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 왼쪽 어깨는 주걱봉, 그 왼쪽 너머는 안산
아, 조화옹이 자랑스럽고나.
날거든 뛰는 자세가 아니든지, 섰는 모양이면 솟구치지나 말았든지, 부용을 꽂은 듯, 백옥을
묶은 듯, 동명(東溟)을 박차는 듯, 북극을 꿰뚫는 듯 하늘에 치밀어 무슨 말을 아뢰는가,
천만겁 지나도록 굽힐 줄 모르는가.
――― 정철,「관동별곡」중에서
주) 동명(東溟)은 동해(東海)를 말한다.
▶ 산행일시 : 2015년 10월 31일(토), 맑음,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
▶ 산행인원 : 10명
▶ 산행시간 : 8시간 20분
▶ 산행거리 : GPS거리 12.5㎞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3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47 - 인제군 기린면 현리(縣里) 오류동 방동교 건너 인제정은병원 입구, 산행시작
09 : 00 - 능선마루
09 : 53 - 789m봉
10 : 18 - 920m봉
10 : 43 - △927.1m봉
11 : 48 ~ 12 : 38 - △1,072.7m봉, 점심
13 : 25 - 1,254m봉, 방태주릉
13 : 50 - 1,268m봉
15 : 18 - △1,024.8m봉
16 : 07 - 803m봉
16 : 35 - 헬기장
16 : 43 - KBS 방송 중계탑
17 : 07 - 인제군 상남면 하남리(下南里) 용포마을 용포교, 산행종료
18 : 10 - 홍천, 사우나, 저녁
21 : 2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방태산 주릉 1,254m봉에서, 뒤쪽이 깃대봉 가는 길
▶ 오류동, 789m봉
전국이 영하 2도라고 하니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버스 안이 히터 틀어 훈훈하다.
또 방태산을 간다. 동서울터미널 만남의 장소에서 출발시각 임박하여 웬 남자가 우리 버스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온다. 무불 님을 우리가 얼른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잠시 멈칫하다
가 (모처럼 회원 한 분 모시게 되는구나 싶어) “어서 오세요” 합창하여 반기니 그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낯이 설자 머쓱하여 내린다.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산자락 굽이도는 내린천을 현리에서 인제 쪽으로 보내고 우리는 진방삼거리에서 방태천 거
슬러 조침령로 따라가다 사동 산모퉁이 돌고 오류동에서 방동교 건넌다. 산골짝에 흰색 건물
이 보이고 외인 출입금지 팻말 대로 멈춘다. 영진지도에는 인제정은병원(네이버지도에는 시
니어스인제병원이다)이다. 암환우분들이 수술 전이나 수술 후 항암 중에 심신치료를 위하여
오는 병원이다.
언제 우리가 인적이나 길에 연연했던가. 상고대 님 향도로 냅다 덤불숲 뚫고 생사면에 달라
붙는다. 첫발자국부터 가파르다. 수적(獸跡)조차 직등하지 않고 게걸음 하였는데 우리는 일
로 직등한다. 낙엽 밑 마사토가 부실하여 제자리걸음하다 여러 번 걸음질로 겨우 한 걸음 오
른다. 잡목은 그 사이가 넓게 벌어진 늑목이다. 아내 걱정 덜어주고자 위아래 옷을 잔뜩 껴입
었더니 비둔하고 이내 땀난다.
능선마루에 올라서 잔걸음하며 가쁜 숨 고른다. 능선에는 ‘위험, 출입금지’라는 표지를 단 나
일론 밧줄이 길게 둘러 있다. 우리가 방금 오른 사면이 그렇다는 것인지 맞은편 사면이 그렇
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등로 주변 즐비한 거목의 소나무가 볼만하다. 이곳은 워낙 오지라(?)
일제의 송진 수탈이 미치지 않았나 보다. 소나무 밑동이 온전하다.
789m봉 오르기 전 야트막한 안부에서 휴식하여 입산주 탁주 마신다. 안주는 무물 님 족발이
다. 바닥에 남은 족발 통뼈를 보고 신가이버 님을 생각한 이는 나만이 아니었다. 미리 말하자
면 오늘 산행은 먹거리가 아주 푸짐하였다. 앞으로 모닥불 님의 (제물이었다는) 육전과 생선
전, 버들 님의 (쇠고기 넣은) 미역국, 해피 님의 (칠면조만한 크기의) 통닭이 줄줄이 대기하
고 있다.
금귤이나 반건시, 사과, 라면, 감, 초콜릿, 크림빵, 군고구마 따위는 먹거리에 아예 넣지 않았
다. 오는 도중 마트에 들려 산 봉평 메밀탁주는 다음 산행 때도 마실 만큼 남았다. 산행 마치
고 홍천시내 사우나탕에 들려 저울에 몸무게를 달아보고는 몸무게가 오히려 느는 이런 식의
산행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 결론은 각자 알아서 작작 먹어야 할
일이다.
2. 거목의 소나무, 789m봉 오르는 길에 이런 큰 소나무가 많다.
3. 골 건너 산릉
4. 가리봉 연릉
5. 가리봉 연릉, 맨 왼쪽은 삼형제봉
6. 귀떼기청봉
7. 점봉산, 그 뒤로 살짝 보이는 산은 대청봉
8. △1,072.7m봉 오르는 길
9. △1,072.7m봉 오르는 길
▶ 방태주릉 1,254m봉
오늘 산행은 지도를 대충 읽어 그다지 잦은 굴곡이 없이 방태주릉까지 줄곧 느긋이 올랐다가
후평동으로 대번에 쏟아져 내리면 끝나려니 생각한 게 착오였다. 어찌 산에 곡절(曲折)이 없
을까? 그리 험하지 않은 바윗길이지만 아까 능선마루 오를 때처럼 789m봉 오르기가 힘들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리봉과 설악산 서북주릉 기웃거리며 오른다.
이다음의 △927.1m봉은 곧추선 첨봉이다. 왼쪽 사면 훑는 해찰부리며 오른다. 삼각점은 ╋
자 방위표시만 알아볼 수 있다. △927.1m봉 내리막은 독도주의 구간이다. 남진하는 세 가닥
산줄기 중 가운데를 잡았다가 상고대 님 연호로 대 트래버스 하여 맨 오른쪽 줄기 잡는다. 골
로 갈 뻔했다. 번번이 수북한 낙엽 지치다 지친다. 햇낙엽이 미끄럽다. 오를 때는 엎어지고
내릴 때는 뒤로 넘어진다.
여태 쌓아올린 공이 무위로 돌아간다. 한참을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랬다가 긴 오르막에 코
박는다. 906m봉에서 주춤하고 다시 치솟는다. 자주 바위와 잡목을 피해 사면으로 비켜간다.
△1,072.7m봉 삼각점도 ╋자 방위표시만 남았다. 조망은 무망. 찬바람 등지고 햇볕 따스한
사면을 찾아 약간 내려 점심자리 편다. 흔히 이맘때 별미로 ‘가을전어’라고 한다. 우리에겐
‘가을더덕’이다. 통통한 알배기를 다수 수확한다.
방태주릉 오르는 길. 1,076m봉 넘고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흰 눈 살짝 덮인 가파른 북
사면이다. 1/25,000 지형도 촘촘한 등고선이 21줄이나 된다(1줄이 10m 높이다). 잔뜩 부른
배 옆구리 움켜쥐고 오른다. 풀무질하는 내 거친 숨에 눈 다 녹는다. 방태주릉 1,254m봉. 넙
데데한 초원이다. 아무리 지도를 뜯어보아도 당초 계획한 대로 깃대봉(‘푯대봉’이라고도 한
다)을 올라 후평동으로 내리는 것은 무리다. 남서진하는 면계(기린면과 상남면) 따라 용포
로 가기로 한다.
길 좋다. 인적은 흐릿하지만 방화선 친 듯한 너른 초원을 간다. 군인의 길인가. 세 가닥 삐삐
선과 함께 간다. 낙엽 밟는 소리가 연호이기도 하다. 바스락거리는 규칙적인 소리의 강약으
로 일행 간 떨어진 거리를 가늠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흐트러지면 거기는 틀림없이 더듬
거리는 험로다. 조망 트일 바위에는 꼬박 들려 발돋움하고 설악산 서북주릉을 보고 또 본다.
11. 조망 트이느니 가리봉과 설악산 서북주릉이다
첫댓글 산행 좋아하시네요~~ 설악산 종주 올해는 포기하고 내년에 하려는데 사진으로 잘 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