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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561 신의 성품에 참여할 사람들(베드로후서1장1-7절)
성경말씀은 베드로후서 1장 1절에서 7절까지 봉독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사도 베드로께서 지난 시간까지 본 베드로전서를 기록하실 때 ‘아마도 곧 순교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고 자기가 떠난 후에 ‘이 중요한 것을 늘 생각하게 생각나게 해야 되겠다.’ 그런 뜻으로 베드로전서를 기록하셨는데,
생각한 것보다 순교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고 조금 시간이 더 연장되는 것을 보고 다시 이 편지를 썼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베드로후서는 베드로 사도의 유언과 같은 그런 편지예요.
지금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유언과 같은 서신을 보겠고, 또 얼마전에 우리가 사도바울의 유언은 디모데후서에서 살펴보았고, 또 요한 사도의 유언을 보게 됩니다.
사실은 영어로 성경을 보는 분들은 영어권에서는 성경을 전부 다 ‘유언이다’ 이렇게 봅니다.
성경이 모세 유언부터 시작해서 요한사도의 유언까지 전부 다 유언이다.
‘테스터먼트(testament)’라는 말은 유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예수님의 유언도 있고, 바울의 유언, 베드로의 유언, 요한의 유언, 모세의 유언, 수많은 사람들의 유언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이 한두 사람의 유언이 아니라, 여러 어른들이 남긴 유언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접하면 좀더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종’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가장 낮아진 그런 신분이고, ‘사도’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장 높여진 그런 신분이죠.
그리고 자기가 본래 이름은 시몬이고, 예수님 만나서 이름을 베드로라고 했죠.
그래서 종이요 사도. 시몬이요 베드로. 이렇게 자기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그러니까 자기는 사도인데 이만큼 높은 사람인데, ‘너희들 조무래기한테 편지한다.’ 이런 게 아니고, 동격으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이죠.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여기 예수를 아는 것은 굉장한 중요해요.
예수님을 모르면 유대인들 하는 것 보세요.
지금도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예수님을 모르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모르면 제대로 아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하나님과 예수를 알게 하는게 누구냐 하면, 성령이 그렇게 하십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성경을 기록한 것과 예언자를 보내신 것과, 또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것이 성령께서 하십니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여기 ‘앎’이라는 말을 자꾸 쓰는데, 다른 말로 하면 지식이죠. 알 지(知)자이니까..
그러니까 바른 지식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존칼빈이라는 위대한 우리 종교개혁자 위대한 선각자가 ‘사람이 가지는 지식 중에 최고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높은 지식인데, 신 인식론이라고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
신 인식론이라는 한 쳅터가 있는데 굉장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기역(ㄱ) 니은(ㄴ)부터 가나다라부터 시작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공부의 최종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거예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하는 것은 전부 도중하차하는 사람들이고,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대학 교수나 총장이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인생을 그만두면 공부하다가 중단한 사람들이야. 전부 다..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까지 가야 돼요.
최고의 지성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아는 것..
사도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이런 것은 전부 배설물로 여긴다. 그 정도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3년을, 그것도 결코 예수님이 욕심을 안 부리고 3년을 가르치는데 12명 밖에 지도를 안 했어요.
우리가 볼 때 12명 너무 초라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여러분이나 저가 만약에 3년 동안에 12명을 제대로 기르면 위대한 사역자입니다.
3년 동안에 12명을 제대로 훈련시키면 굉장한 거예요. 예수님만큼 하는 거예요.
사람 끌어 모으는 것은 3년이나 30년 동안에 몇만명 끌어 모아도 제대로 훈련을 못 시키는 교회가 대부분이야.
그래서 정말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또 지식만 아니라 그 삶이 정말 예수님을 닮은 사도와 같은 그런 인물로 길러내는 사역을 3년 동안에 12명 정도 지도했다면 굉장한 일을 한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그 12명 가지고 세계선교를 내다 봤어요.
그래서 그 3년 동안에 많이 가르친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삶을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가르쳤어요.
그래서 그 3년 동안 가르친 다음에 가이사랴 빌립보로 졸업여행처럼 가서 딱 시험 문제 한 문제만 냈지 않습니까?
‘너희가 나를 누구로 보고 있느냐? 누구로 인식하고 있느냐? 누구로 믿고 있느냐?’
그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렇게 하니까 합격이 된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다 안 것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 부단히 공부를 해야 돼요.
오늘 우리 기독교가 세상에서 제일 공부 안 하는 종교예요. 이렇게 교육이 없는거야.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을 바로 알지를 않습니다.
믿는 것도 바로 알지 않는 상태는 믿음도 항상 흔들립니다.
그게 알고 믿어야 믿음이지, 모르고 믿으면 미신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여기 2절에도,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고 3절에도 끝에,
..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알 것을 알아서 믿어야 돼요.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성경은 유언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하죠.
전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끼친 유언인데, 이 유언 속에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약속이 들어있고, 명령이 들어있고, 예언이 들어 있어요.
어떤 것은 예언이면서 곧 약속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여러분 우리가 요즈음 하도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약속을 안 지켜서 약속어음처럼 기분 나쁜 게 없죠. 하도 약속을 안 지키니까..
만약에 정말 약속을 지킨다면 약속어음을 받았으면 은행에 가져가면 바로 현찰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엄청난 유산이 바로 약속이예요.
이 약속이 뭐냐 하면 약속이 성경이죠.
우리가 성경을 구약속 신약속 옛 언약 새 언약..
..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여러분 지금 현재 조금 어려워도, 그야말로 1천억짜리 그런 엄청난 약속어음이 있다손 칩시다. 부도나는 그런 것 말고..
그런데 아직은 기한이 안 되었어. 내일도 못 찾고 모레도 못 찾아.
한 10년 후에 찾을 수 있는 약속어음이 있다손 칩시다..
그러면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참을 수 있어요. 그렇죠?
‘10년만 지나봐라. 젠장..’ 그러면서.
이렇게 아무 것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정말..
10년만 지나면 확실한 것을 얻게 되는 약속어음이 있다면..
그런데 우리 세상에서 특히 우리 한국사회에서 약속어음이라는 것은 부도나는 사람이 많으니까 별로 가치가 없죠.
보증수표나 이런 것으로 해야 힘이 있지, 약속어음 같은 것은 힘이 없으면, 문제는 발행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요.
여기 우리 성경이라는 약속어음은 아주 신실한 분이 반드시 지키는 분이 발행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을 알고 여기 약속된 것을 확실히 알고 이것을 믿고 이것을 정말 바라고 있는 사람 같으면 세상에 쩨쩨한 것을 가지고 안 따진다는 거예요. 정말..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여 너희로 약속으로 말미암아서,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 썩어질 것들 그런 것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은 아직 안 그런가봐..
여러분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못 가져도 괜찮다는 거예요.
어차피 가지지도 못할 것을.. 그렇죠?
욕심내봐야 가지지도 못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돼요.
제가 만약에 영생도 없고 심판도 없고 그냥 약속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렇다면 ‘에라 이왕 버린 몸’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겠죠. 나도 해 보고 싶은 게 많아요.
그런데 왜 절제하느냐?
너무 큰 것을 약속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 못 가져도 못 누려도 하나도 아쉽거나 부럽거나 한게 없습니다.
솔직히 진실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뭐 해 볼게 있습니까?
그래서 베드로 사도라든지 옛 성도들이 왜 세상에서 그렇게 힘든 어려움이라도 묵묵히 잘 참을 수 있었느냐?
이미 약속으로 받은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 현실앞에 썩어질 것들 하찮은 것들 그것 못 가지고 못 누린다고 해서 안달복달 할게 없다..
베드로 사도의 정신도 그랬고 옛날 모든 성도들이 기독교 역대 모든 인물들이 그렇게 미래에 우리에게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있는 약속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세상에서 썩어질 것들 별로 못 누려도 그것 가지고 마음 상하거나 그런 일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어려운 말인데,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거기 탐닉하다보면, 세상적 그런 욕심에 사람이 물들거나 거기 탐닉되거나 거기에 비끌어 메어지면 성장이 안 돼요.
성화가 안 됩니다.
그런 것으로부터 초연해야 돼요.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해야 우리가 성장할 수 있고 성화될 수 있어요.
여기 지금 베드로 사도께서 남긴 이 유언의 핵심이 뭐냐 하면, 그런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될려면 성장해야 돼요.
거듭난 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성장해야 되고 성화되어야 돼요. 성화..
성화되어서 성숙해가지고 신의 성품에까지 간다...
여러분 교회가 하는 것이 그게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첫째는 아직도 전도되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서 말씀을 심는 전도를 해야 될 일이고, 그 인도해 온 사람들에게 전도해서 말씀을 심어서 뭘 하자는 거냐? 거듭나게 해야 되고, 성장되고 성화되고 성숙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 되게 만들어 가는 게 교회가 하는 일이예요.
그것을 지금 대개 잘 못하고 있어요.
특히 성장도 없고 성화도 없고 성숙도 없고 맨날 어린애 노릇 하거나 아니면 미신 같은데 빠져 있거나 아니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거나 이런 식으로 교회가 미성숙으로 그냥 남아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배만 있고 교육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오늘 설교 제목이죠. ‘신의 성품에 참여할 사람들.’
뭘 하게 하려는 거냐? 신의 성품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까, 그러므로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 일곱단계를 거쳐서 여덟 번째 차원에 올라갑니다.
일곱단계를 올라갑니다. 성화의 단계가..
첫째,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믿음은 ‘피스티스’라는 말인데, 이것은 믿음이라는 말도 되고 충성됨이라는 말도 돼요. 충성되게 신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이렇게 살아가는 그 믿음 위에 뭘 더해야 되느냐?
‘아레테라’라는 덕이예요.
이 아레테라는 말은 우리말로 딱히 번역할 말이 없어서 덕(德)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겸손과 순결과 용기입니다. 겸손과 순결과 용기. 참 어려운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겸손과 순결과 용기를 영어로는 젠틀(gentle)이라고 합니다. 젠틀맨..
여러분 우리가 기독교인도 젠틀해야 되는데, 너무 미신적으로 잘못되어 가는 거야.
덕이라는 것을 우리말로 할 때 덕이라고 했습니다만, 영어로는 아주 젠틀하게 그렇게 멋진 멋이 있는 그리고 남자다운, 이 아레테라는 말이 남자답다 이렇게도 해요.
남자답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겸손하고 순결하고 용기있는 그런 삶을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요. 믿음만 가지고가 아니고 믿음에 덕을..
.. 덕에 지식을,
덕에 지식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디가서 무식하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매 주일마다 이 수준높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배우는 분들이 어디가서 무식하다는 말 들으면 곤란해요.
부단히 지식을 갈고 닦아야 돼요.
범사에 그리스도인들은 지식면에서 앞서야 돼요.
그리고 일반사람들은 대개 대학 졸업만 하면 공부 끝내잖아요. 대학은 무슨, 고등학교 입시 끝내면 공부 안해. 그냥..
그렇게 공부를 안 하는데, 그리스도인은 평생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해야 돼요.
그래서 그야말로 성경과 역사와 과학과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안목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적으로 무지하다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무지하면 속습니다.
속아서 이용당해요. 항상 악에게 이용당합니다.
6 지식에 절제를,
‘절제’라는 말은 어려운 말인데, ‘엔크라테이아’라는 말은 셀프컨트롤(self-control) 이렇게도 하지만, 검소하다, 이런 의미도 있어요. 절제라는게..
욕심도 절제하고 정욕도 절제하고 범사에 절제하는 그런 절제가 필요하죠.
.. 절제에 인내를,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성화와 성장은 절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간 걸려요.
오랜 시간 부단히 갈고 닦고 노력을 해야 돼요.
어떤 분이 성경강좌에 와서 한번 들어보더니 ‘와 저것 언제 다 공부하란 말이냐?’ 하고 포기해 버려요.
그러니까 공부를 할려고 마음을 안 먹는 거예요.
지금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들은 공부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듯이 공부하고 공부하듯이 기도하니까 그 사람들 중에서 세계 최고 학자들이 나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존경하는 근현대사의 모든 위대한 사람은 전부 유대인들이예요.
천하에 나쁜 사람들도 유대인들이고, 위대한 사람들도 유대인들이예요.
그래서 어디에서 나오느냐?
첫째는 그들이 공부를 중시합니다.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위해서는 다 절제하고 아껴야 되는데, 공부를 위해서는 절대로 아끼지 않는 민족이 유대인들이예요.
공부를 위해서는 절대로 아끼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은 먹는 것을 위해서는 절대 아끼지 않죠. 그러면 곤란하다는 거야.
그래서 절대 공부를 위해서는 아끼지 않는다. 시간이고 돈이고..
그래서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 아이들에게 5개국어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 샤론교회도 어머니들이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게 아니라 집에서 충분히 가르쳐야 돼요.
그리고 피를 맑게 해서 아이가 성품이 온유하고 집중력 있어도 공부 잘 할 수 있어요.
오늘 아침에 글을 하나 어디에서 카피 했는데 건강 정보실에 있습니다.
끔찍한 얘깁니다.
인스턴트 식품들 햄이나 쏘세지 이런 가공식품은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다. 하는 얘긴데, 쥐에게 실험을 해 봤답니다.
그런 것을 쥐에게 얼마간 먹었더니 바로 중독이 되어서 그런 것만 먹을려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안 주었더니 2주일간 단식투쟁을 하더라는 거야. 아무 것도 안 먹어요.
그리고 전기 충격을 가해도 거기에 중독된 것들은 계속 먹고 있더라는 거야.
그런데 일반 균형잡힌 음식을 먹였던 쥐들은 전기충격을 가하면 먹는 것을 그만두고 도망을 가는데, 그 인스턴트 음식에 중독된 그 식품을 먹던 쥐는 전기충격을 가해도 찌릿찌릿해도 계속 먹고 있는 거야.
그래서 오늘 아침 신문에 나온 것을 카피 했으니까 꼭 읽어보시고.
여러분 과자종류도 안 됩니다. 어떤 과자도 안 됩니다. 사람 입에 넣을 수 있는 과자가 없어요.
인스턴트 식품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음식을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음식을 안 가려서 머리와 성질이 나빠질 수 있고, 그리고 그런 것을 좀 더 먹였더니 나중에는 도파민이라고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나오다가 오히려 과잉분비 되다가 쓸데없으니까 도파민 생산이 아예 안 되어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머리가 나빠지고 살만 계속 찌는거야.
오직 욕구 하나가 먹는 욕구 하나만 남아있는 그런 식으로 변질되는 거예요.
영국신문에 나온 것을 번역을 해서 올라온 것을 제가 카피를 했습니다.
KBS에서 그 사실을 알린 모양인데, KBS 싸이트에서 카피한 것을 제가 다시 카피했는데,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청년들 학생들 어린이들 일절 상점에 나오는 것 중에 사 먹을 수 있는게 없다는 겁니다.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입에 대면 마약처럼 끊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절제에 인내를,
.. 인내에 경건을,
이 경건이라는 말이 ‘유세베이아’라고 합니다.
유세베이아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을 유지해야 돼요.
그 다음에,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는 횡적이죠.
종적인 것이 경건, 횡적인 것이 형제 우애.
그러니까 하나님과도 바른 관계, 형제와도 바른 관계에 있어야 돼요.
형제 우애를 ‘필라델피아’라고 하죠. 많이 들어본 말이죠.
..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사랑이 ‘아가페’죠.
그래서 이 기독교인의 성장과 성화의 단계가 여덟단계가 있는데,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단계로 성장되고 성화되고 성숙되어 간다.
그렇게 해야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하나님 앞에 가서도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이런 게 안 되면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해요.
성경에 보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끝없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8절,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그러니까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알고 그분을 그대로 닮아가는 거예요.
범사에 그분을 알아서 닮아버리는 거예요.
알아서 닮아가는 이런 것을 ‘안다’는 거예요.
헬라어가 아니고 구약성경에 히브리어에 ‘야다’라는 말이 아는데 체험적으로 알아서 내 삶이 거기에 맞춰서 살아지는 데까지 알아야 그게 안다는 거예요.
야다라는 말이 예를 들어 처녀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하는 것은 남자는 고추달리면 남자지 이렇게 아는 게 아니라‘ 남자와 생활을 해 본 사람이 야다라고, 체험적으로 알게 된 그런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도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알아져서 제대로 알아지면 닮고 싶어지고 닮아야 돼요.
그래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그러니까 열매가 있을려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해서 이런 것이 흡족해야 열매있는 삶을 살게 된다.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이런 것이 없으면 완전히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이라.
.. 원시치 못하고,
아무 것도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여러분 멀리 내다보는 사람은 항상 성경에 있는 약속을 가지고 성경을 가지고 멀리 내다봅니다. 망원경이 아니고 성경..
그래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내세를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눈앞에 있는 욕심에 급급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해서는 성장이 안 되는 거죠.
눈 앞에 있는 욕심에 미혹되고 욕심에 탐닉되고 그래서는 전혀 성장도 성숙도 안 되는 거죠.
..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베드로 사도께서 ‘더욱 힘쓰라’는 말을 두 번째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도 힘쓸게 없어요.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는 것이니까..
그런데 성화라는 것은 힘쓰고 더욱 힘쓰고 이렇게 부단히 노력을 경주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안 넘어질려면 계속 패달을 밟아야 돼요.
그런 것처럼 더욱 힘써야 돼요.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런 게 있다면 이런 여덟단계로 성장하면 열매도 있을 뿐 아니라 또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2절,
12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여러분 사람이 한번 책을 썼는데, 그 책이 유행을 타거나 아니면 흐지부지 잊혀지거나 하지 않고, 2천년간이나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생각나게 하는 말씀이 이 성경이예요. 성경..
여러분 어지간히 유명한 책을 써도 2천년간이나 읽혀진 책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세요.
2천년간 읽혀지는 거야.
앞으로 또 세상 끝날까지 이 책은 계속 읽혀질 겁니다.
항상 생각나는 거예요.
저는 책이라고 몇권 끄적끄적 썼는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성경강좌를 하니까 좀 읽혀지다가 그저 내가 죽고 나면 다시는 출판도 안 되고 찾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될게 아닌가..
여러분 이 성경 보세요.
2천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계속 출판되고 계속 읽혀지는 거예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죠.
13절,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사도 베드로께서 ‘아마 내가 이 장막을 떠날 때가 멀지 않았다.’ 하는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네가 젊어서는 띠띠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날이 이르면 너로 팔을 벌리라 하고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끌고 갈 때가 올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한 것을 베드로가 늘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막을 떠날 때가 임박한 줄을 앎이라.
이제는 임박해서 이 글을 쓴다..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아까 12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15절에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끝없이 생각나게 한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성경을 읽어서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이렇게 해야지, 요즈음에는 성경을 제쳐놓고 그냥 직통계시를 직접 받겠다 하면서 이래가지고 신사도주의라는 게 나오는 거예요.
신사도주의는 지금도 예언의 은사가 있어가지고 예언을 한다고 하면서 개인의 삶을 점치고 하는데, 여러분 성경에 길흉을 점치는 자는 때려 죽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도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한국에 예언자 학교가 생겼어요.
예언하면 심사관이 심사해요.
그런 잘못된 데에 휩쓸리지 말도록..
기록하고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경을 부단히 보면 생각나는 거예요.
16절,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목격자 증언이죠.
꾸며낸 픽션이 아니다, 우리는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그래서 이런 예수님 재림에 대한 말씀이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글을 쓸 때 네로황제 박해가 다가오는데, ‘예수님이 왜 안 오시는가’ 하면서 재림신앙이 흔들릴 때 베드로 사도께서 이 말씀을 쓰신 거죠.
2장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우리가 이 인류역사 마지막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 재림 직전에 이 땅에는 거짓선지자 거짓그리스도들이 거짓 이적을 행해서 수많은 사람을 미혹해서 심지어 택한 백성도 미혹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베드로 사도 그때에도 사도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 때에도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는데, 2천년이 지나면 얼마나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겠어요?
제가 볼 때 지금도 거짓 투성이입니다.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 칼럼방에 오늘날 미국지역에 거짓선지자, 미제 거짓선지자가 얼마나 많이 나타났는지.. 동영상까지 해서 올린 것도 있으니까 한번 보세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교회 목회자 성도들이 분별없이 거기 휩쓸리는데 감당하기도 어렵고 통제가 안 됩니다.
교단도 권위가 없고, 성령의 계시를 직접 받았다고 하는데 무슨 교단이 필요하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교단도 무시하고 다 무시합니다.
..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그 중에 호색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육체라는 것은 본래 본능적으로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 욕구가 안 일어나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채워줘버리면 안 일어난다.. 그 욕구가..
여러분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실컷 먹여버리면 밥 먹고 싶은 욕구가 없어져버리죠.
그러면서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 당시에 영지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이 영만 선한 것이고 육체는 아무렇게 해도 상관이 없다. 이렇게 해서 육체적 욕구를 충분히 채워줘버리면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베드로 사도가 이런 말을 하시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어떤 심판은 제깍 제깍 즉결심판에 넘겨지는 심판도 있고, 어떤 심판은 최후의 심판까지 미뤄지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즉결심판에 넘겨지는 죄는 아주 악하고 음란한 이런 죄, 소돔이나 고모라 같다든지 이런 것은 그런 심판은 자지 아니한다.
어떤 심판은 최후의 심판까지 유예됩니다.
4절입니다.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이 말도 우리 번역이 오역이거든요.
여기 말하는 ‘지옥’이라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 그런 지옥이 아니고, ‘타르타로’라고 하는 ‘깊은 구덩이’입니다. 지옥이 아니고..
우리는 걸핏하면 지옥이라고 해요.
번역하는 분도 이게 지옥인지 음부인지 무저갱인지 분별이 없이 그냥 보통 지옥이라고 해버렸는데, 분별이 필요합니다.
타르타로라고 하는 것은 깊은 구덩이입니다.
영원한 지옥이 아니고 임시로, 언제까지? 최후의 심판때까지, 마치 요즈음 같으면 교도소라든지 아니면 미결수 감옥이라든지 그런 곳입니다.
.. 타르타로라는 곳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심판 받기 이전에 일정기간 동안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어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괄호안에 있는 것은 후대에 누군가 첨가한 겁니다.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 ‘주관한다’는 말이 마치 까딱하면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영어에는 ‘가번먼트(government)’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관한다는게 ‘퀴리아토테스’라는 말인데, 퀴리아토테스. 이 말은 주관한다는 말과 비슷하지만 하나님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공직자 이런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그러니까 이 당시에 영지주의 이단자들의 삶의 작태를 고발하듯이 쓰고 있는 겁니다.
전혀 경건하지 않고 아무데에나 훼방하고,
여기 지금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를 보면,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마귀를 송사할 때도 그냥 함부로 말하지 않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한다.’ 그런 정도밖에 말 안 하는데, 이 사람들은 이성없는 짐승같이 본래 잡혀 죽기로 작정되어 태어난 동물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런 내용들이 나중에 우리가 보게 될 유다서에 있는 내용과 너무 같다는 거야.
그 유다서의 신학 정신과 베드로후서의 내용이 거의 같아서 같은 지역에서 이단을 공동대처하면서 어떤 공감대가 있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문법이나 구사하는 용어가 너무 같다는 거야.
17절,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샘은 샘인데 물이 없다는 거야.
열매 없는 가을 나무, 비 없는 우물.. 이런 가증스러운 것을 말할 때 대명사가 될 정도로..
..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안개는 구름 비슷하게 해서 사람을 속이는 거죠.
..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일본의 크리스찬 여류 작가 중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분이 있어요.
제가 그분 책을 꽤 여러 권 읽어봤는데 ‘빙점(氷點)’으로 일본 문단에 데뷔해서 아주 대단한 작가죠.
아직도 여러분 미우라 아야꼬의 책 안 읽어보신 분들은 구해서 읽어보세요. 대단한 필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분이 쓴 글 중에 그런 말이 나와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말 문란한 나라거든요.
여러분 일본에는 간음이라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13살 14살, 만으로 12살 이상 된 여자와 합의하에서 이루어진 정사는 책임이 없다. 이런 법이 있어요.
간음이 안 되는 거야.
강간은 죄가 되는데, 간음은 죄가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성에 대해서 개방이 아니라 완전히 타락한 거죠.
그런 것을 두고 아야꼬 여사가 쓴 것을 보면, ‘그게 무슨 성 자유냐? 성 노예지..’
너희가 정욕의 노예가 된 것이지 성 자유가 아니다.
여기 지금 이 영지주의자들은 참 자유하다, 우리는 무슨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다.
윤리적인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다. 이렇게 해서 타락으로 내 몬다는 거야.
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베드로 사도께서 속담을 인용합니다.
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성경이 아니고 유대 속담에 그런 말이 있는데, 딱 맞다는 거야.
여러분 개를 길러보면 개가 토했다가 도로 줏어먹어요. 진짜..
나는 그것도 성경이 맞는가 해서 봤다니까.. 토해서 다시 줏어먹는 거예요.
돼지가 아무리 목욕 시켜도 시궁창을 보면 도로 들어가 버립니다.
돼지에게 물어봐. 자기들은 그게 목욕이라는 거야.
이것을 보통 머드팩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여러분 돼지가 아니거든 머드팩 하지 마세요.
그것은 돼지나 하는 것이지..
나는 홍해 바다에 가도 안 해..
그게 사람을 진흙에 뒹굴게 하는 자체가 좋은 게 아닙니다.
맑은 물로 씻으라고.. 진흙에 뒹굴지 말고..
나는 이 말이 생각나서 홍해 바다에 가도 안 한다니까..
딴 사람 다 해요. 나는 기분 나빠서 안 하는데..
3장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기록하고 기념하고 그리고 기억하게 한다. 잊지 않게 한다는 거죠.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기롱한다’는 말은 ‘희롱한다, 놀린다, 조롱한다’ 그런 말이죠.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창조때부터 창조한 것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한 세상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 했어요. 심판하신다고 했고 심판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물로 심판하신다고 하시고 심판 하셨고, 또 지금은 이 세상이 불로서 심판하신다고 하셨고, 지금 그 심판날까지 일각 다가가고 있는데, 다 잊어버리고 ‘만물이 다 처음부터 있는 거야.’ 하고 억지도 잊으려고 한다는 거죠.
6절,
6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온 세상을 불로 심판 받는 그날까지 보존하는 것 뿐이지, 괜찮은 세상은 아니라는 거죠.
8절,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 사도가 계실 때에 그 때 성도들이 ‘왜 예수님께서 속히 오신다 해 놓고 빨리 안 오시느냐? 재림 다 말짱 거짓말이다.’ 그 때 벌써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함부로 했다는 거죠.
그 때 예수님이 와버리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말게..
그러니까 참 어려운 문제인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창세전부터 예정한 사람이 다 구원을 얻기를 바라시고 그 때까지 심판은 연장되어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만약에 베드로 사도 당시에 AD2010년까지 예수님이 오지 않는다고 해봐.
그러면 인간들이 나태하고 까불고 교만하고 그렇겠죠? 그래서 언제 오실지 모른다고 해놔야 늘 조심하죠.
누구를 위한 것이냐? 우리를 위해서 한 거야.
하나님이 오래 참으신 것이 우리의 구원이 된 거죠.
하나님이 오래 참지 않고 그 때 세상 끝내버리면 우리는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마는 거죠.
그래서,
..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풀어진다’는 말이 어려운 말이죠.
우주의 구성요소들이 불에 녹아 해체되고 혼잡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해석한 분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어느 정도까지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보면
물질이라는 것이 다시 말하면 에너지가 고형화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물질을 완전히 방사시켜서 핵분열을 일으키면 존재자체는 없어져버리고, 물질 1g이 1천억 칼로리의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겁니다.
풀어져버리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죠. 에너지로 변해버리고..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그것을 발견했는데, 그 원리를 가지고 만든게 원자탄이거든요
만약에 이 지구라는 별 자체가 완전히 방사능처럼 에너지로 변해버리고 없어져버리면 어떡할 거죠?
우리는 그렇게까지 못해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할지라도 인간은 못하고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에너지는 안 보이잖아요. 그 눈으로 볼 수 없던 불가시적 에너지가 물질처럼 만들어진 것을 창조라고 하는 거죠. 창조..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풀어진다고 할 때 우리는 지금 그것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풀어지는데 그 풀어질 것에 너무 관심과 돈과 정성과 인생을 거기에 너무 쏟지 말라는 거야. 그게 다 풀어질 것이니까..
..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풀어지고 녹아지고 완전히 에너지로 화할 수 있는 거죠.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러분 이 현재 하늘과 땅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아니고 임시거처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안에 ‘힘쓰라, 더욱 힘쓰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와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과 성화를 위해서 부단히 힘을 쓰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 ‘억지로 푼다’ 하는 말이 비비꼰다고 되어 있어..
영어로 보면 ‘트위스트(twist)’예요. ‘말씀을 비틀다, 비비꼬아서 이상하게 억지로 해석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여러분 바울이 쓴 얘기는 사도 베드로가 봐도 어렵다는 거야.
이런 것은 풀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지 않았겠나..
바울이 쓴것을 보면 어려워요.
예수님 말씀하신 것도 그것만 가지고 어렵습니다.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가 말한 것을 다 합해도 종말에 대한 것은 어려워요.
그래서 종말론이라고 것이 나오는데, 이제 우리가 얼마 안 가서 요한계시록을 보게 되면 종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아시게 되겠죠.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무법한 자, 아주 법을 무시하고 법도 없는 것들이 그저 영지주의 이단들 이런 것들이 자기들은 법 위에 있다고 하면서 모든 법을 다 초월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사람들을 유혹해서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미혹에 이끌려서 너희가 굳센 데에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계속 이야기 하죠.
어떤 분이 말하기를 베드로가 왜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느냐? 항상 바울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바울은 처음부터 대학자로 출발한 것이고, 베드로는 어부로 출발했으니까, 베드로는 바울보다 배나 더 공부해야 따라갈까 말까 할 것이다. 그래서 끝없이 지식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공부를 안 하고 준비를 안 하고 그러면 전하지 못해요. 자꾸 막혀서..
누가 질문하면 눈앞이 캄캄할 것 아니야?
알지도 못하는 것을 질문해봐요. 안 밴 애를 낳는 게 차라리 낫지..
그러니까 끝없이 부단히 준비하고 공부해야 돼요.
적어도 이 우리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준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끝없이 준비해야 돼요. 항상..
그래서 적어도 성경 66권 같으면 어디든지 특별한 난제 외에는 다 대답할 수 있을만큼 부단히 갈고 닦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또는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그리고 공부 안 하고는 자라가는 길이 없어요. 부단히 공부해야 돼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큼, 알고 배운 만큼, 배우고 본받는 만큼, 또 그것을 실천하는 것만큼 우리가 자라가는 것이니까..
그래서,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우리 샤론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유언과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정말 우리가 힘쓰고 더욱 힘써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하시고,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 위에 사랑을 공급하여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