 이게 피시플랍이야!`라고 자랑했다. 물고기를 뜻하는 피시(Fish)와 플립플랍의 독특한 합성어이자 내 브랜드가 된 `피시플랍`이 탄생한 것이다.
-신발은 레드오션이다. 특히 비슷한 상품이 많은 플립플랍 분야에서 10대 소녀가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 생활에서 우러나온 바다생물을 활용한 밝고 귀여운, 그래서 웃음을 주는 디자인은 피시플랍만의 힘이다.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이 의외로 `바다생물 캐릭터`를 신발에 적용시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분명한 차별화 포인트가 된 것 같다. 어린아이가 이런 디자인의 제품을 만든 것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결국 지금의 성공은 `남들이 다 하는 분야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재발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항상 강조했던 것처럼 내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유효했다.
-경험 많은 사람들조차 납품에 실패하는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당당히 매장을 냈다.
▶초기엔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 집 근처에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상품전시회에도 많이 갔다. 그리고 나선 아주 고전적이지만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방법을 썼다. 바로 손편지 쓰기였다. 바이어들에게 진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는데, 상당한 효과를 봤다. 또 바이어들뿐 아니라 유명인사들과 언론사 등 주요 콘택트 리스트를 직접 골랐다.
노드스트롬 납품도 손편지를 통해 가능했다. 노드스트롬에선 내 손편지를 보고 바로 연락을 줬다. 감사한 일이다.
-아이들을 위한 제품에서 점차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꼬마였을 때 한 디자인이 기초가 됐기 때문에 초기엔 아동용 신발을 주로 만들어 팔았지만, 이제는 어른을 위한 제품까지 내놓았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의류와 비치웨어, 학용품, 침구류까지도 영역 확대를 계획 중이다. 피시플랍을 `신발 브랜드`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피시플랍, 그리고 회사 경영은 10대 소녀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이 일이 무척 즐겁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디자인부터 판매까지, 나는 피시플랍의 모든 업무에 참여하고 있고, 모든 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고 노력한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즐겁다. 지속적인 `비즈니스 인맥`을 쌓는 것은 즐거운 활동이자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창업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지만, 유지는 비전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비전은 믿음을 갖고, 인내심을 놓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고 나의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즐겁게 일하고 있다.
-아버지가 가장 든든한 조력자라고 말한 것을 봤다.
▶아버지는 나에게 `경영 방식`을 가르쳐준 스승이다. 내가 `피시플랍`이라는 말을 내뱉은 순간 `피시플랍닷컴(FishFlop.com)` 도메인을 사놓은 분도 아버지다. 나에게 `제대로 된 리서치`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 분이다.
-장기 목표는.
▶피시플랍 브랜드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고, 노드스트롬 등 백화점에 입점된 피시플랍 라인에 더욱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이 일단 과제다. 그리고 피시플랍 캐릭터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제작해 아이들에게 해양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또 언젠가는 `매디슨 니콜(Madison Nicole)`이라는 내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